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정승원·임성봉·정연우 기자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24일(현지시간) 현실화 되면서 국내 산업계도 전방위 타격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국내 기업들은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피해 최소화에 나선다는 방침이지만 잔뜩 긴장한 분위기가 역력하다.
특히 우리 정부가 對러시아 제재에 동참하기로 결정하면서 러시아 대상 교역에 적잖은 차질을 빚을 것으로 예상된다.
◆ 對러시아 '수·출입' 직격탄 공포
이날 업계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되자 서둘러 대응책 마련에 나선 모습이다. 특히 당장 국내 산업계에 미칠 영향을 분석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무역협회가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등 동유럽권 수출입 기업 86개사를 대상으로 긴급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기업들은 이번 사태 악화 시 '거래 위축'(22.7%), '루블화 환리스크'(21%), '물류난'(20.2%) 등을 가장 우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뉴스핌]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22일 서울 종로구 무역보험공사 대회의실에서 열린 주요 업종 우크라이나 사태 및 수출상황 점검회의에서 발언을 하고있다.이날 회의에는 유정열 KOTRA 사장, 백승달 무역보험공사 부사장, 김병유 무역협회 본부장, 이창한 반도체산업협회 부회장, 변영만 철강협회 부회장, 이병철 조선해양플랜트협회 부회장, 김기준 섬유산업연합회장, 이승규 바이오협회 부회장, 김영철 기계산업진흥회 본부장, 김평중 석유화학협회 본부장, 구회진 전지산업협회 본부장, 이상진 디스플레이산업협회 본부장, 김주홍 자동차산업협회 상무, 임호기 전자정보통신진흥회 상무를 비롯한 업종별 협·단체와 관련 유관기관 대표 및 관계자 20여명이 참석했다. [사진=산업통상자원부] 2022.02.22 photo@newspim.com |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가 전면전 등으로 악화된다면,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합병한 이후 우리나라의 대(對)러시아 수출이 크게 줄었던 때와 같이 우리 수출입 거래에 큰 피해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2014년 당시 우리나라의 러시아 수출규모는 101억 달러였으나 크림반도 합병 후 1년이 지난 2015년에는 전년대비 53.7% 급감하면서 47억 달러를 기록했다.
러시아는 우리나라의 10위 교역대상국으로 러·우 사태 악화 시 우리 수출입 기업이 다수 포진해 있는 화장품(444개사), 기타플라스틱(239개사), 자동차부품(201개사) 등을 중심으로 직접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또한, 러시아는 2014년 이후 탈달러화를 계속 추진해왔지만 여전히 달러화 결제 비중이 50%가 넘어 이번 사태로 향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에서 러시아가 배제되는 경우 우리 기업들의 대금결제 지연·중단 피해가 불가피하다.
◆ '배터리·반도체' 어쩌나
우크라이나는 반도체 생산공정에 반드시 필요한 희귀가스인 네온, 아르곤, 크립톤, 크세논 등의 주요 공급 국가이다. 삼성전자 등 국내 기업 역시 네온과 크립톤, 크세논 품목의 우크라이나 수입의존도가 각각 23%, 30.7%, 17.8%에 달한다. 러·우 사태가 악화될 경우 이들 수입 원자재의 수입단가 상승, 수급 차질 발생에 따라 수입 부담이 가중될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배터리 핵심소재인 니켈, 알루미늄, 반도체 공정에 필수적인 네온(Ne)과 크립톤(Kr), 니켈 등 원자재 가격 급등이 글로벌 공급망 변동성을 더 키우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가운데 니켈은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소재로 전기차 생산 확대로 인한 공급난을 겪으며 이미 지난해 25%, 올해 16% 가격이 치솟은 바 있다. 여기에 더해 러시아에는 전 세계 니켈 생산량의 약 10%를 차지하는 광산업체 '노르니켈'이 있다.
국제유가도 러·우 사태 여파로 배럴당 15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공급 대비 빠르게 늘어난 수요 영향으로 이미 오르고 있던 유가에 기름을 부은 격이라는 해석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도 지난 15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러시아의 대(對) 유럽 석유·가스공급 차질이 일어나면 국제 에너지시장 불안, 가스대체 석유 수요 증가로 국제유가가 두바이유 기준 배럴당 최고 15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 자동차 업계도 빨간불...원자재 공급 비상
우크라이나로부터 원자재 공급을 받고 있는 쌍용자동차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쌍용차는 현재 협력사를 통해 우크라이나로부터 알루미늄을 포함한 원자재, 인접국인 슬로바키아로부터는 조립용 부품을 공급받고 있다. 이번에 양 국 간 갈등이 커지면 이들 원자재 공급에 어려움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무력충돌로 인한 국내 자동차업계의 피해는 과거에도 있었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합병할 당시 승용차(-62.1%)가 가장 큰 수출입 피해를 입었고 3위는 타이어(-55.9%)였다.
현대차기아 서울 양재동 사옥 [사진=현대차그룹] |
양국 간 국지적 충돌이 발생하면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러시아에 수출 등 경제 제재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러시아 현지 자동차 내수판매 규모는 10%, 전면전으로 확대 시 29% 가까이 감소할 전망이다.
국내 자동차와 자동차 관련 부품이 대러시아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자동차산업협회는(KAMA)에 따르면 러시아 전체 수출에서 이 두 품목의 비중은 각각 29.2%와 15%로, 전체의 44%에 달한다. 수출액은 자동차가 연간 24억9600만달러(약 3조원), 자동차 부품이 14억5400만달러(1조7400억원)다.
◆ 조선업계 "유가·LNG 가격 상승은 수요 증가"
반면 조선업계는 상대적으로 이번 사태에 따른 피해에서 한 발 떨어져 있는 모습이다. 오히려 유가와 LNG 가격 상승은 해양개발과 LNG운반선 수요 증가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유가는 이달 들어 평균 91.3달러를 돌파하며 지난 2014년 이후 최고치를 찍고 있다. 여기에 러시아는 유럽 최대의 LNG 공급처다. 이에 우크라이나 침공이 본격화될 경우 러시아가 유럽에 가스 공급을 중단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LNG운반선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유가 상승이나 LNG 가격 상승은 조선업계 입장에서는 부정적인 상황은 아니다"며 "그러나 이들 가격이 상승한다고 해서 당장 건조할 배가 늘어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단기적인 상황만 두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철광석 가격과 석탄가 상승은 조선업계도 부담이다. 철광석 가격은 지난 11일 기준 톤당 149.32달러를 돌파했다. 지난해 11월 톤당 89달러로 저점을 찍은 이후 60달러, 60% 이상 상승한 것이다.
톤당 149.32달러는 톤당 226달러를 넘어섰던 지난해 5월과 비교해서는 상대적으로 높지 않은 가격이다. 그러나 제철용 원료탄인 석탄 가격 역시 톤당 440달러를 돌파하면서 지난해 5월 톤당 110달러 대비 300% 가까이 올랐다. 이는 제철 과정에서의 비용 증가로 이어져 후판가에도 영향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국내 철강업계 관계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철광석 주요 산지가 아니다. 철광석은 호주, 캐나다, 브라질로부터 수입을 하고 있다"며 "다만 석탄의 경우 러시아쪽에서 생산되고 있다. 결국 러시아와 관련해 석탄이나 석유의 가격이 영향을 받기는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