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성이 확립되기 전까지 인류는 무수히 많은 내전과 전쟁으로 피를 흘렸다. 셀 수 없을 만큼 빈번했던 무력충돌의 가장 중요한 이유는 권력의 쟁취였다. 권력은 한정된 사회적 자원을 분배할 수 있는 힘, 상대방이 원치 않는 것을 하도록 강제하는 능력이다. 이 요술방망이를 누가 갖느냐 하는 과정이 평화로울 리가 없다.
권력을 가진 쪽은 권력을 갖지 않은 쪽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풍요와 안위를 보장받을 수 있고 반대로 권력을 빼앗긴 쪽은 노예상태로 전락하거나 목숨을 내놓아야 하기에 권력투쟁 과정은 이전투구의 양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삼국지, 일리아스와 같은 역작들은 인류가 걸어온 처절한 권력투쟁의 역사가 예술로 승화된 경우이다.
현대인류, 그 중에서도 민주주의라는 옷을 입은 인류는 더 이상 무력으로 권력을 다투지 않는다. 현대민주주의 국가에선 칼과 창으로 하던 권력투쟁을 말과 글 그리고 선거로 한다. 대통령선거라는 대회전이 축제처럼 치러지고 선거에서 졌다고 패배한 쪽이 줄줄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거나 노예로 끌려갈 일도 없다. 과거의 권력투쟁은 한 명이라도 더 죽여야 이겼지만 오늘날의 권력투쟁은 한 표라도 더 많은 지지를 얻어내야 하는 것으로 성격이 완전히 바뀌었다.
말과 글로 권력을 다투는 시스템이 확립되는 과정에서 권력은 왕과 귀족, 무사와 성직자 등 소수의 선택된 사람들로부터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전이되었다. 과거엔 권력의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던 평범한 시민들이 권력의 주체가 되고 누구나 한 표씩 행사할 수 있는 보통선거 제도가 확립되면서 이제 권력은 모든 국민이 공유하는 것이 되었다.
민주주의가 성숙한 사회에선 권력을 가진 자들이 특정 계파, 특정 지역, 특정 연령, 특정 종교에 유리하게 사회적 자원을 몰아주면 그 권력은 강제로 회수될 수 있다. 국민들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된 권력'을 가진 자를 존중함과 동시에 견제 할 수 있고 그리고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꽃'이자 묘미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상론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선 선거라는 형식은 거쳤지만 권력을 독점한 소수가 끼리끼리 나눠먹는 모습이 여전히 횡행한다. 선거 때 자기에게 줄 선 사람들에게 승리 후 공직, 이권으로 보상을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전체 국민에게 돌아가야 할 자원이 소수의 선거공신(시쳇말로 개국공신, 창업공신이다.)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지난 수십년 간 눈부신 민주주의의 질적 성장을 이뤄냈지만 아직도 권력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권력을 사유화하고 국민들에게 돌아가야 할 몫을 빼돌리는 구시대적 관행이 남아있다. 국민이 부여한 권력을 가까운 사람들이 임의로 이용하다가 대통령이 불명예스럽게 물러난 것이 불과 몇 년 전이다.
뒤이어 집권한 정권은 야심차게 공정을 외쳤지만 여전한 낙하산 인사 행태를 보여줬고 조국사태를 거치며 우리 편끼리 밀어주고 당겨주는 카르텔의 실체를 전 국민에게 들켜버렸다. 선거를 통해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일시적으로 위임 받은 사람들이 그 권력을 자기 마음대로 엉뚱한데 쓰는 행태가 2022년 현재에도 남아있고 이러한 구태는 여와 야를 가리지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 국가적 가치나 정신, 법과 원칙의 문제이다. 심지어는 이를 재단할 심판인 사법부에도 불똥이 튀었다. 전∙현직 대법관까지도 그 행동과 판결에 논란을 빚고 있다. 사회적 신뢰의 위기다.
◇선출권력은 왕인가?
선거 때마다 국민은 우리의 왕이 국민을 굽어 살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투표장으로 향한다. 이러한 반복되는 현상을 보면 과연 누구를 위한 민주주의인가?하고 자문하게 된다. 이제는 제왕적 민주주의의 그늘에서 벗어나야 한다. 왕은 국민에게 위임된 자로서 역할에 충실해야 하며 권력을 사유화 할 것이 아니라 국민의 몫을 돌려주어야 한다.
'권력은 끼리끼리 해먹기'라고 정의하고 있지 않다면 '우리 편'만 기용해서는 안된다. 정치와 행정, 공공 각 분야에 대한민국을 대표할 대표자를 뽑아야지 내게 줄 섰던 사람만 가지고 기용한다면 결국 권력을 사유화 하게 되고 그들만의 이익을 위하여 봉사하는 자가 된다. 그렇게 된다면 지금 우리의 투자는 그저 본전을 못 건지게 되는 투자가 될 뿐이다.
왕이시어 굽어살피소서. 이제 며칠 후면 다음 5년 동안 누가 청와대의 주인이 될지 결정된다(하긴 왕도 이제 법과 상식에 따라 국가를 운영하는 선량한 관리자의 의무가 있다). 선거에서 나를 도와준 내 편에게만 기회를 주고 네 편은 완전히 배제하는 식의 권력행사는 이제 버려야 할 과거의 유산이 되었으면 좋겠다. 586운동권 출신들끼리, 같은 일을 하던 동료나, 선후배끼리 요직을 독점하고 나라를 이끌어선 안 된다. 이 문제는 대통령의 공약이나 여와 야,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는 문제다. 정치권력이 얼마나 많은 국민, 대한민국을 폭넓게 대표하느냐 하는 문제다.
◇꿈, 명예, 그리고 역사
대한민국의 대표자가 되면 상대당과의 사생결단 싸움이나 정치적 적폐청산은 멈추고 두루뭉술한 공약을 선명한 목표와 구체적인 청사진으로 채워야 할 것이다.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함, 결과의 정의로움 같은 막연한 구호가 많은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였지만 임기 5년차에 접어든 지금 평등과 공정함, 정의로움이 무엇인가를 두고 나라는 두 쪽으로 갈라져 소모적인 논쟁만 이어지고 있다. 위대한 지도자는 항상 다음 세대가 어떤 나라에 살게 될지에 대한 큰 그림을 제시했다. 절대 빈곤에서 탈출한 나라, 민주주의가 실질적으로 정착된 나라, 제조업과 정보통신 역량이 세계 최고 수준인 나라는 하루아침에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현대사의 변곡점에서 온 국민이 함께 꾸는 꿈을 제시하고 시대의 문턱을 넘으려 노력했던 대통령들이 있었다.
5년 후에 국민들이 투표장에 가서 이 쪽이나 저 쪽이나 똑같이 끼리끼리 해먹는 놈들이라며 자기 신세를 한탄하지 않도록 만들 의무가 정치인들에게 있다. 국민들은 묻고 있다. 당신들은 누구의 편이냐고. 그리고 역사에는 "어찌 남을 거냐?"고…
대한민국에 답할 차례다.
이근면 교수는 삼성그룹에서 37년 동안 인사조직의 최일선을 지휘했던 인사전문가다. 그 전문성을 인정받아 2011년 세계 3대 인명사전인 마르퀴즈 후즈후에 이름을 올렸다. 2014년 11월 초대 인사혁신처장으로 임명돼 공직사회 혁신을 진두지휘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학부대학 특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인사처장으로 재직할 당시 성과주의를 공무원 사회에 도입했으며, KTX 이용시 일반실을 타는 장관급 공무원이라는 평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