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제20대 대선에서 '성별 갈라치기'가 선거전략으로 활용되면서 우리 사회 젠더갈등을 부추겼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대남'과 '이대녀'는 실제 투표에서 뚜렷하게 갈린 표심을 보여줬다. 최근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두고 시민사회가 분열하는 모양새다. 전문가들은 여가부 존폐와 젠더갈등을 연결짓는 시각에 우려를 표한다. 뉴스핌은 '도 넘는 젠더갈등'이라는 연속보도로 과장된 젠더갈등의 실체와 향후 해법 등을 짚어본다.
[서울=뉴스핌] 지혜진 기자 =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두고 논란이 뜨겁다. 구체적 대안 없이 '폐지'될 경우 그 동안 여가부로부터 지원을 받아온 경력 단절 여성, 미혼모, 학교밖 청소년 등 소수자들의 불안감은 커질 수 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여가부 존폐에만 집중할 경우 본질적인 문제인 성평등 문제 해결에 소홀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 여가부 폐지 움직임에 경력단절여성·미혼모 등 정책 수혜자들 '발 동동'
"여가부가 폐지되면 여가부로부터 지원받는 학교밖 청소년들은 다시 방황하게 되는 건 아닐지 염려됩니다."
대학생 임모(20) 씨는 여가부 폐지 움직임에 대해 이같이 우려했다. 학교밖 청소년이었던 임씨는 여가부로부터 검정고시를 볼 수 있도록 교재와 수업 등의 지원을 받았다. 이외에도 자립할 수 있도록 자격증 교육, 급식비, 교통비, 건강검진 지원을 받았다.
임씨는 "여가부 기능을 다른 부서로 옮긴다고 할지라도 현재처럼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서울=뉴스핌] 김학선 기자 =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13일 후보 시절 내세웠던 여성가족부 폐지와 관련해 "역사적 소명을 다하지 않았나 한다"며 "지금부터는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불공정 사례에 더 확실히 대응하는 게 맞다"고 폐지를 시사했다. 사진은 1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내 여성가족부의 모습. 2022.03.14 yooksa@newspim.com |
현재 포털사이트 네이버 지식 공유 서비스인 '지식인'에는 여가부 정책수혜자들이 여가부가 폐지될 경우 앞으로 지원을 계속 받을 수 있을지를 묻는 글들이 다수 올라와 있다. 자신을 중학생이라고 밝힌 한 질문자는 "한부모가정과 기초생활수급자로 여가부에서 지원을 받고 있는 중학생인데 만약 여가부가 폐지되면 지원받던 어떤 것들이 사라지는 건가"라며 "고등학교 학비도 여가부에서 지원해 주는 걸로 알고 있는데 여가부가 폐지되면 고등학교 학비를 지원받지 못하는지" 등을 물었다. 지식인에는 현재 여가부 존폐를 언급한 글이 980여건 올라와 있다.
오영나 미혼모지원네트워크 대표는 "미혼모들은 한두 달만 지원이 끊겨도 생활에 위협을 받는다"며 "갑자기 폐지 이야기가 나오니까 기존에 지원받던 사람들은 지원이 유지될 수 있을지 불안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여가부는 저소득 한부모가족에 아동양육비, 아동교육지원비, 생활보조금 등을 지원하는 등 미혼모를 비롯한 한부모가족의 자녀양육을 지원하는 정책을 시행 중이다.
오 대표는 "타부서로 기능을 이전한다고 해도 현재 받는 지원 기준이 바뀔 수 있어서 불안해하는 미혼모들이 많은 상태"라며 "정책수혜자들에 대한 고민 없이 일단 폐지라는 화두를 던지고 급작스럽게 고민하는 것 같은데, 정책 지원을 받는 사람들에겐 정말 중요한 문제이니 신중하게 잘 고민해서 부작용 없이 만들어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경력단절 여성들을 지원하는 방태숙 다정리협동조합 이사장은 "여가부 폐지는 경력단절 여성들에게는 희망이 없어지는 것과 같다"며 "현재 업무가 다른 부처로 흡수된다고 해도 여가부가 하는 것처럼 다양하고 세세하게 정책이 실현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걱정했다.
