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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카메라 뒤에 있는 '진짜' 중요한 것들

기사등록 : 2021-09-02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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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문재인 정부 역대 법무부 장관들 중에 언론에 자주 등장한다. 지난 5월 취임 100일을 앞두고는 거의 연일 법무부 현안에 대한 브리핑을 했고, 이슈가 있을 때마다 어김없이 정부과천청사에서 언론 브리핑을 열었다. 관록 있는 정치인 출신답게 카메라 앞에서 긴장하는 법도 없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기자들이 그의 출퇴근길을 기다리고 수많은 언론 브리핑에도 빠짐없이 참석하는 이유다.

하지만 최근 벌어진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입국과 관련해 발생한 일련의 소동을 보면 법무부가 정말 중요한 걸 놓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법무부는 이들의 입국을 하루 남겨둔 지난달 25일 오후 6시가 다 된 시각에야 이튿날 공항에서 아프간 특별입국자 관련 설명 언론 브리핑을 열겠다고 공지했다. 당일이 되어서는 몇 번이고 브리핑 예정 시각이 바뀌었고, 브리핑 직전이 되어서야 기자들에게 4쪽 남짓의 자료가 배포됐다. 자료 대부분은 박 장관이 그대로 카메라 앞에서 읽었다.

고홍주 사회문화부 기자

이후의 상황은 더욱 혼란스럽다. 브리핑을 마친 뒤 보안구역으로 이동한 박 장관은 입국자들을 기다렸다. 입국자들이 도착하자 법무부 관계자들은 미리 대기하고 있던 외교부 기자단에게 박 장관이 있는 곳으로 이동해 그가 아프간 아이들에게 인형을 주는 것을 찍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찍어주지 않으면 취재 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는 강한 메시지와 함께 말이다.

그 이튿날에는 강성국 차관이 비가 오는 충북 진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정문 앞에서 브리핑을 열었고, 며칠간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군 '우산 의전' 논란이 벌어졌다.

이 일련의 소동에서 남은 건 뭘까. 우리나라는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을 제정한 나라이고, 난민을 받아들이는 비율도 주변 아시아 국가보다 높다. 여기에 공식적으로는 난민으로 분류되지 않는 탈북자까지 더하면 적지 않은 난민들이 국내에 있다. 하지만 국민들은 여전히 난민이 어떤 존재인지 모른다. 난민으로 인정받으면 대한민국의 영주권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다.

아프간 입국자들도 마찬가지다. 법무부는 이들을 '특별기여자'라고 명명해 난민과 다르다고 강조했지만, 과연 그 차이가 무엇인지 명확히 인지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장관과 차관은 수차례 카메라 앞에 섰지만, '무슬림 난민을 받으면 안 된다'는 혐오어린 시선에 앞서 이들을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를 국민들에게 충분하게 설득하고 설명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나.

법무부는 아프간 특별기여자들의 입국 과정에서 "주무부처는 법무부"라는 점을 기자들에게 수차례 강조했다. 하지만 기자인 나조차 주변 사람들이 아프간 입국자들에 대해 물어올 때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하다. 법무부가 정말로 이들의 체류를 책임질 주무부처라면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을 고민하기보다 어떻게 이를 국민들에게 전달할지 고민하는 게 먼저 아닐까.

adelante@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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