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유명환 기자 = "2년 실거주 의무조항이 폐지됐다는 소식에 주민들 모두 안도하면서도 반기는 분위기입니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 현대아파트 거주민 양모 씨)
"전세 물량이 조금씩 나올 것 같아요. 실거주 의무가 풀리면서 집주인들이 전셋값 시세를 묻는 문의 전화만 20통 넘게 받고 있어요."(목동 신시가지 D공인중개 대표)
13일 오전 장마가 무색할 정도로 따가운 햇볕 아래 빼곡하게 줄지어 있는 강남의 대표 부촌인 압구정현대. 입구에는 재건축 조합 설립을 알리는 현수막이 줄지어 걸려 있었다. 입주민 게시판은 사업 추진 배경이 적혀 있는 글귀를 확인하고 있던 입주민들이 전날 정부가 추진했던 2년 실거주 의무 규제를 전면 백지화됐다는 소식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분위기다.
[서울=뉴스핌]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사진=유명환 기자] 2021.07.13 ymh7536@newspim.com |
◆"2년 실거주 의무 조항에 부랴부랴 조합설립"
입주민 게시판을 확인하고 있던 정은미(57) 씨는 "몇 전부터 재건축 논의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각종 규제로 인해 무산됐다. 하지만 지난해 국회에서 2년 실거주 의무를 통화시켰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러다 (대치동) 은마아파트처럼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다들 법안이 통과되기 전에 재건축 조합부터 설립하는 게 어떠냐는 의견을 받아들이고 부랴부랴 조합 설립을 마무리 짓게 됐다"고 말했다.
인근 D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최근 4·5구역에 조합 설립 인가가 나면서 3구역에서도 조합 설립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다. 조합원들도 "조합 설립 인가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후 재건축까지 10년가량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며 "매물 대부분이 동이 났으며 전세를 낀 매물도 금방 팔려나가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대표적인 강남 부촌으로 지목되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재건축 바람이 거세다. 6개 정비구역 가운데 4구역(현대8차, 한양 3·4·6차)과 5구역(한양1·2차)이 잇따라 재건축 조합 설립 인가를 받은 단지의 사업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이들 단지는 조합원 실거주 2년 의무 요건을 피하기 위해서 콩 볶듯 조합 설립에 열을 올렸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6·17대책을 통해 투기과열지구 내 재건축 아파트는 조합원이 2년 실거주를 해야 새 아파트 입주권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서울=뉴스핌] 송파구 송파동 한양2차. [사진=유명환 기자] 2021.07.13 ymh7536@newspim.com |
◆ 백지화에 한숨 돌린 재건축 단지
하지만 정부와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이를 백지화하기로 했다. 전날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국토법안소위를 열어 더불어민주당 조응천 의원이 대표발의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 중 재건축 조합원에게 실거주 의무를 부여하는 내용을 빼기로 했다.
재건축 조합원의 실거주 의무 부여 방안은 작년 6·17 대책의 핵심 내용이었으나 야당 의원들의 반대로 법 통과가 지연되다 결국 이날 법안에서 빠지게 됐다. 이 법안은 투기과열지구 내 재건축 조합원이 아파트를 분양받으려면 해당 단지에 2년 이상 실거주하게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재건축 사업을 추진하는 주민들은 반기는 분위기다. 송파구 송파동 한양2차에 거주하고 있는 최정훈(64)씨는 "수년째 재건축 조합 설립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2년 실거주 의무 조항이 생기면서 일사천리로 조합원 설립이 진행됐다"며 "정부가 재건축 사업에 대한 각종 규제를 만들면서 불안감을 느낀 주민들이 조합설립부터 진행하지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채 두 달도 안 돼서 인가신청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이어 "2년 의무 실거주 조항과 더불어 안전진단 선정 주체를 시·군·구에서 시·도로 변경하면서 재건축의 첫 문턱이자 최종 관문인 안전진단에 대한 규제가 조금 완화돼서 다행"이라며 "주민들 의견을 수렴해 안전진단 신청에 나설 예정"이라고 말했다.
[서울=뉴스핌]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인근 부동산 공인중개사무소 전경. [사진=유명환 기자] 2021.07.13 ymh7536@newspim.com |
◆ "반포 대규모 이주로 들썩이던 전셋값 진정"
전세시장도 한숨 돌리는 분위기다. 현재 대규모 이주가 진행중인 서울 서초구 반포동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 재건축 이주 수요로 인근 지역의 전셋값이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2년 실거주 의무가 폐지되면서 그동안 거주기간에 묶였던 집주인들이 세를 내놓겠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반포주공1단지 인근 W공인중개 대표는 "몇 달째 전세 물량을 찾는 전화가 수십 건에 달하고 있었지만 대부분 아이들이 다니고 있는 학교 주변으로 집을 얻고 싶어 하지만 전세 물량이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려운 게 사실이었다"면서 "잠원동과 압구정 등 실거주 의무기간을 채우기 위해 거주하고 있던 집주인들이 집을 내놓기 위해 전셋값 시세를 묻는 전화가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반포주공 1단지는 총 2210가구의 이주 수요가 반포동에서만 소화하는 게 불가능해지자 방배동, 잠원동 아파트의 전세 가격이 동반 상승했지만, 이번 2년 실거주 의무가 폐지되면서 가격이 진정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번 결정으로 재건축 전세난이 다소 숨통이 트일 것으로 내다봤다. 2년 실거주 요건을 맞추려 집주인들이 들어와 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재건축 사업 추진의 일부 걸림돌도 해소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문도 연세대학교 금융부동산학과 교수는 "안전진단 통과를 까다롭게 하는 조치는 사실상 재건축을 해주지 않겠다는 뜻"이라며 "도시 정비라는 시장의 요구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안전진단에 대한 기준을 완화한 것은 잘된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번에 폐기되는 규제 가운데 분양가상한제와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등을 처음부터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분양가상한제나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로 인해 진행되지 못하는 단지들이 한두 곳이 아닌 상황"이라며 "전반적인 규제의 실효성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ymh7536@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