다정리협동조합은 지난 2018년 초 여가부 새일센터에서 취업 지원을 받아 정리수납전문가 자격증을 딴 경력단절 여성들이 만든 단체다. 현재는 공공의 공모사업을 통해 '워킹맘'이나 한부모 가정에 정리수납 및 가사서비스를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대남' 표심을 끌어모으기 위해 여가부 폐지 공약을 내놓았지만, 이로 인해 피해를 보는 것은 사회적 약자들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여가부 예산의 대부분이 경력단절 여성, 미혼모, 학교밖 청소년 등 소수자를 지원하는 데 쓰이기 때문이다.
올해 여가부 예산은 1조4650억원으로 정부 전체 예산 중 0.24%를 차지한다. 여가부 예산 중에서도 양성평등과 관련된 예산은 7%에 불과하다. 한부모 가족 지원, 아이돌봄서비스 등 가족 정책에 62%를 사용하고 있으며 뒤이어 청소년 정책 19%, 권익증진 9% 순이다.
◆ 여가부 '폐지' 두고 시민사회 갑론을박
시민사회는 여가부 폐지 여부를 두고 갑론을박하는 모양새다. 반대하는 시민들은 가뜩이나 심각한 성별 불평등이 여가부 폐지로 인해 더 심화할 것을 우려한다.
성평등 정책 강화를 요구하는 여성과 시민모임은 "여가부 폐지는 명백한 퇴행"이라며 "여성가족부 폐지는 성차별 구조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 뿐 아니라 협치와 통합을 저해하는 갈등 요인이 되어 대한민국의 역사를 퇴보시킬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여성시민사회 연대체인 '2022 페미니스트 주권자행동'은 "OECD 10년 연속 최하위인 '유리천장 지수'를 비롯해 여성의 노동 참여율, 성별 임금 격차, 고위직 여성 비율 등 수많은 지표에서 한국의 불평등이 극에 달했지만 윤 당선자는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고 주장한다"고 했다.
이와 반대로 폐지에 찬성하는 목소리도 있다. 여가부가 제 역할을 못 한다는 이유에서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 김잔디(가명) 씨는 중앙일보에 기고하며 "꼭 정부 조직에 '여성'이라는 이름을 가진 부처가 있어야만 권리를 보장받는 형식적인 양성평등만이 필요한 것이냐"며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난 이보다는 피부에 직접 와 닿는 실질적인 양성평등을 바란다고 답하고 싶다"며 여가부 폐지에 찬성 입장을 밝혔다.
◆"여가부 존폐에만 집중해서는 갈등 해결 못 해"
전문가들은 여가부 존폐에 매몰되는 것은 젠더갈등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조언한다.
송재룡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여가부라는 제도적이고 형식적인 기구를 없애는 데 집중하기보다 젠더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고, 어느 부분에서 차별로 작용하는지 등을 깊이 있게 이야기해야 한다"며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성차별 문제는 하루아침에 제도를 신설한다거나 폐기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고 분석했다.
이어 "여가부를 폐지하더라도 그로 인해 생길 공백에 대한 대안, 제도적인 보완책 등이 제시되어야 한다"며 "공약을 했기 때문에 없앤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젠더갈등이 정치권이나 언론에 의해 만들어진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2030 남성들은 여성의 경제활동에 대해 긍정적이고 가사노동이나 육아에 참여하겠다는 비율도 높은 편"이라며 "일부 정치권이 이 같은 현실은 보지 않고, 왜곡해서 젠더갈등을 지나치게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젠더갈등이 두드러지면서 계층 갈등이나 잘못된 정책, 구조적인 문제 등이 숨겨지는 부작용이 있다"며 "도리어 청년층의 일자리, 주거 등의 불안정과 불만을 해소함으로써 현재의 갈등 상황이 완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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