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스핌] 정성훈 기자 = "레고랜드 사태는 예고된 폭탄입니다."
채권 전문가로 손꼽히는 황순주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지난 27일 <뉴스핌>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번 레고랜드 사태를 한 마디로 일축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시중금리가 폭등했고, 기업들에게 돈을 빌려준 투자자들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기업들에게 대출금 상환 압박을 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그동안 경기 활황으로 급속히 불어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이 부실화되고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로 해석했다.
황순주 KDI 연구위원 [사진=KDI] 2021.05.03 jsh@newspim.com |
레고랜드 사태는 지난달 28일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춘천시 중도 일원에 레고랜드 테마파크 조성을 위해 발행한 2050억원 규모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에 대한 지급보증 철회 의사를 밝히면서 촉발됐다. 김 지사의 깜짝 발표를 두고 금융업계는 강원도가 이번 사업에서 사실상 손을 떼겠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이후 채권시장이 빠르게 경색되는 등 금융시장 불안이 커지면서 투자자들의 자금 회수로 이어졌다.
황 연구위원은 "앞으로 정부·지자체 보증뿐 아니라 증권사 보증 이행 문제도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면서 "이는 채권시장이나 가계부채, 기업 대출 등 금융시장 전반에 연쇄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그는 "현재 금융위기가 내후년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금융시장 경색을 넘어 외환위기 당시의 금융위기가 또다시 찾아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경색된 자금시장의 빠른 안정화를 위해서는 결국 한국은행이 나서야 한다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황 연구위원은 "시중은행들 역시 한은에서 돈을 빌려다 재대출해 주는 구조로, 결국 사태 해결을 위해서는 한은이 나서 기업 대출을 늘리는 방식이 고려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다음은 황 연구위원과의 인터뷰 일문일답.
-이번 레고랜드 사태를 어떻게 보고 계신지
▲금리가 빠르게 인상되면서 단기 자금시장에 문제가 발생하던 찰나에 이 사건이 터졌다. 예를 들어 기업이 3개월짜리 대출을 3% 금리로 빌렸는데 3개월이 지나서 상환 만기가 되면 갚아야 한다. 보통은 이 돈을 갚지 않고 다시 빌리는 차환을 하는데, 그사이 금리가 많이 뛰면서 조건이 달라지는 거다. 3% 이자가 단 시간에 5~6%로 두 배가량 오른 데다, 부실 채권도 발생하고, 경기 침체에 따라 PF 상황도 안 좋고 하니 투자자들이 만기 연장을 안 해주는 거다. 금리 급등에 따른 레고랜드 사태는 '예고된 폭탄'이라고 볼 수 있다.
-레고랜드 사태는 지자체 보증 철회가 발단이 됐다. 지자체 보증이 어느 정도 공신력이 있는지
▲정부 수준으로 강력한 게 지자체 보증이다. 지자체가 보증한다고 하면 담보도 보지 않고 그냥 대출을 해준다. 채권시장에서도 최고 신용등급을 준다. 특히나 강원도 같은 광역 지자체가 보증을 하면 국가 수준의 보증이 있다고 믿는 거다. 이번에도 담보도 안 보고 그냥 빌려줬는데 지자체가 보증을 이행하지 않겠다. 정확히는 보증을 지연 이행하겠다고 하면서 시장 분위기가 급격히 냉랭해졌다. 시장에서는 사실상 파산으로 받아들였다. 투자자들이 갖고 있던 근본적인 믿음이 깨진 거다.
-이번 사태의 경우 보증을 해준 강원도가 일차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거 아닌가
▲당연히 책임을 져줘야 한다. 그런데 보증계약이라는 게 사실은 디테일이 조금씩 다르다. 그래서 강원도하고 강원도개발공사에서 보증을 어떤 식으로 하겠다고 했는지 계약서를 좀 들여다봐야 한다. 예를 들어 만기 시 차환이 안 되면 투자자들이 그냥 갚으라고 했을 때 즉각적으로 그날 바로 돈을 주겠다는 형식으로 보증했는지, 아니면 디테일한 내용 없이 그냥 우리가 보증한다고 애매하게 보증 계약을 썼는지 따져봐야 한다. 법률 검토도 없이 정말 어줍지 않게 계약을 했다면 법적 위반 소지도 있다.
-강원도가 보증 이행을 철회한 이유가 뭐라고 보시는지
▲그것까지는 제가 잘 모르겠는데 예산이 부족해서 그렇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예산이 부족한 상황에서 레고랜드 건설에 돈이 많이 들어가고, 강원도 경제 활성화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을 수도 있다.
