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고홍주 기자 = 95억원 상당의 보험금을 노리고 캄보디아 출신의 만삭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무죄를 확정 받은 남편이 삼성생명을 상대로 낸 보험금 소송은 승소했지만 미래에셋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는 패소했다.
법원은 당시 피보험자인 아내 B씨가 한국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한 상태에서 한 보험 계약이므로 흠결이 있다고 판단했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6부(황순현 부장판사)는 전날 남편 A씨가 미래에셋생명보험을 상대로 낸 30억원대 사망보험금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A씨가 보험금을 부정취득할 목적으로 아내 명의의 다수 보험을 가입했다거나 보험수익자인 A씨의 고의 또는 중대 과실로 인해 발생한 사고이므로 배상이 면책된다고 주장한 미래에셋 측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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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내 B씨가 각 보험계약 청약서의 피보험자란에 자신의 당시 이름을 자필로 기재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계약 체결 내용을 이해한 후 진정한 의사로 동의했다고 볼 수 없다"며 서면 동의 흠결로 인한 계약 무효 주장을 받아들였다.
B씨는 만 18세였던 2008년 1월 A씨와 결혼해 한국에 입국할 때까지 한국어를 전혀 하지 못했고, 입국 후에도 보험계약 내용을 이해할 정도로 수준 높은 한국어를 구사하지는 못했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특히 2008년 6월 B씨의 보험계약을 체결한 설계사는 당시 B씨가 한국말을 못해서 계약에 대해 설명해주지 못했고, 자신이 B씨의 손을 붙잡고 서명했다고 진술했다. 또 다른 보험설계사도 A씨가 옆에서 설명을 듣고 싸인을 하라고 하니 B씨가 그대로 따라서 싸인을 했다고 말했다.
또 B씨의 지인은 B씨로부터 '왜 그렇게 많은 보험 서류에 싸인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보험계약의 피보험자나 수익자 등 보험계약서에 기재된 단어는 한자로 구성된 법률용어로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없으므로 단순히 한국어로 일상생활에 필요한 의사소통을 할 줄 아는 정도로는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기 어렵다"며 "보험설계사들은 원고에게는 설명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원고가 이를 망인에게 제대로 알려주었다고 볼 아무런 자료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만일 망인이 자신의 사망으로 거액의 보험금이 지급되는 보험계약을 중복해 체결하고 그 때문에 매월 상당한 금액의 보험료를 납입한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당연히 의문을 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한국어 능력도 부족하고 언제라도 도박보험의 위험에 처할 수 있는 망인과 같은 사람을 피보험자로 하는 거액의 생명보험계약을 체결함에 있어서는 보험자인 피고로서도 그들의 모국어로 된 약관을 제시하거나 통역을 하는 등 진정한 동의 의사를 확인하는 데 필요한 절차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이러한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상황에서 피보험자의 동의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이 옳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앞서 A씨는 지난 2014년 8월 경부고속도로 천안IC 부근에서 갓길에 정차 중이던 화물차를 들이받아 동승자인 캄보디아 출신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아내는 임신 7개월차로, 사망보험금이 95억원에 달했다.
1심은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으나 2심은 범행 전 보험에 다수 가입한 점 등을 들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A씨가 특별한 경제적 곤란이 없었던 상황이어서 범행 동기가 좀 더 선명하게 드러나야 한다며 살인과 사기 혐의에 대해 무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했고, 지난 3월 최종 무죄를 확정했다.
다만 A씨는 예비적 공소사실인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치사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금고 2년형을 확정 받았다.
A씨는 2016년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고 보험사들을 상대로 보험금을 청구했다. A씨가 지난 3월 최종 무죄를 확정받은 이후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7부(박석근 부장판사)는 A씨가 삼성생명을 상대로 낸 보험금 청구소송에서 "A씨에게 2억208만원을, 자녀에게 60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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