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안전사고에 대한 사업주 및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한 중대재해처벌법이 오는 27일 시행된다. 관련법은 공사 및 시설 책임 담당자 뿐만 아니라 원청, 최고 경영자까지 처벌할 수 있는 법이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자칫 소홀해 질 수 있는 안전사고 방지에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하는 동시에 이에 따른 부담감을 껴안을 수밖에 없다. '예방이냐 처벌이냐'는 논란이 일고 있는 관련법 시행을 앞두고 뉴스핌은 기업들의 준비상황을 점검하고 '사고 없는 안전한 사업장'을 견인할 수 있도록 합리적인 방안을 모색해 본다.
[서울=뉴스핌] 박준형 기자 =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재계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안전 관련 전문체계 강화다. 특히 최고안전책임자(CSO)를 선임하고 안전전담 부서를 확대 개편하는 등 '1호 처벌 기업'의 불명예를 피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기업 총수나 오너의 책임 회피 등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25일 산업계에 따르면 중대재해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자동차·철강·조선 등 이른바 중후장대 기업들은 안전 관리체계 구축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처벌을 피하기 위해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하면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게 규정하고 있다. 처벌 대상은 사업주, 경영책임자 등이다. 사망 외의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하면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 대상이 된다.
[광주=뉴스핌] 전경훈 기자 =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구역 철거건물 붕괴 참사 현장에서 10일 관계기관 합동 감식이 진행되고 있다. 2021.06.10 kh10890@newspim.com |
◆ 중후장대 기업들, 대책 마련 분주…안전사고 '이상 無'
현대자동차·기아는 CSO에 국내생산담당 임원인 이동석 부사장과 대표이사인 최준영 부사장을 각각 선임했다. 이 부사장과 최 부사장은 각 사업장에 있던 안전관리 조직을 총괄하며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안전사고를 최소화하기 위한 예방 업무에 주력한다.
CSO 신설과 함께 안전 관련 조직 강화 및 인원 확충에도 나섰다. 현대차는 올해 1월 1일자로 본사에 대표이사 직속으로 안전 관련 조직을 확대 개편했다. 본사뿐만 아니라 연구소와 생산공장 등에는 안전 관련 전문 인력을 충원했다.
삼성중공업도 CSO를 신설하고 조선소장을 맡고 있는 윤종현 부사장을 선임했다. 현장 최고 책임자인 윤 부사장 진두지휘 하에 안전관리 총괄 조직 구성 등 세부대책을 마련, 추진하고 있다.
한국조선해양은 가삼현 대표이사 부회장이 CSO를 겸직하며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 집중하고 있다. '안전관리 종합대책'을 수립하고, 체험형·실습형 안전교육도 강화했다. 안전부문 전담 인력도 20% 증원했다.
포스코는 김학동 대표이사 부회장(철강부문장) 직속으로 '안전환경본부'를 신설하고, 산하에 안전보건기획실과 환경기획실을 설치했다. 안전보건기획실은 포항과 광양제철소를 중심으로 그룹차원의 안전보건 체계 및 제도의 혁신을 전담 수행한다. 환경기획실은 탄소중립 등 그룹 중장기 환경 전략 수립 및 단계적 실행을 이끈다.
이와 함께 제철소 안전환경담당 부소장이 현장을 보다 중점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산하 에너지, 발전 분야 업무를 타 부서로 이관하고, 안전과 환경 분야에만 매진토록 했다.
현대제철은 지난해 8월 CEO 직속 전사 안전보건 부문 총괄 조직인 '안전보건총괄' 부서를 신설하고 박종성 부사장을 책임자로 선임했다.
기존 안전 관련 조직은 각 사업장에 소속돼 있어 전사 안전보건 분야를 총괄하기에 제한적이었으나 안전보건총괄 신설에 따라 전문적이고 신속한 의사결정이 가능해졌다는 게 현대제철 측 설명이다.
대우조선해양은 경영진 안전리더십 체계를 세우고 HSE(건강·안전·환경) 컨트롤 타워를 구축하는 등 안전 관련 인력 및 조직 재정비에 나섰다.
동국제강은 공장별 설비안전위원회를 운영하고, 비상대응 역량평가를 전 사업장으로 확대 적용해 비상시 대응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세아제강은 안전환경위원회를 구성해 전사 차원의 안전관리 역량을 집중해 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업계 관계자는 "안전 총괄 조직을 만들고 안전관리에 중점을 두는 것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때문만이 아니라 이전부터 계속 신경을 써왔던 부분"이라며 "아무리 예방을 해도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 미비점, 보완점 등 과제를 계속 발굴해왔다"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책임을 떠넘기려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CSO가 기업 총수나 오너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것이란 지적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제2조는 경영책임자를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해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 "안전 책임은 전담부서만?…진정성 없는 투자"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전반적으로 안전 역량을 향상하는 쪽으로 가지 않고 안전부서에 인원 늘리는 것으로 치닫고 있다"며 "안전이라는 것은 현업부서의 역량 강화가 중요한데 안전부서 인원만 늘리면 외형적으로는 안전 강화로 보이지만 돈만 투자하고 실제로는 현장 안전 역량 강화로 이어지지는 않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꼬집었다.
정 교수는 "결국은 안전책임자가 모든 것을 끌어안고 대표이사는 빠져나가면서 책임을 회피하는 데 급급할 수 있다"며 "정작 책임져야 할 사람은 빠져나가게 되는 상황으로 흘러가면서 중장기적으로는 피해가 클 것"이라고 했다.
이어 "현재는 진정성이란 게 전혀 없다. 안전부서만이 안전을 전체적으로 책임진다는 초보적인 생각 자체가 잘못"이라며 "안전 역량에 취약한 중소기업만 중대재해처벌법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강성규 가천대 길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도 "대기업은 준비를 많이 하는데 중소기업은 현실적으로 준비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정말 사고가 많이 나는 핵심이 뭔지 파악해서 그 부분을 지키도록 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기업마다 CSO를 세운다고 하는데, 아닌 것 같다"며 "책임이 있으려면 예산이 독립적이어야 하는데, 안전 관련 예산 편성권을 따로 갖지 않는 이상 CSO가 정말로 책임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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