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뉴스핌은 [비상장주 '피싱'] 기획을 통해 최근 피해를 호소하는 비상장주 사기 사건을 계획적인 피싱 범죄로 바라봐야 한다는 시각을 전달했다. 영업자들이 모인 불법 TM(텔레마케팅)조직은 '비상장주 피싱'을 가능케 하는 필수 조건이다. 불법 TM조직은 비상장 주식뿐만 아니라 주식, 리딩방, 재테크, 코인 등 돈이 되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뻗어갈 수 있었고, 실제로 분야를 가리지 않고 투자자(피해자)를 물색하고 있었다. 이에 뉴스핌은 불법 TM조직에 접근해 잠입 취재를 하는 등 이들의 실체를 파악했다.
[서울=뉴스핌] 지혜진 기자="아침 조회합시다."
오전 9시가 되자 본부장은 사무실 문을 닫았다. 정확히는 잠갔다. 이른 시간부터 전화를 돌리는 영업자들의 '멘트' 아래로 도어락 잠김 알림 소리가 깔렸다.
9일 뉴스핌 취재에 따르면 B지사의 근무 시간은 오전 8시 45분부터 오후 6시까지다. 조회는 오전 9시와 오후 1시, 하루 두 번이다. 조회 시간엔 영업자들이 확보한 '가망자'가 몇 명인지 공유한다. 가망자는 영업에 걸려들 것 같은 사람들을 일컫는다.
B지사의 사무실은 서울 영등포구의 한 건물 고층부에 자리한다. 1층 안내판에 적힌 상호명과 달리 사무실 앞에는 아무런 간판도 붙어있지 않았다. 간판이 떼어진 흔적만 남아있다.
사무실은 20여명이 근무할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다. 푸른 칸막이가 있는 4인용 책상 4개와 본부장을 비롯해 관리자급 책상 2개가 놓여있었다. 창가 쪽엔 탄산음료, 주스, 과자, 햄버거, 컵라면 등이 갖춰진 탕비실이 있다.
이날 총인원은 기자 포함 9명이다. 영업자들의 연령대는 20~30대 초반이었다. 출근한 지 사흘째인 사람부터 6개월째인 사람, 1년 정도 된 사람 등 근무 기간은 다양했지만 장기근속자는 없었다. 젊은 영업자들은 톰브라운 셔츠, 베르사체 티셔츠 등 의류에서부터 발렌시아가 슬리퍼, 구찌 클러치, 금목걸이 등을 착용한 모습이었다. 일한 지 오래된 영업자일수록 걸친 명품이 많아 보였다. 그들의 모습은 TM영업이 얼마만큼의 금전적 이익을 안겨주는지 가늠케 했다.
◆ "비상장주는 블루오션…다들 '해 먹기' 전에 우리가 먼저"
B지사는 3개월 전부터 비상장주식을 팔기 시작했다. 면접 당시 B지사 대표는 기자에게 원래 코인 영업을 하려고 했으나 테라·루나 폭락 사태 이후 검찰이 코인 쪽을 예의주시하는 것 같아 당분간은 비상장주식에 집중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비상장주식의 수익률이 생각보다 "너무 좋다"며 2024년도까지 팔 종목을 마련해 뒀다고 했다.
B지사의 본부 규율. |
그의 말에 따르면 비상장주 TM영업 방식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지사의 대표 격인 '총판'이 직접 비상장주식을 거래하는 플랫폼을 통해 500원, 1000원, 10원 등 저렴한 가격에 주식을 산 뒤 TM조직을 통해 1만5000원, 2만원, 심하게는 5만원까지 폭리를 취해 파는 방법이다.
또 다른 경우는 B지사처럼 비상장사 대표와 직접 접촉해 브로커 역할을 하는 거다. 회사로부터 직접 주식을 받아오면 회사가 비상장 거래 플랫폼에서 주가 방어를 해줄 수도 있고, 투자자가 회사로 전화했을 때 대응이 되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했다.
두 방식은 투자금을 받는 방식도 달랐다. 전자의 방법은 영업자들이 비상장사 계좌가 아닌 대주주 명의의 계좌로 입금해달라고 요청한다. 사실은 대포통장이다. 반면 비상장사와 함께 영업하면 회사 법인 계좌로 입금하라고 안내하기 때문에 투자자들에게 신뢰감을 심어줄 수 있다고 했다.
이뿐만 아니라 비상장사와 TM조직이 함께 움직이면, 영업에도 좀더 도움이 된다고 했다. 비상장사에서 언제 보도자료를 뿌릴지, 어떤 내용의 보도를 할지 등을 미리 TM조직에 언질을 주기 때문이다. 영업자는 이 정보를 토대로 전화를 돌리면서 "다음 날 오후 1시 어떤 기사가 나올 예정"이라며 고급정보인 양 고객들을 설득한다. 영업자가 말한 대로 기사가 나온 것을 확인한 고객들은 투자하게 될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 이들은 이런 걸 '엠바고 호재'라고 불렀다.
