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고인원 기자= 우크라이나 사태로 글로벌 원자재, 식량 대란 우려가 제기되는 가운데 중남미 관련 펀드 수익률이 뜀박질하고 있다. 러·우크라 전쟁과 대러제재 등으로 원자재 가격이 치솟자 곡물 등 자원 부국인 중남미 국가들이 반사 효과를 누릴 것이란 기대에 자금이 몰려든 탓이다.
이미 주요국 증시를 앞서는 높은 수익률을 보인 중남미 증시가 강력한 상승세를 이어가며 올해가 '중남미 투자의 한해'가 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브라질 헤알화 [사진= 로이터 뉴스핌] |
중남미 시장에 상장된 40개 대형 기업에 투자하는 아이셰어즈 라틴아메리카 40 상장지수펀드(ETF, 종목명:ILF)는 올해에만 29% 이상 올랐다. 같은 기간 아이셰어즈 MSCI 이머징 마켓 ETF(EEM)가 5.4% 하락한 것에 비교하면 눈부신 성과다. 뉴욕증시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는 연초 대비 3% 내렸다.
아이셰어즈 MSCI ETF 가운데 브라질 지수 추종 ETF인 EWZ는 35% 급등했으며, 멕시코 ETF인 EWW도 올해에만 8% 올랐다. 아르헨티나, 페루, 칠레 등 중남미 국가들을 추종한 ETF 역시 순항하고 있다.
이미 중남미 증시를 추종하는 ETF가 미국이나 이머징 마켓 증시를 뛰어넘는 상승세를 보였음에도 시장 전문가들은 1) 식량, 에너지 등의 주요 수출국인 러·우크라 전쟁에 따른 원자재 시장의 공백 2) 전 세계 증시에 비해 초저평가 수준인 중남미 증시의 '매력적인' 밸류에이션을 감안할 때 이들국 증시의 상승세가 올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 중남미 식량·경질품 시장 점유율 확대 기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밀과 옥수수를 포함한 다양한 상품의 주요 수출국이다. 하지만 양국 간 전쟁이 장기화되며 이들 상품 공급에 차질이 빚어졌고, 이틈을 타 비슷한 상품을 수출하는 중남미 국가들이 시장점유율을 확대할 기회가 생겼다.
러시아 야로슬라블주 로스토프 네드비고프카 마을의 밀 밭 [사진=로이터 뉴스핌] |
투자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BofA)에 따르면, 2020년 기준으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전 세계 밀 수출의 26%, 전 세계 옥수수 수출의 약 15%를 차지했다. 양국은 또한 냉동 생선의 10%, 해바라기 종자의 50%, 전 세계 보리 수출의 5분의 1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BofA는 "러시아로부터의 (상품) 공급이 대러제재와 공급망 차질로 영향을 받고 있어 농산물과 니켈ㆍ철광석 등 경성 원자재(hard commodity)의 글로벌 공급원인 중남미가 새로운 글로벌 무역 질서의 주역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 심각하게 저평가된 주가 수준
최근 몇년 중남미 증시가 여타국 증시에 비해 훨씬 뒤쳐지는 실적을 보이며 주가가 '심각하게' 저평가 돼 있는 것도 올해 중남미 증시의 전망을 낙관하는 또 다른 이유다.
2020년 초부터 2021년 말까지 아이셰어즈 라틴아메리카 ETF는 31%가량 하락했다. 같은 기간 S&P500이 47.5% 상승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 기간 아이셰어즈 MSCI 이머징 마켓 ETF도 8.9% 올랐다.
중남미 국가 중에서도 브라질 ETF는 2020년부터 2021년 말까지 40% 이상 급락했다. 멕시코 ETF의 주가는 같은 기간 12.4% 상승했지만 S&P 500과 아이셰어즈 MSCI 올 컨츄리 인덱스(ACWI)가 이 기간 30% 넘게 급등한 것에 대폭 못 미쳤다.
BofA는 최근 2년간 중남미 증시의 부진으로 이 지역 주가가 '심각하게 할인된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중남미 증시의 트레일링(과거 1년간 실적을 기준으로 계산) 주가순자산비율(PBR)은 현재 7.5배로 사상 최저 수준이다.
아제이 싱 카푸르 BofA 주식 전략가는 "경기 침체와 정치적 불확실성, 코로나 팬데믹에 따른 여파로 이들 국가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팬데믹 이전 수준에도 못 미치고 있지만, 조만간 회복이 가능할 것"으로 진단했다.
카푸르 전략가는 "특히 사상 최저 수준인 트레일링 PBR과 경쟁력 있는 통화"를 강점으로 꼽았다.
◆ 브라질이 단연 '탑픽'
중남미 국가 중에서 가장 눈여겨 볼만한 국가로는 브라질이 꼽혔다. 무역면에서 러시아에 대한 직접적인 노출이 거의 없으며, 현지 금리가 정점을 찍었고 상품시장에 대한 노출이 커서 우크라 사태에 따른 반사이익이 기대된다는 이유에서다.
T로우 프라이스의 베레나 와치니츠 매니저는 브라질 증시의 섹터별 다양성도 브라질 증시의 강점 중 하나로 꼽았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 브라질 전 대통령 [사진=로이터 뉴스핌] |
특정 종목에 투자하기를 꺼리는 투자자라면 아이셰어즈 MSCI 브라질 ETF(EWZ)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이 펀드는 운용 보수율이 연간 0.57%로 저렴한 축에 속하며, 브라질 대기업과 중견기업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만 오는 10월 브라질에서 대선을 앞두고 극우 성향의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좌파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 간 박빙이 예상되고 있어 리스크로 꼽힌다.
또 원자재 가격 상승은 브라질과 중남미 국가들에는 양날의 검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이미 이들 국가에서 인플레이션이 빠르게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BofA는 이 지역 증시의 금융 부문에 대한 익스포져가 커서 금리 인상과 인플레이션에 따른 여파를 완충하는 효과가 있다고 분석했다. T로우의 와치니츠 매니저는 더불어 중남미 증시의 밸류에이션이 워낙에 낮기 때문에 대선과 인플레이션에 따른 역풍에도 불구하고 이들국 증시가 '여전히 매력적'이라고 평가했다.
koinwo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