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고홍주 기자 = 이혼소송 중 해외에서 딸을 데려와 면접교섭 기간이 종료됐음에도 돌려보내지 않은 아빠에게 미성년자 약취 혐의 유죄가 확정됐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9일 미성년자 약취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1년의 선고를 유예한 원심을 확정했다.
앞서 A씨는 지난 2007년 프랑스인 B씨와 혼인해 2009년 딸을 낳았다. 프랑스에서 함께 거주하던 두 사람은 A씨가 2012년 귀국한 뒤 별거에 들어갔고, B씨는 같은 해 프랑스 법원에 이혼청구를 했다. 법원은 딸의 상시 거주지를 B씨의 거주지로 정하고 A씨는 면접교섭을 할 수 있다는 취지의 임시조치 결정을 내렸다.
대법원 [사진=뉴스핌 DB] |
A씨는 2014년 7월 5일경 면접교섭을 위해 딸을 데리고 한국으로 입국했는데, 1달 뒤 프랑스로 데려다주기로 약속했음에도 이를 지키지 않았다. 이에 B씨는 이듬해 대한민국 법원에 친권자 및 양육자 지정, 인도 등을 청구하고 딸에 대한 화상통화와 프랑스어 지도, 면접교섭 등을 위한 사전처분 신청을 해 인용 결정을 받았지만 A씨가 이를 지키지 않아 제대로 된 연락도 할 수 없었다.
그 무렵 프랑스 법원은 A씨의 일방적인 귀책사유로 인한 이혼으르 선언하고 친권자와 양육자를 B씨로 지정하는 판결을 선고했다.
이후 딸을 프랑스로 데려가기 위해 유아인도 심판에 따른 강제집행 등 절차가 시도됐지만, 이미 한국 생활에 익숙해진 딸이 이를 거부하면서 실패했다.
1심 재판부는 "피해아동에 대한 보호·양육권을 현저히 침해하고, 피해아동의 의사에 반해 자유로운 생활관계 또는 B씨의 보호관계로부터 이탈시켜 자신의 지배하에 옮기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판단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2심도 같은 판단을 내리고 징역 1년을 형으로 정했지만 선고를 유예했다.
대법원은 "단순히 면접교섭 기간이 종료했음에도 데려다주지 않는 사정만으로 항상 미성년자 약취죄가 성립한다고 볼 수는 없다"면서도 "피고인의 행위는 불법적인 사실상의 힘을 수단으로 피해아동을 그 의사와 복리에 반해 자유로운 생활 및 보호관계로부터 이탈시켜 자기의 사실상 지배 하에 옮긴 적극적 행위와 형법적으로 같은 정도의 행위로 평가할 수 있으므로 미성년자 약취죄의 약취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5살이던 딸은 말이 잘 통하지 않는 대한민국에서 피고인과 살면서 기존에 유대관계를 갖고 있던 보호자와 연락도 하지 못하게 되었고, 이후 계속된 피고인 행위로 결국 프랑스에서의 생활관계 및 보호자인 B씨의 보호관계에서 완전히 이탈되어 프랑스어를 잊어버리고 친모와의 유대관계까지 잃어버리게 되었다"며 "이는 실질적으로 피해아동의 복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피고인은 가사소송법 등 관계법령에 의한 심판에 따르지 않은 채 피해아동을 데리고 있으면서 양육환경을 고착화시켜 적법한 절차에 따른 강제집행을 불가능하게 만들었고, 이러한 행위는 법원의 확정된 심판의 실효성을 확보할 수 없도록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이 사건은 부작위에 의한 미성년자 약취를 인정한 첫 사례"라며 "부모의 분쟁 상황에서 면접교섭권 행사를 빌미로 미성년 자녀를 데려간 후 가정법원의 결정을 따르지 않고 보호·양육권을 가진 상대방이 적법 절차에 따라 자녀를 인도받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방법으로 자녀의 복리를 침해하는 경우 형사범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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