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스핌] 최영수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책임총리제'를 약속했다. 총리에게 내각의 인사제청권을 주어 책임과 권한을 부여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권 초부터 그 약속이 허물어지고 있다. 한덕수 총리가 국무조정실장으로 천거한 윤종원 기업은행장이 임명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 '윤핵관' 반대에 총리 보좌역도 마음대로 못 뽑아
최영수 경제부장 |
국무조정실장은 국무총리를 도와 행정부를 통할하고 정책을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 사실상 총리의 '보좌역'인 셈이다.
한 총리는 지난 25일 기자간담회에서 "자리에 맞는 사람을 우선순위대로 천거했다"면서 "(윤 행장이)훌륭한 경험을 가진 분"이라고 치켜세웠다.
실제로 윤 행장은 보수·진보 정부를 아우르며 중용된 정통 경제관료 출신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을 지냈고, 2018년 문재인 정부에서는 1년여간 경제수석을 맡았다.
그럼에도 한 총리가 원했던 윤 행장이 임명되지 못한 것은 바로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관계자)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총리에게 힘을 실어주던 윤 대통령마저 좌고우면 하자 윤 행장 스스로 고사했다.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검증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논란이 되는 게 부담스럽다"며 물러섰다.
책임총리제의 핵심은 인사권이다. 총리에게 국무위원 제청권을 부여하고, 장관에게 차관 인사 추천권을 부여하면 책임과 권한이 자연스럽게 분담된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책임총리를 외쳤지만, 정권 초부터 윤핵관의 반대에 부딪혀 스텝이 꼬이는 모습이다.
◆ 정권 바뀌어도 능력있는 인재 골고루 등용해야
윤핵관이 윤종원 행장을 반대한 이유는 능력이나 도덕성 때문이 아니다. 오로지 지난 정부에서 경제수석을 맡았다는 이유에서다.
물론 지난 정부의 경제정책을 총괄했던 인사가 새 정부에서 장관급의 요직을 맡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윤핵관 입장에서도 결코 유쾌한 일은 아닐 것이다.
윤핵관의 한 사람으로 통하는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윤 행장이 지난 정부에서 청와대 경제수석을 맡아 소득주도성장, 탈원전을 주도했다며 반대 이유를 제시했다.
하지만 보수와 진보 여러 정권을 넘나들며 요직을 맡았던 한 총리의 생각은 달랐다. 지역과 성별에 얽매이지 말고 오로지 '능력'을 중시하자는 윤대통령의 생각과 닮아 있었다.
윤 행장이 지난 정부에서 경제정책을 주도했다는 것도 과도한 해석이다. 한 총리도 "그분은 소주성(소득주도성장) 정책이 문제가 있기 때문에 불러 온 사람"이라며 "소주성 정책이 포용적 성장으로 바뀌었다"고 적극 두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 행장이 스스로 고사하면서 새 정부의 책임총리제는 벌써부터 빛이 바랜 모습이다. 부처 장관은커녕 총리의 보좌역인 국조실장마저 제대로 임명할 수 없다면 책임총리제라 할 수 있을까.
더불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지난 정부의 관료들을 홀대하고 외면하는 낡은 관행도 개선돼야 한다. 정치인이 아닌 관료라면 과거 그의 보직이 무엇이었든지 따지지 말자. 그들은 수십 년간 정부가 키워낸 인재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인사권자가 아닌 윤핵관의 인사 개입도 자제돼야 한다. 그것만이 윤석열 정부가 약속했던 능력 중심의 인사가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윤석열 정부가 아닌 '윤핵관 정부'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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