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스핌] 정성훈 기자 = 유가 급등, 원재료 가격 상승에 따른 3%대 소비자물가가 현실화되면서 정부가 가장 먼저 꺼내든 카드는 '공공요금 동결'이다.
공공요금 동결은 물가상승(인플레이션) 압박이 커질 때마다 정부가 가장 먼저 꺼내든 최선의 카드다. '공공요금=생활물가'라는 공식이 일반화 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정부는 공공요금 동결로 서민들이 체감하는 생활물가도 안정화 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하지만 공공요금 동결로 인해 손실을 감당해야 하는 공기업의 비용부담은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전기를 공급하는 한국전력과 액화천연가스(LNG)를 해외로부터 조달해 공급하는 한국가스공사가 대표적이다. 이들 공기업은 유가 급등에 따른 원재료 가격 상승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더욱이 두 기관의 경우 사업 적자가 장기화 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의 이번 결정이 반가울 수 없는 이유다.
◆ 소비자물가 상승세에 전기료 제외한 공공요금 동결 방침
26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연말까지 공공요금을 최대한 동결할 방침을 세웠다. LNG 할당관세 인하 등을 고려해 11~12월 가스요금을 동결하고, 나머지 공공요금도 연말까지 동결을 원칙으로 관리해 나가기로 했다. 이는 10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데 따른 '고육지책'이다.
우리나라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4개월부터 9월까지 6개월째 2%대를 유지하고 있다. 11월 초 발표 예정인 10월 소비자물가는 3%대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만약 3%대 소비자물가가 현실화된다면 2012년 2월(3.0%) 이후 10년 만에 최대 상승폭을 기록한다. 올해 정부의 물가 목표치는 2%대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남은 10·11·12월 석달간 물가상승률이 2% 이하를 기록해야 한다. 사실상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기재부는 최근 발표한 '10월 경제동향'에서 인플레이션 우려에 경제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영훈 기재부 경제분석과장은 "작년 기저(효과) 요인이 커서 (소비자물가) 3%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예상했다. "지난해 통신비를 지원하면서 낮춘 것이 그만큼 올라가는 요인으로 반영돼 물가를 높일 것"이라는 설명이다.
[서울=뉴스핌] 김학선 기자 = 이억원 기획재정부 제1차관이 2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36차 혁신성장 전략점검회의 겸 코로나 정책점검회의 겸 한국판뉴딜 점검 TF 겸 제31차 물가관계차관회의를 주재하며 발언하고 있다. 2021.10.22 yooksa@newspim.com |
이에 정부가 커내는 카드는 어김없이 공공요금 동결이다. 정부가 공공요금 동결 방침을 처음 언급한 건 한 달여 전이다. 치솟는 국제유가 상승, 농축산물 가격 상승 등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가 확산되자 정부가 특단의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이억원 기재부 1차관은 지난달 29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29차 물가관계차관회의'에서 "이미 결정된 공공요금을 제외하고 나머지 공공요금은 연말까지 최대한 동결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농축수산물·석유류 등을 중심으로 오름세가 당초 예상보다 오래 이어지면서 물가 상승세가 지속되고 있는데 공급측 요인의 영향이 점차 줄어들고 상방압력이 다소 둔화되는 내년에는 올해보다 물가상승률이 낮아질 전망"이라고 평가했다.
대표적인 공공요금은 전기료와 가스요금을 들 수 있다. 다만 한전이 지난달 전기료 인상을 이미 발표했기에 이번 공공요금 동결 방침에 전기료는 제외된다. 한전은 이달 1일부터 적용하는 4분기 전기료 연료비 조정단가를 지난 3분기 -3원/㎾h에서 3원 오른 0원/㎾h로 산정했다. 월 평균 350㎾h를 사용하는 4인 가구를 기준으로 전기료가 1050원 가량 오를 전망이다. 다만 정부는 전기요금 이외의 공공요금의 동결 기조는 최대한 유지하기로 했다.
