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정광연 기자 = 오세훈 서울시장이 민간위탁 및 보조금 사업 '정상화'를 가로막는 요인으로 고인이 된 박원순 전 시장을 거론했다. 박 전 시장이 만든 다양한 조례와 지침이 부적격 시민단체들의 퇴출을 막는 '보호막' 역할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문제가 있는 규정을 직접 거론하는 등 전임시장의 '책임론'을 직접 수면위로 끌어올렸다. 시민단체들의 반발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박 전 시장을 직접 저격하면서 이를 둘러싼 논란은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뉴스핌] 김학선 기자 = 오세훈 서울시장이 2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서울경찰청 제1서경마루에서 열린 '서울시 자치경찰위원회' 출범식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1.07.02 yooksa@newspim.com |
오세훈 시장은 16일 온라인브리핑을 열고 "며칠전 민간위탁과 보조금 사업을 전수조사해 문제가 있다면 개선을 하겠다는 발표를 했지만 당장 시정 조치를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는 전임 시장이 조례나 지침, 협약서 등으로 '대못'을 박아놔 잘못된 것을 바꾸려고 해도 바꿀 수 없도록 시민단체에 대한 보호막을 겹겹히 쳐놨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특히 전임 시장 시절 만든 '서울시 민간위탁 관리지침'에는 행정의 비효율을 초래하는 각종 비정상 규정이 '대못'처럼 박혀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오 시장이 지적한 부분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종합성과평가를 받은 기관은 같은해에 특정감사를 유예해주도록 한 규정이다.
종합성과평가는 민간위탁을 받은 기관이 당초 세운 목표를 달성하고 있는지 여러 지표를 통해 평가하는 것이고 감사는 기관 운영이나 사업수행 과정에서 불법·부당함이 없는지를 살펴보는 것으로 목적과 내용, 방법이 모두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합성과평가를 받았다는 이유로 특정감사를 유예해주도록 하는 것은 비정상적인 규정이라는 주장이다. 의법이 의심되는 점이 발견돼도 즉시 감사가 불가능해 은폐할 시간을 줄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오 시장은 "민간기업도 사업실적이 아무리 우수한 회사라 하더라도 불법‧부당한 행위를 했다면 제재를 받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전임시장이 만든 해괴한 전임시장 때에 민간위탁지침은 위탁사업을 수행하는 단체에 대한 최소한의 통제도 못하게 만들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두 번째는 수탁기관은 바꿔도 사람은 바꿀 수 없도록 한 규정이다.
[서울=뉴스핌]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 장례식장에 차려진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 빈소에서 조문객들이 조문을 하고 있다. [사진=서울시] 2020.07.10 photo@newspim.com |
서울시에 따르면 민간위탁 기간은 원칙적으로 3년 이내며 기존 제도 하에서도 3년에 한 번씩 공개입찰을 통해 수탁기관을 바꿀 수는 있도록 조례와 지침에서 규정하고 있다.
반면 '민간위탁 관리지침'에 포함된 '수탁기관 공모 및 선정 운영기준'과 현재 사용중인 '민간위탁 표준 협약서'에는 수탁기관이 바뀌어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고용승계 비율이 80% 이상 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오 시장은 "이 조건 때문에 공정한 절차를 거쳐 문제가 있는 수탁기관을 새로운 단체로 바꿔도 기존 단체의 직원을 대부분 떠안아야 한다. 사업권을 박탈당해도 대부분의 직원들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한 이런 특권은 누구를 위한 것이며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인가"라고 성토했다.
마지막은 관련 조례 등에 따라 각종 위원회에 시민단체 추천 인사를 포함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이다.
오 시장은 "현재 서울시의 220여개 위원회에는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이 상당수 포진해 있다. 심지어 수탁기관 선정 과정을 관장하고 위원회를 구성·운영하는 부서장 자리에 종전 수탁기관의 장이 임명되는 일도 있었다. 제도와 규칙은 그 자체로 완결성을 갖추고 누가 운영해도 공정성이 담보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간위탁 및 보조금 사업 전수조사를 통해 부적격 시민단체 퇴출을 선언했던 오 시장은 이에 따른 세금낭비의 원인으로 고 박 전 시장을 명확히 거론했다. 박 전 시장이 만든 수많은 조례와 규정이 이른바 '비정상의 정상화'를 막고 있다는 주장이다.
특히 부격적 대상으로 지적된 시민단체들의 반발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박 전 시장의 책임론을 직접 거론함에 따라 이를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오 시장은 "이런 이유들 때문에 해묵은 문제들을 즉시, 일거에 뿌리 뽑는 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기득권을 뺏기기 싫어 저항하는 단체도 있을 것이고 시의회의 협력을 구하면서 함께 바꿔나가는 과정에도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며 "시민과 직원들을 믿고 묵묵히 가겠다"고 밝혔다.
peterbreak2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