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뉴스핌]이영란 기자=이연미(Ivory Yeunmi Lee), Hide & Seek-Alison and Olivia in the red sky, 2022, Acrylic on linen canvas, 152.4x121.92cm. [사진=아뜰리에 아키] 2022.05.28 art29@newspim.com |
[서울 뉴스핌]이영란 편집위원=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기반으로 활동 중인 화가 이연미(41)가 서울 성동구 서울숲의 아뜰리에 아키에서 개인전을 개막했다. 오는 6월 30일까지 '이연미 Hide & Seek.Alison+Olivia into the garden'이라는 타이틀로 열리는 전시에 작가는 최근 제작한 회화 20여점을 출품했다. 그동안 미국과 중국, 일본 등지를 무대로 활발히 작품전을 열었던 이연미는 2012년 고국에서의 전시 이후 10년 만에 한국 개인전을 열고 있다.
작가는 이번 고국 전시에서 2005년 이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정원(The Garden)'시리즈의 새로운 버전인 '비 오는 정원(A rainy garden)'과 '붉은 정원(The Red Sky)'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정원'은 이연미가 지속적으로 탐구해온 대상이다. 그는 식물에 고통과 죽음을 느끼는 동물성을 부여해 이채로움을 선사한다.
그간 작가의 그림 속 식물들은 이곳저곳으로 다리를 뻗어 이동하는 반면에, 인간을 비롯한 동물은 나무열매나 꽃같이 그 자리에 정박돼 마치 식물처럼 표현돼왔다. 식물과 동물을 이렇게 거꾸로 병치시킴으로써 그의 그림은 낯선 시각적 경험을 불러온다. 바로 이 낯선 지점이 수많은 작가들이 식물을 그리고 인물을 그리지만 이연미가 도달한 독창적 회화세계라 할 수 있다.
[서울 뉴스핌]이영란 기자= 이연미(Ivory Yeunmi Lee), Big waves and red tree, 2020, Acrylic and color pencil on canvas, 182.88x152.4cm,[사진=아뜰리에 아키] 2022.05.28 art29@newspim.com |
그러나 이연미는 식물과 동물에 정반대의 특성을 부여하며 확장된 세계관을 구현하지만 이를 파스텔톤의 부드러운 터치로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에따라 어찌보면 대단히 생경하거나 잔인해보일 수 있는 '반전의 미학'을 아름답고 평화롭게 보이도록 한다.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찰랑찰랑 들려주는 그의 조형언어는 관람객을 감미로운 판타지의 세계로 이끈다. 즉 낯설면서도 매우 포근한 풍경인 것. 이번 전시에도 이연미는 식물과 풍경을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형상화한 신작을 내놓았다.
어린 시절 이연미는 현실로부터 잠시 떨어져 정원에서 놀기를 즐겼다. 그 때의 기억 속 공간, 즉 어린 시절 형성된 케렌시아(Querencia,나홀로 즐기는 휴식)를 이연미는 조형세계에 끌어와 투영한다. 그는 또 인간이 타락하기 이전 완전했던 정원인 '에덴동산'이라는 상징적 공간을 작가적 상상력으로 표현한다. 섬세하면서도 드라마틱하게 다듬어진 나무와 낯선 형상의 동식물이 등장하는 작가의 정원은 현실과 가공된 환경 사이를 오가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번 서울 전시의 제목인 'Hide & Seek-Alison+Olivia into the garden'은 이연미의 작업을 관통하는 주제인 '정원'에 기인하면서도 인물이 도드라지게 대입돼 변화를 보여준다. 자신의 두 딸인 앨리슨(Alison)과 올리비아(Olivia)를 작품 전면에 등장시킴으로써 그의 신작은 보다 확장된 작업세계를 드러내고 있다.
불탔던 정원에 비와 함께 등장한 두 소녀들의 여정은 새로운 관계성을 창조하며 다층적 풍경으로 완성됐다. 인물이 전면에 배치됨으로써 종전 연작에 비해 압도적인 구심점이 생긴 것이다. 이러한 지점은 스토리텔링에 대한 작가의 지속적인 탐구와 연관돼 있다. 욕심, 경계, 낯섦과 같은 관계를 통해 형성되는 복합적인 감정들이 혼재된 이연미의 작품 속 모티프들은 상상과 작가의 사적인 경험이 조우했을 때 발현되는 흥미로운 연상을 관객 앞에 드러낸다. 작가는 "살아오면서 경험했던 기억이라는 창고 속에 축적돼있는 여러 이미지들이 자연스럽게 작업으로 표출되곤 한다"고 밝혔다.
[서울 뉴스핌]이영란 기자= 이연미(Ivory Yeunmi Lee), Hide & Seek-Alison and Olivia in the raining garden, 2020 Acrylic and color pencil on canvas, 182.8x152.4cm [사진=아뜰리에 아키] 2022.05.28 art29@newspim.com |
이처럼 자신만의 정원을 구축하고, 현실과 판타지 사이의 간극을 극대화시키며 서정적인 조형세계를 구현하고 있는 이연미는 최근 미술계 화두인 NFT에도 도전 중이다. 세계 최대의 NFT 플랫폼인 '오픈시(Opensea)'와 '파운데이션(Foundation)'을 통해 선보인 작업은 해외 컬렉터들로부터 폭넓은 호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이연미는 아뜰리에 아키에서의 개인전에 이어 오는 6월에는 뉴욕을 기점으로 활동하는 Vizmesh와의 협업을 통해 뉴욕 타임스퀘어(Times Square)에서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어 뉴욕 Space776 Gallery, 홍콩 K11 MUSEA 등에서의 전시가 잡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