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강명연 기자 =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맡고 있는 철도 관제, 선로유지보수를 국가철도공단에 이관할지를 포함해 철도안전체계를 전면 재검토하는 연구용역에 '이해 당사자'인 두 공기관이 직접 참여한다.
정부의 정책과제 연구용역에 공공기관이 참여하는 경우는 상당히 드문 일이다. 이해관계가 직접 얽힌만큼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도 양 기관 특히 코레일의 반발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그만큼 두 기관이 책임 있게 논의에 참여하지 않으면 철도안전체계를 근본적으로 보완할 수 없을 것이란 정부의 고민으로 보인다. 이태원 참사로 전방위에 걸쳐 안전문제가 도마에 오른 가운데 이해당사자인 두 공사가 용역을 통해 머리를 맡대면 책임 있게 의사결정에 나서지 않겠냐는 판단이다.
다만 최종 결정을 내릴 정부는 관제, 선로유지보수를 운영사가 맡고 있는 데 따른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을 주시하고 있어 철도공단에 이관하는 방안이 유력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경우 철도노조 등을 설득시키고 최종 정책 결정을 내기까지는 험난한 과정이 예상돼 정부도 고심하고 있다.
한국철도공사, 국가철도공단 대전 사옥 전경 [사진=국가철도공단] |
◆ 국토부, 코레일·철도공단과 공동용역 추진…용역비도 분담해 책임감 강화
4일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철도안전체계 심층진단 및 개선방안' 연구용역에 코레일과 철도공단이 참여하기로 하는 내용의 협약을 이르면 다음주 체결할 예정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철도안전을 공동으로 책임지는 두 기관과 정부가 지혜와 역량을 모아서 용역에 참여하자는 취지의 협정을 맺고 바로 용역을 발주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코레일과 철도공단이 용역에 직접 참여해 성실하게 연구에 임하고 결과에 책임지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용역비도 국토부, 코레일, 철도공단이 나눠서 부담한다. 기존 정책연구 대비 용역비를 대폭 늘려 제대로 된 연구성과를 낸다는 목표다. 국토부 관계자는 "치열한 논의를 거쳐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연구에 참여할 수 있도록 용역비 분담률을 정했다"며 "입찰 과정에서도 다양한 연구기관들이 경쟁해서 뛰어난 결과물을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철도분야 정책연구를 주로 맡았던 교통연구원 외 대학 등 다양한 기관들이 적극적으로 용역에 참여해 용역 신뢰성을 대폭 끌어올릴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 정책 연구 과제에 공공기관이 참여하는 사례는 이례적이다. 그만큼 이해당사자인 두 기관의 책임 있는 논의가 절실하다는 판단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철도안전체계의 핵심인 철도관제, 시설유지보수 업무수행 체계의 근본적인 개선방안을 마련하지 않으면 사고가 필연적으로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깔린 셈이다.
국토부는 내달 조달청 발주를 시작으로 용역에 본격 착수해 내년 3월 중간보고를 받는다는 목표다. 중간보고에서 연구의 대략적인 윤곽이 나오면 이후 두 달여 만에 최종 결론을 낼 수 잇을 것으로 보고 있다. 중간보고는 공개를 원칙으로 공론화한다는 방침이다.
◆ 내년 3월 중간보고서 공론화…철도노조 갈등 재현 우려
논의의 핵심은 관제, 선로유지보수를 누가 맡는 게 안전을 보다 확보할 수 있는지다. 관제의 경우 지난 7월 대전 조차장역 SRT 탈선사고가 도화선이 됐다. 선행열차 기관사가 열차 흔들림을 신고했지만 이후 관제에서 그에 따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코레일이 관제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이에 대해 코레일은 선행열차가 신고한 후 다음 열차가 들어오는 데까지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신고가 들어온 뒤 사고열차가 지나갈 때까지 4분이 걸리지 않아 조치가 어려웠다는 취지다.
2019년에는 국가철도 관제업무의 독립성 확보 방안을 마련하라는 감사원 지적도 있었다. 감사원에 따르면 코레일은 속도제한 등 관제 기준을 지키지 않거나 경쟁사인 SRT보다 늦게 도착한 KTX에 신호를 먼저 주는 식으로 공정성을 저해한 사례가 다수 확인됐다.
특히 2027년부터 운영할 제2철도관제센터 운영을 누가 맡을지가 핵심이다. '제2철도교통관제센터 건설사업 기본계획' 작성을 위한 연구용역에서는 철도공단이 관제를 맡는 게 가장 적절하다는 결론을 냈지만 국토부는 운영 주체를 어디로 할지를 기본계획 고시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감사원 지적을 반영해 용역에 관련 내용이 포함됐지만 정부 차원의 결정을 아직 내리지는 않았다는 설명이다. 시설유지보수의 경우 더불어민주당 조응천 의원이 코레일이 시설유지보수를 맡는다는 내용을 삭제하는 철도산업발전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아직 법안이 올라오지는 않았다.
잇따른 철도사고의 원인과 구조적인 문제를 분석해 안전 강화방안을 도출한다는 용역 목표를 감안하면 관제, 선로유지보수를 운영사로부터 분리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일단 국토부는 관제·유지보수 업무를 코레일에서 국가철도공단에 이관하는데 힘을 실은 모양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지난 3일 대전 코레일 본사에서 열린 철도안전비상대책회의에서 "고속열차 탈선 등의 대형 철도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관제, 시설유지보수, 차량정비 등 철도안전체계를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해야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실제로 감소세를 기록하던 철도사고는 작년부터 2년 연속 증가하고 있다. 2010년 317건이던 철도사고는 2020년 58건으로 줄었지만 작년 64건이 발생했고 올해는 지난 9월까지 66건에 이른다. 고속철도의 경우 2004년 개통 후 작년까지 5건이 발생한 데 비해 올해는 2건이나 발생해 위험도가 점점 커지고 있다. 고속철도는 대형 인명피해를 유발할 우려가 있는 만큼 안전관리가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코레일은 만약 정비, 선로유지보수를 분리하면 운영을 모르는 채 해당 업무가 제대로 수행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운영 주체가 책임지고 관제 등을 수행해야 안전을 담보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코레일 체제 아래서 사고 등의 문제가 발생했던 사례가 분리 쪽에 힘을 싣고 있는 상황이다.
만약 현 체제를 바꿔 관제, 선로유지보수를 철도공단으로 넘기기로 할 경우 철도노조의 반발이 불가피하다. 노조 역시 운영사가 해당 업무를 맡는 게 가장 안전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3만여명의 직원 중 관제·유지보수 직원이 1만명에 달하 조직이 3분의 2로 쪼그라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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