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콘퍼런스 통치'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방 단위까지 참여하는 대규모 회의를 평양에서 잇달아 소집한 뒤, 이를 직접 주재하며 통치 노선을 설파하고 체제 결속과 기강잡기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지난 2~6일 평양 4.25문화회관에서 열린 '각급 당 위원회 조직부 당 생활 지도부문 일꾼(간부를 의미) 특별강습회'는 이를 잘 보여준 행사다. 이틀 간의 회의와 실무 강습으로 이뤄진 행사는 노동당이 가장 중시하는 조직문제 중에서도 간부들의 당 생활을 관장하는 담당자들을 재교육 시키는 프로그램이다. 우리의 정당이나 기업 워크숍을 연상케 한다.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지난 2~6일 평양 4.25문화회관에서 열린 노동당 도시군 당 조직부 당생활지도과 일꾼 특별강습회에서 연설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진=평양타임스] 2022.07.11 yjlee@newspim.com |
김일성, 김정일 집권 시기 이런 수준의 강습회라면 노동당 조직지도부 차원에서 진행하는 게 통상적이라 할 수 있다. 최고지도자가 보다 더 관심을 보인다 해도 행사에 친필서한을 보내거나 일정을 마친 뒤 접견하는 정도에 그쳤다.
그런데 김정은 위원장은 이번 회의에 직접 참석해 회의를 주재했다. 조선중앙통신이 "(김 위원장이) 현 시기 당조직부 당 생활 지도부문 사업이 당 중앙의 요구와 의도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는 실태와 그 원인을 상세히 분석했다"고 전한 점으로 볼 때 참석자들에 대한 질책까지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행사를 마친 뒤 대규모 기념촬영 이벤트를 벌이는 것도 눈길을 끈다. 이번 특별강습회의 경우도 수 천 명에 이르는 참석자들을 노동당 본부청사 앞마당으로 불러 김정은이 함께 사진을 찍었다.
최고지도자가 참석하는 이른바 '1호 행사'에서 사진을 함께 찍는다는 건 북한 주민이나 당 간부들에게 큰 자랑거리이자 '가문의 영광'으로까지 여겨진다. 회의 주재와 사진촬영 등을 통해 참석자들에 대한 배려를 과시하고 찬양과 결속을 이끌어 내는 통치술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지난 2~6일 평양 4.25문화회관에서 열린 노동당 도시군 당 생활지도과 일꾼 특별강습회에서 연설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진=평양타임스] 2022.07.11 yjlee@newspim.com |
지난해 말 노동당 제8기 4차 전원회의를 개최한 김정은 위원장은 올 들어 ▲노동당 8기 6차 전원회의(1.20) ▲2차 초급당 비서회의(2.27) ▲1차 선전부문일꾼 강습회 기념촬영(4.1) ▲김일성 출생 110주 중앙보고대회(4.16) ▲조선인민혁명군 창설 90주 열병식(4.26) 등 회의와 행사를 잇달아 열었다.(괄호 속 날짜는 북한 매체의 보도일 기준)
코로나 사태가 본격화 한 5월부터는 회의소집이 더 많아졌다. ▲당 중앙위 8기 8차 정치국회의(5.12) ▲당 정치국 협의회(5.14) ▲당 정치국 상무위원회(5.18) ▲당 정치국 협의회(5.21) ▲정치국 상무위원회(5.18) ▲정치국 협의회(5.21) ▲정치국 협의회(5.29) ▲당 8기 5차 전원회의 확대회의(6.9) ▲당 중앙위 비서국 회의(6.13) ▲당 중앙군사위 8기 3차 확대회의(6.22) ▲당 비서국 확대회의(6.28) 등이 이어졌다.
'컨퍼런스 통치'에 집중하는 김정은 위원장의 모습은 그의 공개활동을 분석한 정부 자료에서도 드러난다.
통일부가 11일 공개한 '김정은 위원장 공개 활동 동향'에 따르면 상반기 그의 공개석상 등장은 모두 55회로 나타났다. 그 가운데 회의가 15회를 차지해 압도적 비중이었고, 사진촬영 일정도 11차례로 집계됐다. 공개활동의 47%가 회의 및 사진촬영인 것이다.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노동당 조직부 당생활지도과 일꾼 특별강습회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한 모습을 보도한 북한 매체의 지면. 코로나 상황에도 불구하고 모두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사진=평양타임스] 2022.07.11 yjlee@newspim.com |
이런 추세는 지난 4월 말 북한에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확산하면서 더 심해진 것으로 통일부는 판단하고 있다. 4월 중순 함흥 일대에서의 전술유도무기 시험발사를 참관한 김정은 위원장은 이후 지방 일정을 접었다. 2020년 초 세계적인 코로나 유행 시작으로 지방 일정을 줄였던 김정은이 북한 내 창궐사태로 지방 군부대 방문이나 공장·기업소 시찰을 중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규모 사진촬영 행사는 이런 최고지도자의 공개 활동 공백을 메워주는 효과를 노린 조치로 분석된다. 지방 활동을 줄인 대신 각 지역에서 올라온 간부와 군인·주민 등을 만나 사진촬영을 하고 이를 노동신문이나 조선중앙TV로 대대적으로 보도함으로써 '인민과 함께 하는 지도자'란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공개적 통치활동 중 민생관련 행보는 확 줄었다. 연초부터 함경남도의 채소 생산 농장이나 주택건설 현장을 잇달아 방문했던 김 위원장은 코로나 확산 이후 이를 크게 줄였다. 이후 민생 관련 행보는 평양 시내 약국을 방문해 코로나 의약품 수급 실태를 돌아보는 정도였다.
문제는 북한의 코로나가 쉽게 수그러들지 장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북한은 한때 39만 명까지 치솟았던 하루 확진자(북한은 발열증세가 있다는 의미로 '유열자'란 표현을 사용)가 최근 며칠 동안 1000명 대를 유지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지만 통계조작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북한 평양양말공장 방역사업 모습 2022.06.26 [사진=노동신문] |
이런 상황 속에서 김 위원장이 지방의 간부와 청년·학생, 군인 등을 평양에 불러 대규모 행사를 하고 집단촬영을 하는 등 코로나 방역에 배치되는 움직임을 벌이는 데 대해 우려도 나온다.
지난 4월 말 코로나가 북한 전역에 크게 번지기 시작한 것도 같은 달 25일 평양에서 김정은 위원장 지시로 열린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돌 군사퍼레이드 때문인 것으로 지목되고 있다. 당시 지방의 군인과 청년들이 대거 동원됐는데, 김 위원장은 귀향했던 참가자들까지 다시 평양으로 불러 기념촬영을 한 것으로 북한 관영매체들은 전했다.
이번 노동당 조직부 특별강습회의 경우도 수 천 명의 참가자를 며칠 동안 합숙시키며 강습회를 벌이고 기념촬영 행사까지 벌였다는 점에서 코로나 확산의 계기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모두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일정을 치렀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하지만 이런 우려와 지적에도 불구하고 회의소집과 사진촬영을 결합시킨 김정은식 컨퍼런스 통치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 상황 속 외부행보가 제약되는 상황에서 최고지도자로서의 존재감을 보여줄 수 있는 수단으로 유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대북제재 국면에서 마땅한 대외행보의 계기도 없는데다 남북관계도 당분간 돌파구 마련이 어려운 환경도 김정은을 내부 통치에 매달리게 만드는 것으로 분석된다. 노동당 조직이나 간부들을 대상으로 한 기강잡기에 상당기간 집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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