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글로벌 경제의 스태그플레이션(저성장 고물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고자 무제한 돈을 풀던 미국과 EU 등 선진 국가들이 이제 인플레이션 우려로 긴축과 금리인상 등을 통해 돈줄을 조이고 있다. 여기에 국제유가 급등은 물론 원자재난 속에서 우크라이나전쟁까지 겹치면서 글로벌 경제와 궤를 같이 하는 한국경제 역시 휘청거리고 있다. <뉴스핌>은 현 국내외 경제 상황을 진단하고 우리 기업과 정부의 대응방안을 모색해 본다.
[서울=뉴스핌] 고인원 기자= 나스닥 지수가 약세장에 진입하는 등 뉴욕증시가 하락 압박에 시달리는 가운데 월가에서는 잿빛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 2년 가파른 랠리를 보였던 주식시장의 혹한기가 본격부터 시작될 거란 얘기다.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에 중국의 코로나19 봉쇄로 공급망 차질이 심화되며 인플레이션을 더욱 자극하는 가운데, 물가를 잡기 위한 미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고강도 긴축이 결국은 경기 침체를 불러일으킬 것이란 전망이 확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다우와 S&P500 등 미 증시의 주요 지수가 모두 현 수준에서 20% 이상 하락하며 베어마켓에 진입할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나스닥 종합지수 6개월 추이, 자료=구글] 고인원 기자 2022.05.04 koinwon@newspim.com |
지난주 뉴욕증시의 주요 지수는 폭락세를 연출했다. 40년 만에 최고 수준의 물가 상승률, 실망스러운 대형 기술주의 실적과 가이던스에 투매세가 연출됐다.
지난 29일 하루에만 나스닥은 4.17%가 빠졌다. 나스닥은 올해 들어서만 21% 하락해 지난해 오름세(21%)를 모두 반납했다. 나스닥 지수는 이로써 전 고점 대비 20% 이상 하락을 의미하는 '베어마켓(약세장)'에 본격 진입했다.
예상됐던 악재(인플레이션과 연준의 긴축)에 예상치 못한 악재(중국의 코로나19 봉쇄,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까지 덮치며 증시가 바닥을 모르는 추락을 이어가자 월가에서도 미 증시의 약세장을 점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앞서 2일 모간스탠리의 마이클 윌슨 전략가는 "S&P500은 현재보다 8~16% 더 떨어져 곧 3800까지 떨어질 수 있고, 최악의 경우 3460까지도 내려올 수 있다"고 점쳤다. 앞서 S&P500이 이전 고점 대비 20% 이상 하락하는 베어마켓에 들어갈 수 있다고 경고한 데서 한발 더 나아갔다.
미국 유명 금융 리서치 기업 헤지아이 리스크 메니지먼트 최고경영자(CEO)인 키스 맥컬러프도 미 연방준비제도(연준)의 때늦은 긴축으로 미 증시가 20% 이상 하락할 가능성을 경고했다.
그는 현 미국 경제 상황을 감안하면 S&P500지수가 올 여름께 베어마켓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미 나스닥이 베어마켓에 진입한 상황에서 전 고점 대비 10% 넘게 빠지며 조정장에 진입한 S&P500과 다우도 조만간 나스닥의 수순을 밟을 것이라는 게 이들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 연준 '인플레' 잡으려다 '경제' 잡는다
월가 전문가들이 미 증시의 하락세가 멈추지 않고 올 여름 경에는 약세장에 빠져들 것이란 보는 이유 중 하나는 치솟는 인플레이션과 이를 잡기 위한 연준의 과도한 긴축 대응이다.
연준은 물가가 안정 목표를 웃돌 때 이를 잡기 위한 수단으로 기준 금리를 사용한다. 통상 인플레이션은 수요와 공급 양측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 수요가 지나치게 뜨겁거나 공급이 부족할 때 물가는 상승세를 보인다. 따라서 시중의 유동성을 흡수하는 금리 인상은 수요를 억누르기 위한 정책에 가깝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사진=로이터 뉴스핌] |
그런데 문제는 지금의 인플레이션은 수요 과잉보다는 공급 부족에서 유발된 측면이 크다는 데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이에 따른 대러 제재, 중국의 코로나19 봉쇄 조치 등으로 공급 측면에서 심각한 차질이 발생하며 에너지와 식량 등 각종 원자재 가격 급등을 유발했고 이것이 물가상승으로 이어졌다.
연준 부의장 출신 로저 퍼거슨이 경기 침체는 불가피하다고 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는 "현 단계에서 경기침체는 거의 불가피하다"며 "현재 연준의 도구는 수요 (억제) 뿐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근 인플레이션의 원인은 공급 차질에서 유발된 것인데, 연준이 금리 인상 등 수요를 억누르는 정책만으로 이를 통제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 즉 잘못된 정책으로 인해 경기가 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월가 투자은행 도이체방크 역시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국의 코로나 봉쇄로 심화된 인플레이션이 한층 오래, 그리고 강하게 이어질 것이라며,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한 연준의 고강도 긴축이 결국 경기 침체를 유발할 것으로 내다봤다.
◆ 베어마켓 시장 전문가 추천 투자처는?
컨설팅업체 게리실링앤컴퍼니의 게리 실링 대표는 2일 블룸버그에 기고한 글에서 연말 미 경제의 침체 가능성이 커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투자자들이 손실이 커지기 전에 리스크-온 모드에서 리스크-오프 모드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그는 경제가 침체에 빠지면 올해 13.3% 하락한 S&P500지수가 32% 더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2008년 이후 지속된 장기 강세장과 '빚투'를 이끈 저금리 환경이 빠르게 바뀌면 투기적 성격이 강한 종목부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봤다.
미국 달러화 [사진=로이터 뉴스핌] |
특히 실적이 투자자들의 기대에 못 미치는 성장주가 직격탄을 입으며 주가가 약세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봤다.
추천하는 투자처로는 여타 통화 대비 미 달러화를 꼽았다. 전 세계가 침체에 빠져들고 글로벌 증시가 약세장에 접어들면 안전자산으로 미 달러화의 매력이 더 커질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반면 영국 파운드, 유로화, 일본 엔화의 약세는 지속될 걸로 봤다.
미 달러화와 더불어 미 국채도 증시의 약세장에 매력적인 투자처로 꼽았다. 최근 미 국채 금리가 급등하고 있는데, 이는 이미 연준의 향후 긴축 전망을 충분히 반영한 것이기 때문에 국채 가격이 여기서 더 떨어질 여지는 크지 않다고 봤다.
하지만 실링 대표는 일단 경제가 조금이라도 침체 조짐을 보이면 연준이 다시 금리 인하로 돌아설텐데, 그 시점이 국채 가격이 본격 반등하는 시기라며 미 증시가 약세장을 보이며 경기 침체 경고등이 켜진 시점이 미 국채 가격 반등을 노리고 매수하기 좋은 시점이라고 판단했다.
또 과거 네 번의 경기 침체기에 증시 주요 섹터 중 마이너스 수익률을 내지 않았던 유일한 섹터는 필수소비재였다며, 경기 침체와 증시의 약세장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유일하게 눈여겨볼 섹터로 꼽았다.
다만 그는 경기 침체의 골이 깊어지고 연준이 정책 실수를 깨닫고 정책 완화로 방향을 다시 틀 때까지는 약세장이 이어질 것이라며, 미 증시의 약세장이 길면 2023년 말까지도 이어질 가능성을 경고했다.
koinwo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