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배정원 기자 =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윤성여 씨가 잘못된 사법행정 시스템의 책임을 묻기 위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5부(김경수 부장판사)는 27일 윤씨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첫 변론기일을 진행했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남산 스퀘어빌딩에 위치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사무실 앞에서 열린 이춘재연쇄살인사건의 총체적인 진실규명을 요구하는 신청서를 제출 기자회견에서 피해자인 윤성여씨가 발언하고 있다. 2021.01.25 pangbin@newspim.com |
원고 측 박준형 변호사는 "당시 경찰의 불법체포·감금·가혹행위뿐만 아니라 검찰, 법원, 국과수, 국선변호인까지 모두가 관여한 불법행위가 있었다"며 "그로 인해 사회적 약자가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20년 옥살이를 했다. 이런 일은 앞으로 다시는 벌어지지 않아야 되고 이 사건을 통해 당시 수사나 재판 과정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를 지적하고 싶어서 이번 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김칠준 변호사는 "30년 전 잘못된 사법행정 시스템으로 인해 불법수사, 허위 조서 작성, 국과수 감정자료 왜곡 등이 있었고 고의적인 것이 아닐까라고 의심스러울 정도로 방치했던 모든 오류가 한꺼번에 집약돼서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만들었다"며 "이번 소송은 단순히 금전적인 손해가 아니라 잘못 작동됐던 사법 시스템에 대한 불법을 규명하고 그 책임을 묻는 의미이다"고 설명했다.
재판이 끝난 이후 취재진을 만난 윤씨는 현재 논란 중인 '검수완박' 법안에 대해 "저도 약 30년 전에 그런 일이 있었지만 검찰의 수사권이 폐지되면 억울한 사람이 참 많이 나올 것 같다"며 검찰 수사권 폐지에 반대하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박준형 변호사는 "개인적으로 한 나라의 형사사법절차를 크게 바꾸는 문제는 신중하게, 각계각층의 의견을 잘 반영해서 했으면 좋겠다"며 현재의 검수완박 법안 처리과정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그러면서 "형사사법 절차가 복잡해지고 책임성이 옅어지게 되면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이 피해를 입을 수 밖에 없다"며 "지금 이대로 넘어가면 서민들의 피해가 더 많아진다는 점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이어 "작년에 검경수사권 조정 이후 검찰은 칼퇴근을 하고 경찰은 업무가 가중돼서 곡소리가 난다는 얘기가 있다"며 "그런 부분에 대한 개선 없이 오히려 그 문제점이 더 가중되는 형태가 지금의 개혁이라고 생각한다"며 "지금의 개혁은 총체적인 문제이다"고 지적했다.
앞서 윤씨는 살인 사건의 진범인 이춘재가 자백한 지난 2019년 재심청구를 해서 결국 31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아 누명을 벗었다. 당시 재판부는 "과거 수사기관의 부실행위로 잘못된 판결이 나왔다"며 "정신적·육체적으로 큰 고통을 받은 피고인에게 사법부 구성원의 일원으로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은 지난 1988년 경기 화성군 태안읍에서 중학생 A양이 성폭행을 당한 뒤 살해된 사건이다. 이듬해 범인으로 검거된 윤씨는 경찰의 폭행과 가혹행위에 못이겨 허위 자백을 하면서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이후 2심과 3심에서는 고문으로 인한 허위 자백임을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20년을 복역한 뒤 지난 2009년에 가석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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