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는 경찰의 부실한 현장 대응과 보고체계가 사고를 키웠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도 최근 경찰의 대대적 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찰의 대규모 군중 관리나 재난 및 안전 대비 시스템, 조직문화 재정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뉴스핌은 향후 경찰이 어떻게 변하고 혁신해야 할지를 전문가 의견 등을 통해 짚어본다.
[경찰 대혁신] 글싣는 순서
1. 무너진 보고체계…"신속한 결정 위해 전문성 필요"
2. 군중관리 '구멍'…"신속·간단 매뉴얼 마련해야"
3. 현장 지휘 및 결정권자 부재..."통합·중복 체계로"
4. '반쪽짜리' 자치경찰..."이원화 속도내야"
5. '검수완박' 불신..."조직 체계 진단부터"
[서울=뉴스핌] 이정윤 기자 = 이태원 참사 당시 경찰 지휘 라인과 현장 지휘자들의 부실 대응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이 때문에 경찰청 특별수사본부(특수본)의 칼끝이 현장 지휘자들을 넘어 경찰 수뇌부로 향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경찰의 수직적이고 단일적인 보고체계를 여러 라인으로 보고할 수 있는 '통합‧중복적' 체계로 손질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 경찰 수뇌부, 대통령보다도 늦게 보고 받아
[서울=뉴스핌] 김학선 기자 = 윤희근 경찰청장이 1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이태원 사고' 관련 입장 표명을 하고 있다. 2022.11.01 yooksa@newspim.com |
12일 경찰에 따르면 윤희근 경찰청장은 당시 토요일 휴일을 맞아 오전 충북 제천시를 방문해 지인들과 월악산을 등산한 뒤 오후 11시께 캠핑장 숙소에서 잠이 들었다. 충북 청주 출신의 윤 청장은 2012년 제천 경찰서장으로 재직했었다. 이 시각은 참사가 시작된 지 약 45분 뒤로, 윤 청장은 서울에서 긴급 상황이 발생한 사실을 모른 채 취침한 셈이다.
윤 청장은 오후 11시32분께 경찰청 상황담당관에게 인명 사고 발생 문자메시지를 받았으나 확인하지 못했고, 20분 뒤 다시 상황담당관의 전화가 왔지만 받지 못했다. 이튿날인 10월 30일 오전 0시14분 상황담당관과 전화통화로 비로소 상황을 보고 받은 뒤 서울로 즉시 출발해 5분 뒤 서울경찰청장에게 전화로 총력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윤 청장이 참사를 처음 인지한 지 2시간16분 뒤인 10월30일 오전 2시30분에서야 경찰청사에서 지휘부 회의를 주재한 것은 상경하는 데 시간이 걸렸던 탓이다.
윤 청장이 잠이 들어 받지 못했지만 첫 보고가 온 10월29일 오후 11시32분(문자메시지)을 기준으로 보면 이미 윤석열 대통령(11시1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11시20분)이 사고를 인지한 뒤다. 이는 소방청의 대응 2단계(11시13분) 발령, 윤 대통령의 첫 지시(11시21분) 등 긴급 조치가 이뤄진 뒤이기도 했다.
서울 치안의 총책임자인 김광호 서울경찰청장도 마찬가지로 보고 사각지대에서 늦게 상황을 인지했다. 참사 당일 오후 9시께까지 광화문 서울청 집무실에서 집회관리 업무를 한 뒤 강남구 자택으로 퇴근했다.
김 청장이 퇴근하던 시점에 서울청 112치안종합상황실엔 이태원에서 '사람이 너무 많아 압사할 것 같다'는 위급한 신고전화가 최소 8통 접수됐다. 집에 있던 그는 오후 11시 34분께 걸려온 이임재 용산경찰서장의 3차례 전화를 받지 못했고, 2분 뒤 전화통화가 이뤄져 처음 참사를 인지한 것으로 확인됐다.
◆ 현장 지휘 용산서장‧상황관리관 부재…초동 부실대응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이태원 압사 사고'의 부실 대응을 수사하는 경찰 특별수사본부(특수본)가 2일 서울경찰청과 용산경찰서, 용산구청 등 8곳에 대해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에 착수했다. 사진은 이날 오후 서울 용산구 용산경찰서 모습. 2022.11.02 mironj19@newspim.com |
'이태원 압사 참사' 당시 현장 총괄 책임자였던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의 당일 행적에 대한 의문점도 커지고 있다. 김 서울청장에게 늑장 보고를 한 이 전 서장은 '거짓 보고'에 휩싸였다.
지난달 29일 참사 당시가 기록된 용산경찰서 상황보고서에는 이 전 서장이 그날 오후 10시20분쯤 현장에 도착해 지휘한 것으로 기록됐다. 그러나 경찰청 감찰 결과 이 내용은 허위로 확인됐다.
경찰청 특별감찰팀은 "이 전 서장이 참사 당일 이태원파출소에 도착한 시각은 29일 오후 11시5분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 전 서장은 참사 신고가 최초로 접수(오후 10시15분)된 후 50분 뒤 현장에 도착했다. 애초 알려진 도착 시간(밤 10시20분)보다 45분 늦다.
이와 함께 일각에서는 이 전 서장이 참사 당시 현장과 가까운 이태원파출소 옥상에서 위급한 상황을 모두 지켜봤음에도 늑장 보고를 했다는 주장도 나오는 등 이 전 서장의 행적을 둘러싼 의혹이 커지고 있다. 이 전 서장은 업무상 과실치사상·직무 유기 혐의가 적용됐다.
참사 당일 서울경찰청 112치안종합상황실 상황관리관이었던 류미진 총경은 사고가 발생한 지 1시간24분이 지나 근무지에 복귀하는 등 근무 수칙을 지키지 않았다. 당초 특수본은 류 총경에게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도 함께 물었다가 추후 직무 유기 혐의만 적용하는 것으로 정정했다. 류 총경의 늑장 보고가 구조작업에 차질을 초래, 인명피해를 야기한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특수본은 진상 규명 과정에서 지휘부의 문제가 드러날 경우 서울청장을 포함해 수뇌부까지 수사 대상을 확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 전문가 "통합‧교차 보고로 라인 재정비"
[서울=뉴스핌] 최상수 기자 = 29일 저녁 핼러윈 행사 인파로 인해 300명대의 사상자가 발생한 가운데 다음날인 30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인근에 경찰-소방 합동 현장지휘소가 설치되어 있다. 2022.10.30 kilroy023@newspim.com |
전문가들은 이번 이태원 사태는 정부의 보고라인이 총체적으로 작동이 되지 않아 최악의 상황을 만들어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경찰의 수직적이고 단일적인 보고체계를 여러 라인으로 보고할 수 있는 '통합‧중복적' 체계로 손질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경찰의 경우 단계를 밟아서 올라가는 수직적인 보고 체계라 이번 사태로 보완이 필요하다"며 "이중적으로 보고 체계를 만들어서 다른 곳에서도 보고를 받는 백업을 해주는 게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신이철 원광디지털대 경찰학과 교수는 "지금까지는 '파출소-경찰서-서울청-본청'으로 이어지는 단일 보고였지만, 이번 사태에선 휴일이고 보고라인이 근무하지 않는 등 보고체계 중간 중간 구멍이 많았다"면서 "긴급하고 중대한 상황에서는 단계를 건너뛰고 보고할 수 있도록 보고 체계를 손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교수는 "또 경찰이나 소방의 경우에는 자기라인만 보고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적, 교차적으로 보고 라인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jyoo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