[서울=뉴스핌] 이성화 기자 = 적극적으로 손해배상채무를 이행하라는 소송과 달리 채무의 부존재확인을 구하는 소송에서는 채무자에게 불리한 특례법이 아닌 민법상 법정이율을 적용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A씨가 B씨를 상대로 상대로 낸 채무부존재 확인소송 상고심에서 파기자판을 통해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5일 밝혔다. 파기자판이란 법령이 잘못 적용됐다는 이유로 판결을 파기하는 경우 대법원이 사건을 돌려보내지 않고 스스로 판결하는 것을 말한다.
대법원 [사진=뉴스핌 DB] |
A씨는 지난 2017년 2월 경 서울 관악구 한 상가에서 개업을 위해 C씨에게 내부 시설물 철거공사를 맡겼는데 C씨가 철거공사 시행 과정에서 천정에 설치된 스프링클러를 손상시켜 바로 옆 호실 내부에 물이 뿌려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해당 호실에서 비영리사회공헌단체를 운영하던 B씨는 방송용 카메라와 소파 등 집기가 물에 젖는 손해를 입었다.
A씨는 B씨에게 카메라 렌트비용 등 손해배상으로 합계 360만원을 지급했다. 또 B씨 요구로 자신의 신용카드를 빌려줬고 B씨는 해당 신용카드로 주유비, 식사비 등 총 52만원을 결제했다.
이후 A씨는 "B씨에게 '철거공사로 인한 손해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확인서를 작성해주고 이에 따라 총 412만원을 배상해 채무를 전부 변제했다"며 B씨에 대한 손해배상채무는 더 이상 없다는 내용의 확인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B씨는 자신이 입은 손해가 전부 배상되지 않았다며 다퉜지만 1심은 "이 사건 철거공사로 인한 B씨의 손해가 이미 배상받은 범위를 초과한다는 점을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다"며 A씨에게 손해배상채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봤다.
1심 재판부는 A씨가 현금으로 배상한 360만원에 대해서는 철거공사에 책임이 있는 C씨가 구상금으로 지급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판결 선고일까지는 민법상 연 5%,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소송촉진법)상 연 15%의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했다.
항소심은 그러나 B씨의 방송용 카메라 3대는 부품 단종으로 수리가 불가능하다며 중고가격 1080만원을 포함해 B씨가 입은 손해액이 1520만원이라고 판단했다. 이어 이미 A씨가 배상한 액수를 공제한 나머지 1108만원 및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 채무가 존재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도 손해배상 액수에 대해서는 항소심 판단이 옳다고 봤다. 다만 지연손해금과 관련해 "금전채무의 이행을 명하는 판결을 선고한 것이 아니므로 소송촉진법상 법정이율을 적용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판결 선고일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도 민법상 연 5%의 비율로 계산해야 한다는 취지다.
소송촉진법 제3조는 금전 채권자의 소 제기 이후에도 채무를 이행하지 않는 채무자에게 지연이자와 관련해 불이익을 가함으로써 채무불이행 상태의 유지 및 소송의 불필요한 지연을 막기 위해 법정이율을 민법보다 높게 정하고 있다. 과거 연 15%이던 법정이율은 2019년 법 개정을 통해 연 12%로 인하됐다.
대법은 "이 사건 소는 A씨가 B씨에 대해 손해배상채무의 부존재확인을 구한 것이고 이에 대해 B씨가 반소를 제기하는 등 손해배상채무에 대한 이행소송을 제기한 바 없다"며 "A씨의 손해배상채무가 일부 인정돼 이에 대한 확인판결을 하더라도 그 지연손해금에 관해 소송촉진법 제3조의 법정이율을 적용할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원심이 지연손해금에 관해 원심 판결 선고일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소송촉진법이 정한 법정이율인 연 15%를 적용한 것은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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