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영태 외교안보선임기자 =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한국에 6월은 전쟁과 평화를 상징하는 달이다.
2022년 6월 20일을 기준으로 앞으로 5일 후면 6·25전쟁 발발 72주년이며, 5일 전에는 6·15 남북공동선언 22주년이었다.
보수정권인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북한의 대남 무력도발이 강도를 더해가고 7차 핵실험 강행 우려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자칫 허리가 잘린 한반도가 한미일 대 북중러라는 신냉전구도 하에서 남북공존이 아닌 남북대결의 장으로 변질돼 한국경제의 도약을 가로막는 '코리아리스크'가 커지는 것 아니냐는 걱정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유럽에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미러 대결이 심화되고, 동북아에선 세계 패권을 둘러싼 미중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한국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1990년 대 초중반 독일에서 독서독이 어떻게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이룰 수 있었는지 공부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독일 언론 중 보수를 대표하는 일간지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FAZ)과 한국 보수언론 조선일보를 대상으로 1945년 분단 이후 양국에 어떤 일들이 있었고, 이들이 어떤 관점에서 그 이슈들을 보도했는지 분석하는 '분단국가의 역사와 언론의 역할'이란 주제의 논문이었다.
논문의 결론을 요약하자면 FAZ의 경우 보수언론이지만 일관되게 1970년대 시작된 사민당(SPD) 빌리 브란트 총리의 대동독 화해정책에 찬성하며 동서독 간 평화를 유지하는 데 포용정책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논조를 독일 통일까지 시종일관 유지했다는 점이다. 이는 당시 독일 진보언론을 대표하는 일간지 쥐드도이체차이퉁(SZ)이나 프랑크푸르터룬트샤우(FR)도 마찬가지였다.
반면 조선일보는 분단 이후 이승만-윤보선-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정부에 이르기까지 정권의 눈치를 보며 때로는 대북적대시 정책을 옹호하고, 때로는 대북화해정책을 편드는 기회주의적 '갈지자 행보'를 보였다.
당시 독일에서 만난 교수와 전문가들은 분단국가에서 통일지향적 언론이 되기 위해선 거대한 정치적 주제나 이데올로기적 접근 방법보다는 북한에도 한국인과 같은 사람이 살고 있다는 기사를 많이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분단국가 독일과 한국의 또다른 중요한 차이점 가운데 하나는 베를린과 같은 완충지대의 존재 유무다. 독일에서 공부할 때 기자는 만일 한반도에 베를린과 같은 완충지대가 존재한다면, 즉 북한 내에 남한의 통치를 받는 행정구역이 존재한다면 남북대화 유지는 물론,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을 낮추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염원을 품었다.
이후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과 2004년 10·4 공동선언이 도출되는 과정에서 금강산과 개성공단이 남북의 충돌을 방지하는 완충지대 역할을 하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금강산관광은 중단됐고 마지막 보루인 개성공단마저 폐쇄되고 말았다. 한국이 북한은 물론,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을 상대로 외교적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지렛대가 거의 사라졌다는 의미다.
분단된 남북의 현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북정책의 일관성과 지속성이다. 그래야 남북이 어떤 상황에서든 서로를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이 만들어진다.
다행인 것은 윤석열 정부 초대 통일부 수장으로 취임한 권영세 장관이 이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는 사실이다.
[서울=뉴스핌] 국회사진취재단 = 권영세 통일부 장관이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컨벤션홀에서 열린 6.15 남북정상회담 22주년 기념식 및 학술회의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2022.06.15 photo@newspim.com |
권 장관은 지난 15일 '6·15 남북정상회담 22주년' 기념식 축사를 통해 "저는 6·15 남북정상회담이 단순히 정상간 만남의 의미를 넘어서는 남북관계의 역사적 전환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1945년 분단, 1950년 전쟁을 치른 이후 5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남북관계는 '대결'이라는 기본 구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였다. 대결 구도 해소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했음에도, '분단'과 '대립'은 고착화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2000년 6월 15일, 김대중 대통령님의 방북과 공동선언을 기점으로 남북은 비로소 '화해'와 '협력'이라는 새로운 남북관계의 비전을 제시할 수가 있었다"며 "저는 이것이야말로 6·15의 참된 의미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오늘의 남북관계가 2000년과 비교해 여러 가지로 미흡하고 불안한 것이 사실이라고 인정한 권 장관은 "이런 때일수록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남북관계를 안정시키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고 믿고 있다"며 "6·15 공동선언을 비롯하여 7·4 공동성명과 남북기본합의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은 물론, 10·4 선언과 판문점선언, 평양공동선언 등 기존의 합의들은 존중되어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어 "북한을 바라보는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의 시각이 서로 많이 다른 것이 사실"이라며 "그동안 그 '다름'이 대북정책의 걸림돌이 되어왔지만, 윤석열 정부는 그 '다름'을 새로운 대북정책 수립의 동력으로 삼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윤석열 정부가 일관성 있는 대북정책 '이어달리기'와 진보·보수가 다르지만 함께가는 '2인 3각' 경기를 통해 한반도 평화시대를 구현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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