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최현민 기자 = 강원도의 레고랜드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 등으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가 확산되면서 건설업계에 줄도산 공포가 퍼지고 있다. 신용이 양호한 대형건설사조차 회사채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 상태다.
금리 인상, 자잿값 인상, 미분양 등 삼중고가 겹치면서 자금 확보에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사업 포트폴리오가 주택사업에 치중된 중견 건설사들은 부도 도미노가 일었던 2011년과 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표면적으로 중견건설사들의 자금난이 드러나진 않았지만 레고랜드 사태를 시작으로 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개발사업 보단 자체사업에 치중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22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최근 디폴트가 발생한 강원도 레고랜드 사태 여파로 부동산 PF 부실 확산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건설사들이 자금 압박에 시달릴 것으로 예측된다. 이 가운데 특히 자금력이 약한 중견 건설사들의 압박이 심화될 전망이다.
춘천 레고랜드 모습 [사진=레고랜드 코리아 리조트] |
◆ 레고랜드 부동산 PF 부실 여파…중견건설사도 디폴트 우려
부동산 PF는 건설사가 금융권에서 돈을 빌려 토지를 매입하고 건물을 올린뒤 분양 수익을 내는 구조다. 개발사업의 미래가치를 보고 자금을 미리 빌려주는 것이다. 최근 몇년간 부동산 호황기가 지속하자 금융권의 부동산 PF대출도 급증했다.
하지만 최근 금리 인상과 원재잿값 폭등으로 공사비 부담이 겹치면서 부동산개발 수익성이 나빠졌다. 투자심리 위축으로 주택가격이 하락하면서 미분양이 급증했고 투자금 회수에도 빨간불이 들어왔다.
상황이 이렇자 최근 충남 지역 중견건설사인 우석건설은 지난달 말 납부기한인 어음을 결제하지 못해 1차 부도 처리됐고 이달 말 유예기간까지도 상환이 불가능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사는 충남 지역 6위 업체로 지난해 매출만 1232억원을 기록했다. 최근 2~3년간 주택사업에 집중하며 급성장했지만 급증한 원자재 비용에 재무상태가 급격히 악화됐다.
복수의 수도권 중견 건설사가 연내 만기가 도래하는 어음을 막지 못해 조만간 디폴트에 빠질 수 있다는 이야기도 업계에서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자칫 '흑자 도산'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 분양경기 하락, 중견건설사에 압박 가중...자체사업 많은 중견사 자금조달 더 어려워질 것
뚜렷한 하향세를 보이고 있는 주택경기도 이들 중견건설사들을 압박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부동산경기가 하락한데다 원자잿값 상승으로 매맷값 대비 분양가격의 격차가 갈수록 줄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신용평가는 '주택경기 변곡점에 선 건설산업' 제하의 보고서에서 A급 이상 우수 신용등급을 가진 건설사들도 PF 우발채무로 재무부담에 시달릴 수 있으며 이는 분양경기 하락으로 더 확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BBB등급 이하 중견건설사들의 경기 대응능력을 살펴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업체에 대해서는 신용등급 하락 압박이 거세질 것으로 내다봤다.
한신평은 보고서에서 "BBB급 등 중견 건설사를 중심으로 자체사업 진행 상황 및 재무부담 등에 대한 모니터
링을 강화할 예정"이라며 "A급 건설사는 현재 단기 유동성 수준은 양호하지만 PF보증규모가 증가함에 따라 경기 저하 시 우발채무 현실화에 따른 현금흐름 부담이 늘어날 수 있는 만큼 관련 대응능력을 중점적으로 검토해 신용등급에 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올 하반기 이후 건설사들의 운명은 자금조달능력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PF우발채무 우려로 인해 회사채 이자율이 연 8% 이상 뛰어오른 상황인 만큼 회사채 발행으로 자금 조달하기가 어려워졌다. 실제 대형 건설사들은 회사채 재발행과 같은 리파이낸싱 보다 현금 상환에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뉴스핌] [자료=한국신용평가] |
현금 동원능력이 약한 중견·중소건설사들은 높은 이자율의 회사채를 발행해야하는 만큼 수익성은 더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신용등급도 하향될 것으로 보여 자금 조달은 더욱 힘들어질 전망이다. 더욱이 아직 건설업 불황이 온 것이 아닌데도 이번 레고랜드 사태로 인해 증권사를 비롯한 금융권이 건설업체에 대한 자금조달 지원에 소극적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레고랜드 사태 이후 한 증권사 관계자는 "지방자치단체도 보증을 꺼려할 정도라면 앞으로 PF사업에 자금을 조달해주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레고랜드 사태에서 촉발된 PF우발채무 우려는 중견건설사들을 사지에 몰아 넣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한신평 관계자는 "상대적인 분양위험 익스포저(대출·투자금액 및 손실금액)가 크고 경기 대응력이 낮은 중견 건설사가 우선적으로 신용도 하향 압력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PF시장 규모 축소 전망…자금 조달 막으면 더 큰 부실
중견사들이 유독 건설 경기 불황 직격탄을 맞는 이유로 국내 주택사업 중심의 사업구조를 꼽을 수 있다. 이에 원자재 가격 상승과 금리 인상, 분양 경기 악화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금리인상으로 대출부담이 급증한 상황인 만큼 사업장중 한 곳에서라도 미분양이 발생할 경우 회사가 어려워질 수 밖에 없다"면서 "자금력이 부족해 PF 대출이 불가피한데 현재 대출 자체가 쉽지 않고 대출을 받아도 리스크가 커 판을 벌릴 수 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자체 보증의 PF 사업마저 부도 처리되고 있어 민간 차원의 PF 사업 리파이낸싱은 더 쉽지 않을 것"이라며 "공사비는 오르고 미분양 되는 상황이라 개발사업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높은 금리에 디폴트 등 여러 문제들이 겹치면서 PF 심사가 더욱 까다로워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PF 시장 규모 축소로 자금 마련에 어려움이 가중될 것으로 보고 있다.
김성환 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시장이 좋을 때는 PF 대출을 받아 하자는 측면으로 결정을 내렸다면 지금은 왠만하면 기다리자는 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결국 PF 시장 규모 축소로 인해 자금 마련이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일각에선 부동산 PF에 한정해 위기라는 인식이 팽배해져 자금 조달을 막아선 안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부동산 PF가 금융권에서 제공해야 하는 만큼 금융기관의 건전성과 리스크 측면에서 보면 공급을 안하는게 맞지만 자금 정체로 다가올 문제가 더 크기 때문이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실장은 "부동산 PF 대출도 잘 안되고 은행들의 대출 태도도 강경해졌다"면서 "위기라는 인식이 부동산 PF에 한정되다보면 자금 순환이 잘 안돼 건설사들 문제가 더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김 실장은 "미국의 통화정책으로 인한 위기인 만큼 진단도 그 관점에서 하고 공조해서 극복 할 수 있는 대응전략을 만들어야 된다"고 덧붙였다.
min7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