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최유리 기자 = 보험 관련 민원 처리를 금융당국과 보험협회로 이원화하려는 논의가 공회전만 하고 있다. 생명·손해보험협회가 단순 민원을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소비자단체 반발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상품이 복잡하고 약관 해석이 필요한 보험 특성상 민원이 급증하고 있지만 처리는 점점 느려지는 상황이다.
10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김한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4월 대표 발의한 보험업법 개정안은 10개월째 국회에 계류 중이다. 금융 소비자단체 반발에 부딪히면서 국회 내에서도 논의가 지지부진했다.
김한정 의원실 관계자는 "최근까지 소비자단체와 법안에 대해 설명하는 자리를 가졌지만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며 "법안 처리에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2020.05.11 angbin@newspim.com |
개정안의 골자는 보험협회도 민원 처리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현재는 금융감독원이 모든 보험 민원을 처리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보험금 지급 분쟁 등은 현행대로 금감원에 처리하고 단순 민원이나 업계 이해관계자들의 분쟁 조정은 협회를 통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보험회사의 단순 업무 처리 실수, 보험료 할인·할증 질의, 교통사고 과실 문의, 보험사·설계사·병원·정비업소 등 업계 관계자 간의 문제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2020년 보험 민원 중 16~17% 가량을 협회에서 처리할 수 있다.
이원화를 추진하는 것은 보험민원이 급증하면서 처리 속도가 그 만큼 늦어지고 있어서다. 민원 처리 지연으로 소비자들의 불만이 커지는 가운데 당국도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실제로 금융민원의 평균 처리 기간은 갈수록 길어지는 추세다. 2017년 16.5일에서 2020년 29.0일로 늘었다.
쌓이는 금융민원의 주범은 보험이다. 2020년 금감원에 접수된 보험 관련 민원은 5만3294건으로 전체 민원 중 가장 높은 비중(59%)을 차지했다.
보험 민원이 다른 업권에 비해 많은 이유는 보험업법에 따라 금감원만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금융투자협회나 여신전문협회는 각각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여신전문금융업법'에 근거해 분쟁조정이나 민원 상담 업무 등을 맡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다양하고 복잡한 상품, 약관에 대한 해석과 이해의 차이, 아웃바운드식 판매 방식 등 보험의 특수성 때문에 다른 업권보다 민원 비중이 높다"며 "민원 처리가 지연되면서 소비자 불만도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민원 처리 속도를 높이기 위한 것임에도 소비자단체는 거세게 반대하고 있다. 보험사들의 이익단체인 보험협회에 민원 처리를 이관하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배홍 금융소비자연맹 보험국장은 "민원 업무를 협회로 넘기는 것은 소비자를 보호하는 게 아니라 포기하겠다는 것"이라며 "금감원 인력을 늘리는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주장했다.
당국과 보험업계는 답답한 상황이다. 소비자가 민원 처리 기관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협회가 중립성을 확보할 수 있는 장치들을 마련할 계획이지만 소비자단체의 일방적인 주장에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인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현 방식으로는 민원 처리에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다"며 "협회에서 중립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민원 처리 조직을 외부 위원들로 구성하는 한편 감독원이 수시로 보고를 받고 감사를 하는 등 방안을 만들어 법안 논의 과정에 반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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