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신영 기자 = 수사기관이 사후 통지 없이 통신사를 통해 이용자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를 수집할 수 있도록 규정한 법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졌다.
헌법재판소는 21일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3항 등에 대한 4건의 헌법소원 청구 사건 심판에서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들. 2022.07.12 mironj19@newspim.com |
헌법불합치는 하위법의 내용이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는 판단이지만, 관련 법이 개정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법적 효력을 인정해주는 결정이다.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3항은 법원이나 검사 또는 수사기관이 재판이나 수사, 형의 집행 등과 관련해 통신사를 통해 이용자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아이디, 가입일 등을 수집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번 헌법소원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공수처) 통신자료 조회 논란이 불거지면서 이뤄졌다.
공수처가 '고발사주 의혹' 등 수사 과정에서 통신사를 통해 법조인과 국회의원, 언론인 등에 대한 광범위한 개인정보 자료를 수집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에 한국형사소송법학회와 시민단체, 개인 등은 수사기관의 개인정보 수집 근거가 되는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에 대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고, 기본권과 개인정보 자기 결정권을 침해당했다고 주장했다.
헌재는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가 정보의 주체인 이용자에게 통신자료 제공 요청에 대해 고지하도록 규정하지 않은 것을 문제 삼았다.
헌재는 "효율적인 수사를 위해 사전에 정보 제공 사실을 알리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면 정보 취득 이후에 통지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며 "그럼에도 이 사건 법률 조항은 통신자료 취득에 대한 사후 통지 절차를 두지 않아 적법 절차 원칙에 위배돼 개인정보 자기 결정권을 침해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 법률 조항은 통신 자료 취득 자체가 헌법에 위반된다는 것이 아니라 사후 통지 절차를 마련하지 않은 것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것"이라며 "단순 위헌 결정을 하게 되면 법적 공백이 발생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하되 늦어도 오는 2023년 12월 31일까지 개선 입법을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다만 "해당 조항의 경우 강제력이 개입되지 않은 임의 수사에 해당하기 때문에 헌법상 영장주의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어 "범죄 수사나 정보 수집의 초기 단계에서 수사나 형의 집행, 국가 안전 보장 활동의 신속성 등을 도모해 과잉금지원칙에도 위배되지 않는다"고 봤다.
반면 이종석 재판관은 이 사건의 법률 조항이 과잉금지원칙에도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이 재판관은 "법 조항이 통신자료를 요청할 수 있는 사유를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포괄적으로 규정해 개인의 사생활이나 통신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제한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수사기관이 취득한 통신자료의 보관 기간이나 폐기 절차 등 사후 관리에 규정을 전혀 마련하지 않아 국민의 개인정보가 남용될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말했다.
한편 공수처는 헌재의 결정에 대해 후속 조치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공수처는 "향후 국회가 해당 법 조항 개정을 추진할 경우 논의 과정에 적극 참여해 전기통신사업자로부터 통신자료를 제공받는 과정에서 국민의 헌법상 기본권을 보호하는 동시에 수사상 목적도 달성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을 모색해 나가겠다"며 "특히 법 개정이 이뤄지기 전이라도 공수처가 자체적으로 마련한 내외부의 제도적·기술적 통제 장치를 통해 통신자료 확보 과정에서 적법성을 넘어 적정성까지도 지속적으로 확보해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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