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스핌] 김명은 기자 = "산업 환경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는데 직원들이 그 흐름과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요. 현장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면서 점점 우물 안 개구리가 돼가고 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 한 직원의 자조 섞인 푸념이다. 그는 이 같은 현실을 공정위의 폐쇄적인 조직 문화가 만들어낸 어두운 단면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김명은 경제부 기자 |
공무원들의 세종 근무를 두고 '갈라파고스화(化)'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공정위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기업 본사와 소비자가 몰린 서울과 거리가 있는 세종 본부에 근무하는 직원들이 현장조사를 할 때 애를 먹거나 산업계 변화 흐름을 재빨리 흡수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자주 받아 왔다.
그런 상황에서 외부인 접촉 제한까지 엄격하게 적용되면서 공정위 직원들이 서류만 파고드는 '고립'의 길로 가고 있다는 시선도 적지 않다.
공정위는 사건 처리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한다는 이유로 '외부인 접촉 관리 규정'을 문재인 정부의 김상조 위원장 시절인 지난 2018년 1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시행 초기에는 공정위 사건을 담당한 경험이 있는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와 회계사, 공정위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대기업 임직원, 법무법인과 대기업에 취업한 공정위 퇴직자 등과 만나거나 연락을 취한 경우에는 5일 이내에 보고하도록 했고, 일부 예외를 허용했다. 이후 제3자를 통한 우회적인 접촉까지도 막기 위해 보고 대상을 확대하는 등 제도 보완이 이뤄졌다.
제도 시행 첫 해 직원들의 접촉 보고 건수는 총 2344건으로 월 평균 195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위는 직원들이 불필요한 접촉을 줄이면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외부의 시도가 차단되는 효과가 있었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좀 다른 얘기들도 들린다. 직원들 사이에서 사소한 꼬투리라도 잡힐까봐 외부인과의 접촉을 극도로 꺼리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나타나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공정위 한 과장급 공무원은 "과거에는 동문회에 나가서 기업들 돌아가는 상황도 파악하고 '공정위 OB(퇴직 공무원)'들로부터 사건처리 노하우를 듣고 이를 업무에 적용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러기 쉽지 않다"면서 "직원들의 전문성은 갈수록 약해지고 있고 특히 신입 직원들은 현장을 잘 모른다"고 토로했다.
최근 6년간(2016~2021년) 통계를 보면 공정위의 행정소송 승소율은 2020년 69.4%까지 떨어졌다가 지난해 81.8%로 큰 폭으로 상승했다. 일부승소까지 포함하면 승소율은 90.9%에 이른다.
소송 통계만 보면 공정위의 사건처리 전문성이 심각한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또 퇴직자의 사건 로비 가능성이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에서 이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공정위의 조직 쇄신안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외부인 접촉을 무조건 막는 것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직원들이 외부인과 만나서 다양한 얘기를 듣고 이를 사건에 합리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판단력을 키우는 게 더 중요해 보인다.
'공정위가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얘기를 더이상 듣지 않도록 직원들의 숨통을 얼마쯤 틔워줄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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