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임성봉 기자 = 카카오뱅크를 시작으로 롯데렌탈 등 굵직한 기업공개(IPO)가 줄줄이 이어지면서 대형 증권사들의 몸값이 오르고 있다. 기존에는 증권사들이 IPO기업의 상장주관사를 따내기 위해 동분서주했다면, 이제는 IPO기업들이 대형 증권사를 상장주관사로 모시기 위해 경쟁을 펼치는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12일 한국거래소 등에 따르면 올해 1∼7월 IPO를 한 기업은 총 46개(기업 인수·합병 목적의 스팩 제외)로, 13개 증권사(해외 제외)가 단독 대표 주관사 또는 공동 대표 주관사를 맡았다. 이 가운데 지난 3월 기준 자기자본 4조 이상의 대형 증권사가 대표 주관사를 맡은 기업은 34개로 전체 73.9%에 달했다. 쉽게 말해 전체 37개 증권사 중 7개 증권사가 IPO 시장을 독차지한 셈이다.
사정이 이렇자 올 하반기 또는 내년 상반기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는 IPO기업들이 상장주관사를 선정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이전과 달리 대형 IPO가 비슷한 일정에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상장주관사 선택지가 줄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커머스 업계의 IPO 추진이 가시권에 들어오면서 대형증권사를 상장주관사로 선정하려는 움직임이 분주한 모습이다. 대어로 꼽히는 '오아시스·SSG닷컴·마켓컬리(컬리)'의 경우에는 사정이 복잡하다. 통상 경쟁사의 IPO를 맡은 증권사는 상장주관사로 선정하지 않는데, 이 때문에 호흡을 맞출 증권사를 찾기가 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컬리 측은 최근 미래에셋증권과 삼성증권, KB증권에 입찰제안요청서(RFP)를 발송했으나 KB증권만 제안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래에셋증권과 삼성증권이 사실상 SSG닷컴의 상장주관사를 노리면서 KB증권만 제안서를 보냈다는 게 금투업계의 설명이다.
다만 컬리는 SSG닷컴의 상장 추진 소식에 대표 상장 주관사 선정 일정을 중단했다. 컬리는 지정감사인 선정 절차를 우선 진행한 뒤 상장주관사 선정 일정을 재개한다는 방침이다.
새벽배송 업체 오아시스의 대표 상장주관사로 선정된 NH투자증권은 컬리 측으로부터 아예 입찰제안요청서(RFP)조차 받지 못하기도 했다. 현재 오아시스는 NH투자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을 대표 상장주관사로 선정한 상태다. 컬리 입장에서는 IPO 강자로 꼽히는 NH투자증권과 한국투자증권 등을 제외한 상태로 대표 상장주관사를 선정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이처럼 같은 업계의 대형 IPO가 줄줄이 이어지는 사례가 잦아지는 데다 초대형 상장주관사를 꾸리는 경우도 많아 선택의 폭을 더욱 좁히고 있다. IPO 흥행 기대주로 조명받고 있는 LG에너지솔루션의 경우에는 KB증권 등 2곳을 대표 상장주관사로, 신한금융투자와 대신증권 등 5곳을 공동주관사로 선정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등 카카오 계열사들도 갈수록 상장주관사의 규모를 키워나가는 추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그동안은 대형증권사들이 IPO 상장주관사 자리를 꿰차려고 경쟁하던 것에서 이제는 증권사가 기업을 고르는 역전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대형증권사 한 관계자는 "수요는 넘쳐나는데 소수의 대형증권사가 모든 IPO를 떠맡을 수는 없다 보니 돈이 되는 곳만 골라잡을 수밖에 없다"며 "최근에는 IPO기업들이 대형증권사의 스케쥴에 맞추면서 상장 일정을 조율하거나 상장주관사 일정을 변경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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