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조재완 기자 = "조선업 호황이라는데 샴페인 터뜨릴 사람도 없다."
내년 조선업 전망을 이야기하던 한 업계 관계자가 자조적인 목소리로 덧붙여 말했다. "웃프지도 않아요. 슬퍼요." 업계를 떠나는 직원들을 바라보며 '웃픈(웃기면서도 슬픈)' 현실이라며 농을 하던 것도 옛날 이야기가 됐다. 더 이상 웃음도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인력난은 업계 만년 고질병이다. "병을 고칠 해법을 알면서도 손도 쓰지 못하고 병이 악화되는 상황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 밖에 없는 두 가지가 있다. 출산율과 조선업 인력난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조재완 산업부 기자 |
최근 들어선 더욱 극심해진 모습이다. 일손이 모자라 웃돈을 주고 하청업체를 쓰는가 하면, 중국에 외주를 맡기기도 한다. 'K-조선'이 중국에 수주 1위 자리를 내어줬다는 뉴스가 쏟아지는데, 사실 우리나라가 이미 수주한 물량도 중국에 외주를 맡기는 실정이다.
조선업 종사자 수는 2014년 20만여 명이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뒤 꾸준히 내리막길을 걸었다. 올해 상반기 기준 조선업 종사자는 9만여 명에 불과하다. 오랜 업계 불황기를 고려하더라도 인력 이탈 현상은 극심한 수준이다.
특히 하청노조 불법파업과 매각설로 뒤숭숭했던 대우조선해양에선 '탈출 러쉬'에 가속도가 붙었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올 상반기에만 대우조선 직원 185명(정년퇴직 제외)이 퇴사했는데 연평균 퇴사 규모의 2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업계는 급한대로 외국인 노동자들을 수급하고 있지만, 언 발에 오줌 누는 격이다. 오죽했으면 업계 1위인 한국조선해양(현대중공업)이 인력을 부당하게 빼간다는 이유로 다른 업체들로부터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 당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현직 종사자들을 붙들어 매는 것도 어려운 실정인데, 한해 평균 7000명(생산 기준)을 더 뽑아야 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산업통상자원부 조사에 따르면 한국 조선업은 2027년까지 13만5000명을 확보 해야한다. 생산 3만7000명, 연구·설계 4000명, 기타인력 2000명을 5년 내 추가 확보해야 지금 같은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잘해야 목표치의 절반을 채울 수 있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이 역시 외국인 노동자 수급이 원활히 이뤄지는 것을 전제로 한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채용해도 언어부터 실무까지 훈련 시켜 이들을 작업장에 투입하기까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실전에 투입되기 전에 이탈하거나 열악한 작업 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빠져나가는 이들도 적지 않다. 조선업을 비롯한 작업장 인명피해를 줄이기 위해 중대재해처벌법이 올해 1월부터 시행됐지만, 사고 소식은 여전하다. 법으로 압박해도 현장은 바뀌지 않았음을 짐작케 한다.
근본적인 문제부터 뜯어고치지 않는 이상 상황은 '도돌이표'다. 원·하청 이중 계약구조를 개선하고, 원청부터 임금을 대폭 올려야 한다고 업계는 입을 모아 말한다. 임금을 올리기 위해선 주 52시간 근로 상한제도 풀어야 할 숙제다. 고용 보장을 위한 노·사·정 논의도 속도를 내야 한다. '호황기에 데려온 사람을 불황에 자르는 악순환'이 조선업에 또 다시 반복된다면 대체 누가 업계에 발을 들이려 할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조선업은 오랜 불황을 딛고 이제 막 일어서기 시작했다. 내년부턴 조선업체들의 '턴어라운드'가 본격 가시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글로벌 경기 위축에도 우리 조선업은 3년치 일감을 쌓아뒀다고 한다. 샴페인을 터뜨리긴 아직 이르다. 축배를 함께 들 사람부터 찾는 게 급선무다.
chojw@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