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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솟는 물가에 경영철학까지 '흔들'...가격 인상 "참을 만큼 참았다"

기사등록 : 2022-06-22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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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물값 인상 '최고치' 식품기업들 비명
'9년 동결' 오리온도 가격인상 검토
尹 정부 "물가안정 최우선"에 눈치
대책도 미흡, 마른수건 짤 수 밖에

[서울=뉴스핌] 서영욱 기자 = "앞으로 좋아질 것이란 전망이 없다. 구매 부서에서는 정말 곡소리가 나오고 있다.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식품 원자재 가격에 국내 식품기업들이 연일 비명을 지르고 있다. "가격 인상은 최후의 수단"이라던 기업들마저 경영방침을 뒤엎고 가격 인상 검토에 들어갔다. 경영환경이 안정세로 접어들 것이란 긍정적인 전망이 아예 자취를 감췄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물가안정'을 강조하고 있어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마저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많다. 식품업계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빠졌다.

◆情으로 버티던 오리온도 가격 인상 카드 '만지작'

22일 업계에 따르면 9년 째 제품 가격을 동결해 온 오리온은 최근 가격 인상을 위한 내부 검토에 들어갔다. 오리온은 차별화된 제품 경쟁력 확보와 원가 관리 노력으로 그간 가격 인상 요인을 억제해 왔다. 가격 인상은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는 것이 오리온의 경영 철학이었다.

인플레이션이 극심했던 지난 1분기 오리온은 가격 인상 없이 시장 전망치를 뛰어넘는 영업실적을 내놨다. 업계에선 모범적인 선례로 평가했다. 이 같은 오리온마저 이제는 제품 가격을 인상하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는 상황에 다다랐다는 점을 업계는 주목하고 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제품 가격 인상분은 지금까지 억제해 온 가격분에 앞으로 오를 부분까지 감안해 가격을 책정한다"며 "하지만 지금은 하루가 다르게 원자재 가격이 치솟으면서 단기적으로 가격을 빨리 올리지 않으면 원가 보존도 힘들다"고 토로했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 밀가루 코너에서 시민들이 물건을 구매하고 있다.[사진=뉴스핌DB]

◆"내년이 더 최악" 곡물가격 더 오른다

세계적 인플레이션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올해 각종 원자재와 곡물 가격은 급상승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발표하는 5월 곡물가격지수는 한 달 전 보다 2.2% 상승한 173.4포인트를 기록했다. 곡물가격지수는 밀 옥수수 쌀 등의 가격을 종합한 지표인데 1년 전에 비해서는 30.0%, 2년 전에 비해선 77.0% 올랐다.

내년에는 곡물 수급이 더 어려워질 것이란 전망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곧 끝날 것으로 예상했던 전쟁이 길어지며 주요 곡물 생산국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파종 시기를 놓쳤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세계 밀 공급량의 30%, 옥수수의 20%, 해바라기씨유의 75~80%를 차지하고 있다.

올 하반기나 내년, 향후 전망을 아예 하지 말라는 기업들도 나온다. 글로벌 리서치 기업에서 내놓는 밀가루나 팜유 수입 가격 전망치가 제각각인 상황에서 섣부른 판단은 기업 경영을 더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제과업계 한 관계자는 "곡물가격 인플레이션이 나아지지 않을 것이란 건 확실해 보인다"며 "우크라이나 사태 전에도 작황이 너무 부진했고 기후변화로 인한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고 전했다. 더 이상 가격을 올리지 않고 서는 버틸 수 없는 한계치에 달했다는 것이다. 구매 부서에는 곡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 "물가안정이 최우선이라는데..." 마른수건 짤 수 밖에

대부분의 식품 기업들이 가격 인상을 검토하고 있지만 결단을 내리기는 큰 부담이 따르는 상황이다. 오리온도 내부적으로 가격 인상을 검토하고 있을 뿐 정해진 내용은 아무것도 없다는 게 공식적인 입장이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물가 안정을 최우선순위로 정하고 국정 운영에 나서고 있어서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새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물가안정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상황이라 가격 인상을 즉각 반영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전했다.

정부가 내놓은 물가 안정 대책 마저 실효성이 적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식용유와 돼지고기, 밀 등 7개 품목에 할당관세 0%를 적용하고 밀가루 가격 상승분 70% 지원 등을 담은 대책을 내놓은 바 있다. 하지만 수입 물량이 가장 많은 미국과 유럽 등과는 이미 FTA를 맺어 관세를 부과하지 않고 있어 예상보다 가격인하 효과가 낮을 수 있다는 것이 업계 불만이다. 한국의 수입 밀 역시 FTA 체결국인 미국, 호주, 캐나다산이 99%를 차지한다.

대형 식품업체 한 직원은 "할당 관세가 원래 없었던 품목이나 적용되지 않았던 품목들도 많다"며 "정부의 대책은 어느 부분이 나아질 수 있는지 진지하고 고민하지 않고 내놓은 것 같다"고 우려했다. 이 관계자는 "정부의 민생안정대책이 기업 입장에서 큰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보니 내부에서 가격 인상을 검토하는 등 적극적인 액션을 취할 수 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가격 인상마저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식품업계들은 '마른수건 짜기'에 돌입했다. 업계 관계자는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물가 안정에 역점을 두고 있는 만큼 감내할 수 있는 만큼 감내하겠지만 결국 내부적으로 비용을 줄이는 방법을 택할 수 밖에 없다"며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고 우려했다. 

syu@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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