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고홍주 기자 = 90년대 대학가는 최루탄이 난무하던 80년대와는 달랐다. 대한민국은 1987년 대통령 직선제로 이미 민주화 사회로 넘어간 상태였고, 소련 붕괴로 공산주의 체제가 몰락하는 등 이전과는 전혀 다른 시대가 펼쳐지고 있었다.
"저희는 거창한 하나의 깃발 아래 모여서 '민주주의를 이루자', '독재의 탄압에 맞서자' 했던 세대는 아니예요. 오히려 학생들을 모으기가 너무 힘들었죠. '학생회는 쓸모있는 일을 해야 하는 것 아니야?' 이런 문제의식을 가진 세대였어요. 캠퍼스 내에 어학관도 열고 무슨 복지도 했고 이런 걸 얘기하면서 '쓸모'가 있는 학생회가 됐어야 했죠."
더불어민주당 내 대표적인 '97그룹(90년대 학번·70년대생)' 4인방 중 한 명인 강훈식 의원의 말이다. 강 의원은 건국대 총학생회장을 지내면서 사람들이 생활에서 변화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게 정치라는 철학을 갖게 됐다. 의류회사를 운영하다 정치에 발을 들이게 된 것도 '쓸모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였다.
뉴스핌은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당 대표에 출마한 강 의원을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서울=뉴스핌] 최상수 기자 = 당 대표 선거 출마를 선언한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뉴스핌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2.07.07 kilroy023@newspim.com |
◆ "민주당의 실패? '모두의 정당'이고 싶었기 때문"
오는 8월 28일 열릴 민주당 전당대회는 단순히 차기 민주당의 대표를 뽑는 선거가 아니다. 민주당은 그동안 서울시장 보궐과 대선, 지선, 이 세 번의 선거를 내리졌다. 차기 당 대표는 패배와 체념이 가득한 당을 다독이고 재정비해 2년 뒤 총선을 치르는 막중한 책임을 져야 한다.
강 의원이 생각하는 민주당의 실패 원인은 뭐였을까.
"지난 5년 동안 문재인 정부는 '모두를 위한 정부'이고 싶어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우리 당도 모두를 위한 정당 속에서 정확한 타겟이 없었죠. 민주당은 지금도 서민과 중산층의 정당이지만 청계천에서 미싱을 돌리던 여공이 30년 전의 서민이었다면 지금의 서민은 과연 누구인지,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중산층이 누구인지 준거 집단을 명확하게 했어야 합니다."
지지층에 대한 명확한 분석이나 정의 없이 정책들을 내놓았기 때문에 실패를 했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잇따른 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론으로도 한동안 시끄러웠다. 강 의원은 이렇다 할 계파는 없지만, 지난 대선에서 전략기획본부장을 맡았다. 스스로도 출마선언을 하면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민주당의 쇄신을 책임지겠다고 했다.
강 의원은 "우리는 지난 몇 개월간 이재명으로 살았다. 그 사람의 스토리에 눈물을 흘렸고, 그 사람이 아버지 청소차 뒤에서 썩은 과일을 먹으면서 살아왔던 시간에 같이 눈물을 흘렸고 그런 마음으로 욕설했던 과거에 대해 싸웠다"며 "그렇게 열심히 산 사람들에게 출마자격이 없다고 하는 것은 동의하기가 어렵다. 손가락질 하는 게 좀 이상한 것 같다"고 했다.
이어 "그럼 대선 때 열심히 하지 않은 사람이 당 대표로 나와야 하느냐"며 "저는 추미애 당 대표 시절 원내대변인이었고 이해찬 당 대표 시절 전략기획위원장과 수석대변인을, 송영길 당 대표 시절 대선기획단장이었고 이재명 후보의 전략본부장이었다. 저는 역할로 일했고, 당인으로서 책임감 있는 역할이 비난의 대상은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이번 전당대회는 '진짜' 강훈식이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다.
그는 "그동안 누군가의 참모로서의 일만 해왔던 시간이기 때문에 제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다"며 "실무를 하면서, 책임자로 일하면서 느꼈던 것들이 무엇인지 국민들께 처음 들려드리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한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서울=뉴스핌] 최상수 기자 = 당 대표 선거 출마를 선언한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뉴스핌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2.07.07 kilroy023@newspim.com |
◆ "이제 진보를 재구성 할 시간…당 대표 되면 인사부터 개방할 것"
강 의원이 구상하는 민주당 쇄신의 첫 걸음은 바로 '진보의 재구성'이다.
그는 "보수당은 야당의 시간 동안 보수를 재구성했다. 과거에는 '민주 대 반민주' 구도였지만, 얼굴을 바꾸고 타깃을 달리하고 내용을 바꿨기 때문에 윤석열 대통령도, 이준석 대표도 더 이상 반민주 세력이 아니다"라며 "우리는 지금 진보를 재구성해야 한다"고 했다.
우선 가장 필요한 건 그가 민주당의 잇따른 실패 원인으로 짚었던 모호한 '준거 집단'부터 명확히 하는 것이다. 그가 생각하는 민주당의 지지 기반은 '몸과 머리 하나로 일하는 사람들'이다. 강 의원은 "한국 사회에 살면서 가장 어려운 사람들은 머리와 몸 하나로 대학에 왔는데 사회에 떨어져서 돌파해야 되는 사람들"이라며 "이런 사람들이 민주당에 의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나의 깃발로 지금의 대한민국을 다 설명할 수 없다. 다양한 요구가 있고, 그 요구를 받아들여야 한다"며 "보수의 얼굴은 '50대 주류의 잘 나가는 얼굴' 하나지만 민주당은 '다양한 얼굴'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쓸모있는 정치를 해야 한다는 철학도 견지했다. 강 의원은 "물가 상승률이 24년 만에 6%를 뚫었다는데 최저임금 상승률은 5%다. 윤석열 정부 들어와서 법인세는 낮췄고 노동시간은 늘리고 있는데, 대통령은 뾰족한 대책이 없다고 한다"며 "정치가 쓸모없다고 느끼는 국민들에게 민주당이 (쓸모를 보여주는) 역할을 굉장히 명확하게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 의원은 대표가 되면 인사 문제부터 해결해 나갈 계획이다. 그는 "인사는 메시지다. 민주연구원장이나 당 홍보위원장 같은 것은 외부에 개방해도 된다. 그러면 확 달라질 것"이라며 "그래야 기득권이 무너진다. 29살의 청년 광고 전문가가 나타나면 활기가 달라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동안 무소불위의 권력처럼 여겨져왔던 당 대표의 공천권도 대폭 내려놓을 생각이다.
강 의원은 "2년 전에 얻었던 180석이란 수치는 공천 시스템에 따라 룰대로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며 "시스템 공천 속에 지금까지 민주당이 못 했던, 새로운 물들이 들어와서 경쟁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지금 해야 될 일"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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