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고홍주 기자 =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유족이 고인의 성희롱을 인정한 국가인권위원회를 상대로 낸 권고결정 취소소송을 심리하고 있는 재판부가 인권위 측에 성희롱 인정 근거가 된 자료를 제출해달라고 요청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이종환 부장판사)는 30일 오전 박 전 시장의 부인 강난희 씨가 인권위를 상대로 낸 권고결정 취소소송 2차 변론기일을 진행했다.
이날 유족 측 정철승 변호사는 "조사 결과는 결론만 발표하는 식으로 공표됐는데, 이걸 가지고 망인의 성범죄 사실을 인권위가 인정했다고 언론사들이 보도됐다"고 주장하면서 성희롱 결론이 나오게 된 근거 자료를 제출해달라고 인권위 측에 요구했다.
이에 대해 인권위 측은 "결정문에 충분히 어떤 자료를 근거로 했는지 기재했다"며 "참고인 진술 등은 워낙 민감해서 우리 기관 자체에서 이런 자료를 공개한 유례가 없다. 특히 (원고는) 당사자가 아니라 제3자가 아니냐"고 난색을 표했다.
[서울=뉴스핌] 이한결 기자 = 11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 차려진 고(故)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분향소에서 시민들이 조문하고 있다. 서울시는 박 시장을 추모할 수 있는 분향소를 11일부터 월요일인 13일까지 서울광장에 설치·운영한다고 밝혔다. 2020.07.11 alwaysame@newspim.com |
재판부는 "결정문 내용은 증거를 요약한 건데 공표한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냐"며 "2차 피해를 우려하시는 것 같은데, 핵심적인 자료만 내줄 수 없느냐는 것이다. 재판부가 증거를 공개할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재판부는 현 단계에서 강제적으로 문서제출명령을 통해 자료를 받아보기보다 인권위 측이 자의적으로 자료를 제출해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한편 이날 법정에는 원고인 강 씨가 직접 출석하기도 했다. 변론 막바지에 발언 기회를 얻은 강 씨는 "판사님께서 정확하게 판단을 해주실 것이라 믿는다"며 "법치국가이기 때문에 정확한 판단을 믿겠다"고 짤막하게 입장을 밝혔다.
다음 변론기일은 내년 1월 18일 열린다.
앞서 박 전 시장은 지난해 7월 9일 오전 공관을 나와 다음날 오전 0시1분 쯤 시신으로 발견됐다. 서울시 측이 공개한 박 시장의 유언장에는 "모든 분에게 죄송하다"며 "내 삶에서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박 전 시장은 사망 전날 비서인 A씨로부터 성희롱 혐의로 고소당한 상태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인권위는 같은 해 7월 30일 상임위원회에서 박 전 시장에 대한 직권조사에 착수해 6개월 만인 지난 1월 25일 "박 전 시장이 업무와 관련해 피해자에게 행한 성적 언동은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따른 성희롱에 해당한다"는 조사 결과를 내놨다.
구체적으로 "피해자의 휴대전화 디지털 포렌식 등 증거자료, 박 전 시장의 행위 당시 피해자로부터 들었다거나 메시지를 직접 봤다는 참고인의 진술, 피해자 진술의 구체성·일관성 등에 근거할 때 박 전 시장이 늦은 밤 시간 피해자에게 부적절한 메시지와 사진, 이모티콘을 보내고 집무실에서 네일아트한 손톱과 손을 만졌다는 피해자 주장은 사실로 인정 가능하다"며 "이와 같은 박 전 시장의 행위는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성적 언동으로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참고인 진술이 없거나 휴대전화 메시지 등 입증 자료가 없는 경우는 사실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면서도 "성희롱의 인정 여부는 성적 언동의 수위나 빈도가 아니라 공적 영역에서의 업무관련성 및 성적 언동 여부가 관건이므로 이 사건의 경우 성희롱으로 판단하기에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또 서울시에 피해자에 대한 적극적 보호방안 및 2차 피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고 성역할 고정관념에 기반한 비서실 업무 관행 개선, 성희롱·성폭력 예방 및 구제 제도를 개선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유족 측은 "인권위가 고인의 인격권과 명예권을 심각하고 중대 명백하게 침해했다"며 지난 4월 결정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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