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장현석 기자 = 이른바 가짜뉴스를 처벌하기 위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소관 상임위원회를 통과한 가운데 법조계 전문가들은 일부 조항들에 대해 위헌 소지가 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일각에선 개정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우리나라의 정치적 성숙도 등을 고려할 때 시기상조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19일 오전 전체회의를 열고 심의에 들어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이날 오후 2시께 더불어민주당 단독으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서울=뉴스핌] 최상수 기자 = 언론사의 고의와 중과실에 따른 허위 조작 보도에 최대 5배까지 손해배상 청구를 허용하도록 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관한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가 17일 국회에서 열리고 있다. 2021.08.17 kilroy023@newspim.com |
지난달 27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 법안소위에서 의결된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기존에 발의된 16건 법안을 병합한 위원회 대안이었는데 전날 안건조정위원회에서 일부 수정됐다.
개정안 초안에서 주요 쟁점은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 △언론의 고의·중과실 추정 및 언론사 입증 책임 규정 신설 △정정보도를 해당 언론보도와 같은 시간·분량·크기로 보도 △열람차단청구권 신설 △기자에 대한 구상권 등이었다.
안건조정위원회에서는 손해배상액을 회사 매출액과 연계했던 조항이 수정됐다. 원안의 '전년도 매출액 1만분의 1에서 1000분의 1을 곱한 금액 등을 고려한다'는 원안 조항은 삭제됐다. 대신 '언론사 등의 사회적 영향력과 전년도 매출액을 적극 고려한다'고 명시했다. 또 기자 개인에 대한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도록 했던 원안 조항도 삭제됐다. 기사열람차단이 청구된 기사에 대한 해당사실 표시 조항도 삭제했다.
법조계 안팎에선 이번 개정안이 헌법이 보장한 언론·출판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를 지나치게 제한해 민주주의의 근간을 해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특히 법조계 전문가들은 개정안의 개별 조항들에 대해 의문점을 던졌다. 우선 정정보도 관련 조항이 언론의 편집권을 침해한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 조항은 언론사의 모든 정정보도는 원래 보도와 같은 시간·분량·크기로 보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서울 영등포구에 소재한 J 법무법인의 구모 변호사는 "기초적이고 개별적인 사안에 따라 언론사가 스스로 결정할 문제를 국가에서 획일적으로 정하는 것 자체가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며 "국가의 월권이 아닌가 싶다"고 평가했다.
열람 차단 청구권 조항 신설에 대해서도 시기상조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 조항은 인터넷 뉴스로 피해를 입은 자는 해당 사업자에게 열람 차단 청구가 가능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황재훈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는 "결국은 사법부에서 어떻게 운영하느냐의 문제인데 현재 우리나라 사법부가 정치적으로 온전히 독립돼 있지 못한 상황에서 제도 운영이 제대로 될지 의구심이 든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결국 지금의 언론중재법은 기득권 세력을 지키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고, 나라가 독립적으로 돌아가고 있지 않으니 국민들이 계속 감시를 해야 한다"며 "아직까지는 기득권에 대한 견제와 감시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더불어민주당 개정안에는 '열람 차단 청구의 경우 청구인의 의사에 따라 청구가 있음을 알리는 표시를 하지 않을 수 있다'는 단서를 삭제하면서 해당 조항의 의무를 강화했다.
[서울=뉴스핌] 최상수 기자 = 정의당 배진교 원내대표, 이은주 원내수석부대표, 장혜영 의원과 윤창현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 김동훈 한국기자협회 회장, 방송기자연합회, 한국PD연합회 소속 회원들이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강행 처리를 중단하고 사회적 합의 절차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2021.08.17 kilroy023@newspim.com |
최종적으로 삭제된 '기자에 대한 구상권 청구' 조항은 처음부터 헌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비판이 있었다. 가짜뉴스와 관련한 사실적시 명예훼손, 모욕죄, 민법상 손해배상 청구 등 관련 법이 있는데도 또다시 언론중재법으로 제재를 가하는 것은 헌법의 과잉 금지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는 취지다.
서초동에서 개인 법률사무소를 운영하는 박모 변호사는 "일반적인 손해배상 등으로도 청구가 가능해서 굳이 명시를 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며 "사안 별로 법원에서 판단하는 것은 상관없는데 관련 법에서 규정하고 있을 필요는 없다"고 지적했다.
이를 의식했는지 민주당은 기자 개인에게 구상권을 행사하는 조항 부분을 개정안에서 삭제했다.
대한변호사협회(변협)는 언론사의 고의·중과실 입증 책임 조항이 '전형적인 독소조항'이라고 본다.
신설된 개정안은 언론보도 등이 6개의 항목에서 어느 하나라도 해당하는 경우 고의 또는 중과실이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고 했는데 더불어민주당 자체 수정안, 문체위 안건조정위원회 등을 거치면서 △취재 과정에서 법률을 위반한 경우 등이 빠지는 등 수정됐다.
개정안은 △보복적이거나 반복적인 허위·조작보도로 피해를 가중시키는 경우 △허위·조작보도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은 경우 △정정보도·추후보도가 있었음에도 해당 기사를 충분한 검증 절차 없이 복제·인용 보도한 경우 △기사의 본질적인 내용과 다르게 제목·시각자료를 조합해 새로운 사실을 구성하는 등 기사 내용을 왜곡하는 경우까지 4개 항목으로 축소·조정했다.
하지만 변협은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조작한 정보' 등 추상적인 정의 규정만 두고 있다"며 "'정정보도 청구가 있는 기사' 등을 언론사의 고의·중과실로 추정하는 것은 전형적인 독소 조항"이라고 평했다.
이에 민주당은 고위공직자나 대기업 및 주요 임원 등에 대해선 적용치 않기로 하고, 공익 침해 사건이나 부정청탁금지법 위반 또는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사안에 대해선 위 조항을 적용하지 않기로 수정했다.
법조계 원로들이 소속된 사단법인 착한법만드는사람들 역시 이달 5일 언론중재법 개정 중단을 촉구한 바 있다. 착한법만드는사람들은 특히 징벌적 손해배상 부분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했다.
착한법만드는사람들은 "징벌적 손해배상이 규정된 다른 법률은 손해액의 최대 3배의 배상 책임밖에 부과할 수 없는 반면 개정안은 최대 5배의 배상책임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며 "해당 언론사 매출의 1만분의 1 수준의 손해배상 기준 금액 하한을 설정해 법원의 손해배상액 인정의 재량을 극히 제한한 부분은 다른 법률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개정안에서 구체적 배상 범위를 명시하지 않기로 하고 '언론사 등의 사회적 영향력과 전년도 매출액을 적극 고려한다'는 내용으로 다소 완화했다.
kintakunte87@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