B지사는 비상장주 영업의 장점으로 '업셀'을 꼽았다. 업셀이란 여러 번에 걸쳐서 같은 사람으로부터 투자금을 받아내는 것을 말한다. 즉 주식리딩방은 가입비 명목으로 딱 한 번 투자금을 받아낼 수 있지만, 비상장주는 소액투자 고객일지라도 2번, 3번에 걸쳐 주식을 사도록 계속 유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B지사에서는 업셀 10회가 최고 기록이라고 했다. 영업자가 한 명의 고객에게 10차례에 걸쳐 주식을 팔았다는 것이다.
B지사도 원래는 리딩방을 운영했다. 그러나 대표는 "리딩업체도 많이 벌 땐 (영업자들이) 한 달에 1억원씩 가져갈 수 있었지만 지금은 한 달에 500만원 가져갈까 말까"라며 "너무 많이들 해 먹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상장주는 지금이 블루오션이니 많이 벌 수 있을 때 벌어야 한다"며 "이미 영업자들이 다 뽑아 먹고 나서 비상장주 한다고 하면 이미 늦는다"고 설명했다.
기자가 면접을 본 날은 S사가 코스닥에 상장된 날이었다. 대표는 S사에 몰린 청약증거금 20조원가량을 비상장주를 판매할 수 있는 시장으로 바라봤다. 사람들의 '투심(투자 심리)'이 곧 TM조직이 노리는 먹잇감이었다.
◆ 공모주 상장 전날은 가망자 확보하는 날…"수익률 70%, 무조건입니다"
면접일처럼 공모주가 상장하는 날은 '계약 파티' 날이라고 부른다. 파티 전날엔 가망자를 최대한 확보하는 데 집중한다.
기자가 출근한 지난 3일은 또 다른 기업 SS사의 코스닥 상장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조회를 시작하자마자 본부장은 "4일은 상장 종목이 나오는 중요한 날"이라며 "신청서를 받기 위해 분발하자"고 강조했다. 이날 가장 많은 신청서를 받은 사람은 출근한 지 사흘째인 여성 영업자였다.
S사와 SS사는 B지사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코스닥 상장 전에 이들 주식을 B지사가 판 것도 아니다. 하지만 공모주가 상장하는 날은 돈이, 투심이 몰리는 날이었다. B지사는 이를 이용해 수익을 올리려는 의도였다.
이들은 마치 SS사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것처럼 꾸며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사모펀드 전환사채 물량이 있다면서 회사 보유분을 고객들이 신청할 수 있게 도와준다는 내용이었다. SS사의 공모가는 이미 3만5000원으로 정해진 시점이었는데 이들은 상장 전 주주모집 가격인 2만원에 팔겠다고 고객들을 꼬드겼다. 영업자에 따라서 특별공급 물량이라고 둘러대는 경우도 있었다. 당장 다음날 상장하는 주식을 확정 공모가보다 싸게 팔겠다는, 즉 24시간이 채 안 되는 시간 안에 70% 이상의 수익을 보장해주겠다는 말이었지만, 모두 거짓말이었다.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가망자 확보'를 위해서다. 전화를 끊고서 이들은 곧장 카카오톡 메시지로 설명자료와 URL 보냈다. URL에 접속하면 이름, 성별, 주민등록번호, 주소, 매수 희망 주식 수 등을 입력하는 특별공급 물량 신청서가 나온다. 매수를 희망하는 주식 수까지 입력하도록 함으로써 B지사는 해당 고객이 얼마까지 여유자금이 있는지 파악하려는 의도다.
신청서를 쓴 고객 중 SS사의 주식을 받는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이들은 이날 오후 늦게 혹은 다음 날 다시 전화를 돌린다. 마치 실제로 상장까지 하는 유망한 주식을 판매하는 투자자문업체라는 이미지까지 얻게되는 셈이다.
"선생님 보셨죠? 어제 특별공급 물량이 워낙 적어서 아쉽게도 배당은 못 받으셨지만, 수익률은 확인하셨죠? 이래서 비상장주는 1차 공모 때부터 들어가야 합니다. 저희는 비상장주 투자를 도와드려요. 1차 주주모집 때부터 들어가면 70%가 아닌 400~500% 수익률 예상하실 수 있습니다. 마침 저희가 상장 예정인 회사 주주님들을 모집하고 있는데 소액이라도 한번 발을 담가보세요."
이때부터 본격적인 영업이 시작된다. 이들이 자신들과 전혀 상관없는 공모주 상장일을 '계약 파티' 날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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