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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대통령은 왕이 아니다

기사등록 : 2022-02-09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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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면 성균관대 특임교수

한국인들에게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권력구조 개편을 골자로 한 개헌안이 화두로 떠오르지만 논의의 테이블에 대통령제 이외의 대안이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른 적은 없다.

대통령 4년 중임제 같이 대통령제의 틀 안에서 개선을 하자는 목소리는 큰 반면 의원내각제를 지지하는 목소리는 미미하다. (허긴 의원 내각제도 강고한 폐쇄적 기득권으로 인한 고인물로서의 그늘이 크다. 지역 토호형 정치가문과 세습, 무소불위 군림형 특권층 생성의 부작용이 그것이다.) 최고권력자를 직접 뽑는다는 사실에 대한 한국인들의 애착이 그만큼 크다는 것이다.

전 국민적 염원과 역량이 총 결집해 이루어낸 1987년 6월 항쟁의 성과가 다름 아닌 대통령 직선제였다는 점은 한국인들의 인식의 기저에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매우 큰 의미로 살아있다는 점을 드러내준다.

어쩌면 현대 한국의 헌정사는 대통령직이 갖는 의미와 실체가 왕조시대 군주에서 선출된 공복으로 변모해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스스로를 '나라의 아버지(國父)'로 위치시켰고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 때까지도 대통령을 백성을 영도하는 군주로 보는 인식이 팽배했다.

권력이 스스로를 그렇게 인식한 것만큼이나 국민들이 권력을 그렇게 바라봤다는 점도 무시하지 못한다. 아직도 비서실장을 도승지, 장관을 판서로 비유하는 언론기사가 심심치 않게 나오는 걸 보면 여전히 우리는 대통령을 선출된 왕으로 보는 인식의 관성에서 자유롭지 못한 듯 하다.

이근면 교수.

그렇지만 우리가 뽑는 대통령이 모든 문제를 한번에 해결해 줄 메시아, 복잡하게 얽힌 사회 현안을 명료하게 판결해줄 절대군주가 아니라는 점은 초등학생도 아는 사실이다. 여전히 대통령 후보들은 이 사회가 해결해야 할 굵직굵직한 난제들을 자기 임기 내에 뚝딱 해결해 낼 것 같은 언사를 쏟아내고 국민들은 왕의 행차 길에 신문고를 울리는 심정으로 온갖 고민과 작은 문제들을 대통령 앞으로 가져가고 있다.

어떤 조직이든 구성원 모두 각자의 책임과 위치에 걸맞는 규범적 행동을 바란다.  3.8선의 초소를 지키는 이등병이 보초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면 국민의 한 밤이 평온하듯이 결국 구성원 모두의 시스템적 기여가 건전한 사회이다. 의견과 소통 또한 역할과 계층에 따라 교환되고 논의된다.

헌데 조직의 장에게 누구나 직접 소통을 한다면 이것이 좋은 조직의 형태인가? 대통령에게 직보하는 청원제도가 갖는 의미를 반추해 보면 제자리에서 제 몫을 다하지 못하여 민의가 수렴되지 못하는 절차와 방법에 문제가 있으며 국가 의 기능적 역할이 건강하지 못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여기서 바로 제왕적 대통령을 이야기 하는 폐해의 또다른 그림자를 보게 되는 것이다.

대통령이 자신이 내건 수많은 공약을 다 지키지 못함을 우리는 알고 있고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이들도 국민들의 그 수많은 고민들을 자신이 모두 담아내지 못함을 알고 있다. 가정도 가장이 혼자 꾸려갈 수 없고 작은 회사도 사장이 모든걸 해결할 수 없는 시대다.

하물며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자랑하는 대한민국과 같은 복잡한 사회를 어찌 대통령 한 사람이 모두 책임지겠는가? TV토론 많이 해서 가장 똑똑하고 유능한 후보를 뽑자고 하지만 우리 시대에 필요한 대통령은 지식의 양과 화려한 언변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사람이 아니다. 현대 국가경영능력이란 한 개인의 탁월성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규모와 미래에 걸맞는 시스템적 체계를 가동하는 집단 의사결정구조를 의미한다.

공복이어야 할 '대통령'이란 단어의 뜻은 왕이 아니다. 슈퍼맨 선발대회를 보는가? 아니면 누가 슈퍼맨을 바라는가?의 미묘한 간극이 민주주의를 바라보는 시선이 머무는 곳이 된다. 선택의 순간이 딱 한달 남았다. 대통령이 더 이상 선출된 군주가 아님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선거가 되길 바란다. 대통령은 5년이라는 제한된 시간동안 제한된 양의 권력을 엄격한 절차에 의해 행사할 공무원의 수장일 뿐이고 나라 밖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할 국민의 한 사람일 뿐이다. 대권은 물려받는 것도 아니고 하늘이 내리는 것도 아니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국민들의 의지가 하나로 모아져 만들어 내는 것이다.

불법주차를 근절하고 드라마 방영을 중지하고 동물학대범을 발본색원하는 것은 대통령의 임무가 아니다. 그런 무수히 많은 문제들은 국가시스템이 해결하게 하고 국민들의 의지의 총합인 대통령은 다음 세대가 이 땅에서 풍요를 누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역사 속에서 우리 민족이 어떤 시련을 겪어 왔는지 정확히 이해하고 대한민국이 변방에서 중앙으로 끊임없이 나아갈 수 있도록 부여된 권력(?)을 써야 한다. 「G3를 꿈꾸는 내일」 같은 스토리를 말이다. 부디 이번 선거가 우리 아들, 딸들이 마음 편하게 일할 수 있는 나라, 불 덜나가고 집 안 무너지고 밤거리 안심하고 돌아다닐 수 있는 나라, 열심히 일하면 가계를 부양할 수 있고 다른 나라로부터 무시당하지 않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벽돌 한 장 놓을 수 있는 사람을 뽑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본다.

이제 곧 임기를 마친 000씨를 우리는 마주하게 된다. 그저 우리의 이웃으로써. 그리고 역사는 평가한다. 좋은 이웃이었는지? 리더였는지? 아닌지?

이근면 교수는 삼성그룹에서 37년 동안 인사조직의 최일선을 지휘했던 인사전문가다. 그 전문성을 인정받아 2011년 세계 3대 인명사전인 마르퀴즈 후즈후에 이름을 올렸다. 2014년 11월 초대 인사혁신처장으로 임명돼 공직사회 혁신을 진두지휘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학부대학 특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인사처장으로 재직할 당시 성과주의를 공무원 사회에 도입했으며, KTX 이용시 일반실을 타는 장관급 공무원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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