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지혜진 신정인 기자 = 경기 부천 오정경찰서에서 만난 허승원(54) 지능범죄수사팀장은 과거 400억원 규모의 다단계 사기에서부터 피아노 대여를 가장한 신종사기를 해결한 경험이 있는 베테랑 수사관이다. 허 팀장은 1990년 순경으로 입직해 부천 원미경찰서, 부천 오정경찰서 등을 거쳤다. 2020년에는 보이스피싱 중계기 추적으로 특진한 이력이 있다.
허 팀장은 최근 86억원 상당의 피해를 일으킨 비상장주식 사기 사건을 해결했다. 32년 경력인 만큼 이번 사건을 보자마자 그는 비상장주식을 보유한 본사와 브로커 간의 공모관계를 밝히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나중에 재판까지 사건이 넘어갔을 때 투자자들이 피해금을 되찾기 위해서는 실질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회사의 혐의까지 밝히는 게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어차피 영업자들은 재산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재판에서 피해자들이 형사배상명령 신청을 통해 피해를 회복하면 민사소송을 별도로 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서울=뉴스핌] 신정인 기자= 지난 29일 부천 오정경찰서에서 허승원 지능범죄수사팀장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2.11.30 |
이 때문에 처음부터 본사가 개입했을 가능성 등 여러 경우의 수를 펼쳐 놓고 수사에 들어갔다. 피해자들이 모두 전화나 카카오톡 메시지 등을 통해 사기를 당했기 때문에 허 팀장은 대포폰(다른 사람 명의의 휴대전화) 추적에서부터 파고들었다.
수사에 착수했을 때는 이미 사기 일당이 잠적한 이후로 '성명불상자'만 수십명이었지만, 허 팀장은 자신만의 노하우로 한 단계씩 밟아 들어갔다. '사용이 중지된 대포폰을 어떻게 추적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그는 "업무상 비밀"이라며 웃어 보였다.
경기 부천시 소재 배터리기업 E사의 비상장주식을 주도적으로 판매한 A씨의 신원을 파악하고 구속한 뒤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E사에 대한 강제수사에도 착수했다. 판매책 등 브로커뿐만 아니라 E사의 대표 등 임원진의 혐의에 대해서도 수사에 나섰다.
허 팀장은 "자사의 주식이 오가는 일인데 본사가 모를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면서도 "본사의 가담 여부, 공모관계가 밝혀지느냐가 중요했는데 브로커들과 주고받은 대화 등을 미루어 봤을 때 결과적으로 공모했다는 게 밝혀졌다"고 했다.
그는 현재도 E사에 대한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범죄에 이용된 계좌를 분석한 결과 총피해자가 500~600여명일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관련자를 낱낱이 파헤치겠다는 의지이다.
◆ "진화하는 범죄자들 찾아내는 게 경찰의 역할"
허 팀장은 사기 범죄자들이 지속해서 '아이템'을 바꿔가며 진화한다고 지적했다. 실물이 있는 상품으로 사기를 치던 것에서 주식, 코인 등으로 수법을 바꾸는 식이다. 또 공범끼리도 실명을 공개하지 않고 대포폰으로만 연락을 주고받는 등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하기 위한 수법이 교묘해졌다는 설명이다.
수법이 교묘해지다 보니 수사는 점점 더 '시간과의 싸움'이 된다. 범죄자들이 수사기관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VPN(가상사설망)으로 IP를 우회하는데 정보 보관 기간이 짧거나, 수사 협조를 받기 힘들기 때문이다. 특히 대포폰으로 사기를 치는 경우 이미 잠적을 한 뒤라면 해당 휴대전화를 썼던 사람을 찾기 어려워진다.
그럼에도 허 팀장은 '경찰이 아니면 누가 피해자의 하소연을 들어주겠나'라는 심경으로 수사에 임한다. 그는 "검거 가능성만 있다면 최대한 빨리, 적극적으로 수사를 착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기간에 많은 인력을 투입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이라도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게 경찰"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마지막으로 허 팀장은 "일단 경찰에 신고했다면 믿고 기다려 달라"고 당부했다.
"온갖 불법과 편법으로 도망가는 범죄자를 합법적으로 쫓아가야 하는 게 경찰입니다. 사건이 접수됐는데 손을 놓고 있는 경찰은 없어요. 경찰을 믿고 기다리는 게 가장 수사가 빨리 이뤄지도록 도와주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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