황순주 KDI 연구위원 [사진=KDI] 2021.05.03 jsh@newspim.com |
-강원도 보증액은 2050억원인데, 정부가 50조 유동성 투입 계획을 발표했다
▲강원도 채무 불이행 사태가 트리거(계기)가 된 건데, 그 이전에도 문제가 쌓이고 있던거다. 고금리가 되면서 자금 시장에서 3% 금리로 빌렸던 돈을 10%에 갚아야 하다 보니 다 돌려막기를 하고 있었던 거다. 이 돌려막기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에서 다들 전전긍긍하고 있던 상태였다. 강원도 보증액은 2000억원 수준밖에 안 되지만, 이게 트리거가 돼 투자 심리가 단시간 내 얼어붙었고 시장 전반의 자금 경색을 불러온 것이다.
-50조 유동성 투입으로도 사태가 진전되지 않을 경우 해법은
▲궁극적이고 가장 파워풀한 방법은 한국은행이 그냥 돈을 풀면 된다. 현재 자금 시장에서 돈을 빌린 사람들이 만기가 되면 돈을 갚아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문제가 되고 있다. 주로 증권사일텐데 이들에게 한국은행이 긴급 유동성을 제공해주면, 쉽게 대출해주면 해결될 수 있다. 2020년 3월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단기금융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증권업계가 유동성 위기에 처했었다. 이때 한국은행이 긴급 유동성을 제공하면서 사태가 완전히 해결됐다.
-이번 레고랜드 사태로 정부가 물가 안정을 추진하기 더 어려워졌다
▲맞다. 그게 한국은행의 딜레마다. 금리 상승기에는 한국은행의 목표가 물가 안정하고 금융 안정 두 가지가 있는데, 물가 안정을 위해 금리를 올리면 금융 불안이 발생한다. 반대로 유동성을 풀면 금리를 올리는 효과는 없어진다. 지금 자금 시장만 말씀드렸지만, 채권 시장도 마찬가지로 은행채랑 한전채랑 등등 너무 많이 나와있어 초우량 대기업들도 돈을 빌리기 힘든 상황이다. 현재 한국은행의 법적인 두 개의 책무 간에 상충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그래서 참 어려운 문제다.
-기재부와 한국은행 사이 관계가 악화될 가능성도 있어 보이는데
▲이런 상황에서 금융 불안이 더 문제가 되면 아마 한국은행하고 기재부 간 대립이 발생할 수 있다. 아무래도 한국은행은 역사적인 전통을 고려했을 때 물가안정이 최우선이고, 기재부는 물가안정을 비롯해 여러가지를 다 신경 써야 하니 그런 거다. 금융위원회 같은 경우는 금융 안정이 더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에 한국은행과 신경전을 벌일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금융위는 한국은행보다 기재부에 가깝기 때문에 이 세 개 기관 간의 대립 관계가 심화될 수 있다.
-이번 레고랜드 사태가 단기에 해결되기 쉽지 않아 보인다
▲금리를 내리지 않는 이상 해결되지 않을 거다. 50조짜리 긴급 자금 조성해가지고 채권 자금 시장 잡는다고 해도 지금처럼 빠른 속도로 금리를 계속 올려버리면 다른 쪽에서 문제가 발생할 거다. 더욱이 금리가 너무 많이 높아지다 보면 채권시장이나 가계부채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100만원 이자를 갚던 사람들이 300만원을 갚아야 하고 다 시스템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 증권사 보증 대출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보통 조 단위로 알고 있는데, 이게 터지면 사태는 더 심각해진다.
-레고랜드 사태로 대출 기준이 더 까다로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당연히 그렇게 될 거다. 이제 웬만한 우량 기업들 아니면 돈을 빌리는 게 더 어려워진 거고 투자를 받는 은행을 통하든 자금을 조달하는 루트가 더 좁아진 거다. 은행은 이미 건설업이나 부동산 투자 관련해서는 거의 돈을 빌려주지 않고 있다. 일단 불경기가 되면은 PF 사업 손실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은행이 아무리 높은 금리로도 안 빌려주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금융경색이 언제쯤 해소될 것으로 예상하나
▲미국 연준이 금리 인상을 그만두면 가능성이 있다. 다만 지금처럼 높은 금리에서 멈춘다면 또 좋은 것도 아니다. 여기서 다시 금리를 낮추는 움직임이 가시적으로 나와야 괜찮아질 텐데 현재로서는 고금리 기조가 이어질 것 같다. 물가가 관건인데 물가가 잡혀야 연준이 금리 인상을 멈출 것이고, 물가가 잡히더라도 한 1~2년은 지켜보다가 낮출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내년까지 갈 수도 있고 내후년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이것을 잡지 못하면 금융시장 경색을 넘어 외환위기 당시의 금융위기가 또다시 찾아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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