이 차관은 "열차, 도로통행료, 시외버스, 고속버스, 광역 급행버스, 광역상수도(도매) 등의 경우 요금 인상 신청 자체가 제기된 것이 없고 인상 관련 사전협의 절차가 진행된 것이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또 "가스(소매), 상하수도, 교통, 쓰레기봉투 등 지방공공요금의 경우 지자체 자율결정사항이나 가능한 한 4분기 동결을 원칙으로 행정안전부 주관으로 지자체와 적극 협의해 관리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정부는 식료품 원부자재 국제가격 및 국제유가 추이와 가공식품·석유류 판매가격 인상 폭과 시기 등을 집중 점검할 예정이다. 관계부처와 모니터링 결과를 공유하고 가격담합 등 불공정행위 정황이 포착될 시 현장조사 등 즉시 대응에 나설 방침이다.
◆ 국제유가 상승에 연료비도 상승…공공기관 부담 가중
문제는 국제유가 상승에 연료비도 덩달아 오르면서 공기업들의 비용 부담은 더 늘어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특히 국제유가에 민감한 한전, 가스공사 등 에너지 공기업들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
수입원유의 기준이 되는 두바이유 기준 국제유가는 지난해 평균 배럴당 42.3달러에서 올해 10월 22일 기준 81.6 달러로 2배 가량 상승했다. 또 10월 22일 기준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유(WTI)는 배럴당 83.76달러로 거래를 마감했다. 지난 11일 배럴당 80달러를 넘어서더니 10여일만에 3달러 이상이 더 뛰었다. WTI가 80달러를 넘은 것은 7년만에 처음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현재 고유가 상황이 장기화되면 원재료로 제품을 생산하는 공기업들의 부담은 당연히 가중될 것"이라며 "다만 이번 정부 대책(공공요금 동결)이 생활물가 안정화 수준의 낮은 대책인 만큼 고통분담 차원에서 공기업들도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서울=뉴스핌] 최상수 기자 =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한국전력공사,한국수력원자력 등 국정감사에서 정승일 한국전력공사 사장이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2021.10.12 kilroy023@newspim.com |
최근 미국 뱅크오브아메리카는 겨울 석유 수요가 급증해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일부 투자은행(IB) 등도 국제유가가 내년 초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이에 따른 '4차 오일 쇼크'를 우려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국제유가 인상은 에너지 공기업들에게 악재로 작용한다. 한전은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석유, LNG, 유연탄 등을 원재료로 사용한다. 원재료 가격이 상승하면 이는 곧 전기료 상승 인상 요인으로 돌아온다. 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경우 사업 적자가 쌓일 수 밖에 없는 구조다. LNG를 수입해 공급하는 가스공사도 원재료 인상에 직격탄을 맞을 수 밖에 없다.
채희봉 가스공사 사장은 지난 15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요금 인상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채 사장은 "국제 LNG 가격과 원유 가격, 스폿(현물) 가격이 모두 상승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을 감안해야 한다"며 "물가 당국의 고충도 이해하지만, 원가 부담이 늘어난 점을 고려해 적정한 수준의 요금 인상을 허용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호소했다.
이미 에너지 공기업들의 적자 구조는 고착화되어 있는 상황이다. 한전의 부채는 올 상반기 기준 62조9500억원으로 부채 비율 122.5%를 기록 중이다. 가스공사 부채도 27조2455억원으로 부채비율 330.4%에 이른다. 기획재정부 '2021~2025년 공공기관 중장기 재무관리계획'에 따르면 한국전력과 한전 자회사인 발전사 6곳(남동·남부·중부·서부·동서발전·한국수력원자력)의 올해 당기순손실은 4조252억원으로 전망됐다. 가스공사의 부채는 27조2455억원, 부채비율은 330.4%에 이른다.
이 때문에 당장의 물가를 억누르기 위해 공공요금을 동결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공기업의 비용부담만 늘리는 사후약방문 처방이란 지적이 나온다. 더욱이 고유가 상황이 내년 상반기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실효성 있는 추가 대책이 나와야 한다는 분석이다.
에너지업계 한 관계자는 "에너지 공기업들은 고유가 상황이 장기화 돼 이번 정부 대책에 더해 추가적인 대책이 나오지 않을까 우려하는 상황"이라며 "연료비 상승에 따라 공기업들의 경영 상황이 점차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찍어누르기식 정부정책은 결국 소비자들의 부담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js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