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화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국민연금 한 마디에 휘청인다. 최근 대표 후보 선정 과정에서 홍역을 치른 KT 이야기다. 국민연금이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를 예고함에 따라 향후 민영화 기업을 둘러싼 외풍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CEO교체' 수모를 피해가지 못한 포스코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여전히 갈 길이 먼 민영화 기업들의 현 주소와 이들 기업의 진정한 자립을 위한 과제들을 톺아봤다.
[서울=뉴스핌] 김지나 조재완 이지민 기자 = 국민연금이 최근 스튜어드십 코드를 강화한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국민연금이 KT·포스코 등 국민연금을 최대주주로 둔 '오너없는 기업' 대표 선임에 개입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미 KT 차기 대표 선임 과정에는 국민연금 입김이 미치고 있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강화 움직임에 기업 경쟁력 측면에서 찬반 의견은 엇갈린다.
[반쪽 민영화] 글싣는 순서
1. 국민연금 주주권 강화에 흔들리는 KT·포스코
2. '국민색' 지우려는 포스코·KT...가속페달에 부작용도
3. 진짜 민영화 되려면..."이사회 독립성 갖춰야"
◆국민연금 스튜어드십코드 강화 첫 타깃 된 KT
3일 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강화된 주주권 행사에 첫 타깃이 된 곳은 KT다. KT는 내년 3월 주주총회를 거쳐 차기 대표를 선임하는데, 지난 28일 최종 대표 후보로 현재 구현모 KT 대표를 확정했다. 구 대표를 후보로 확정하는 과정에선 국민연금 개입이 두드러졌다.
지난달 8일 김태현 국민연금 이사장은 기자간담회를 통해 "현실에서 보면 소유분산기업에서 회장 등을 중심으로 지배구조를 고착화하고 후계자를 양성하지 않는다거나 대표나 회장 선임 및 연임 과정에서 현직자 우선심사와 같은 내부인 차별과 외부 허용 문제를 두고 쟁점이 되고 있다"면서 "이는 사회적 공감대를 이룰 명확한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당시 KT는 차기 대표 후보로 구현모 대표를 단독으로 연임 심사하겠다고 밝혔던 만큼, 김태현 이사장의 이 같은 발언은 KT를 두고 한 발언으로 풀이됐다. 국민연금은 KT 지분 10.35%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국민연금 발언 후 KT 경선 도입했지만...짬짜미 경선 논란
국민연금 발언 후 구현모 대표만 두고 단독으로 후보 심사를 했던 KT는 돌연 경선 방식으로 후보 심사를 전환했다. KT는 경선을 통해 14명의 사외이사와 내부 후계자 양성 프로그램에서 검증된 13명의 사내 후보자를 검토했다.
하지만 KT 대표 후보의 경선 과정에선 공모 절차를 밟지 않고, 심사 절차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았다며 국민연금에 보여주기 위한 짬짜미 경선이란 논란이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안정상 더불어민주당 정보통신방송미디어 수석전문위원은 "KT 이사회가 연임 적합 판단을 내리자마자 구 대표는 복수 후보 심사방식을 택하겠다고 제안했지만, 그 이후 15일간 일정 대표이사 공모나 심사 절차에 대한 내외부 공지가 있거나 공개한 적이 없었다"면서 "문제는 최종 후보자 선정에 대한 심사절차, 평가방식 등에 대해 아무도 알지 못했고, 알 수도 없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 역시 구현모 대표가 최종 후보로 결정된 그날 저녁 이례적으로 KT에 대해 입장문을 내고 "'CEO(최고경영자) 후보 결정이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기본 원칙에 부합하지 못한다는 입장"이라며 "의결권 행사 등 수탁자 책임 활동 이행 과정에서 이러한 사항을 충분히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연금 주주권 강화, 기업경영에 긍정? 부정?
김태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8일 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었다. [사진=국민연금공단] 2022.12.08 kh99@newspim.com |
이 같은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는 국민연금이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다른 기업들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주목되는 곳은 KT와 같이 국영기업에서 민영화 한 포스코다. 포스코홀딩스는 국민연금이 최대주주로 지분 8.5%를 보유하고 있다.
최정우 포스코홀딩스 회장은 2021년 3월 연임됐고, 임기는 2024년 3월까지다. 최정우 회장이 연임될 당시, 최대주주 국민연금은 '중립' 결정을 내리며 정치권 입김을 크게 받지 않고 연임에 성공할 수 있었다. 포스코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회장이 임기를 채우지 못 하고 교체돼 왔다.
포스코 관계자는 "정권에 따라 회장이 교체됐지만, 정부 입김으로 자리에 앉진 않았다"면서 "최정우 회장 역시 전 정권과 엮여 있는 것이 없고, 오히려 최 회장 체제에서 국민기업 이미지를 떨치고 민간기업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오너가 분명하지 않은 기업에서 스튜어드십 코드가 적극적으로 이용되지 못 하면, 결국 기업 내부 세력에 의해 계속 움직일 수밖에 없다"면서 "소유주가 분명하지 않은 기업이 일부 내부 구성원의 기업처럼 운영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반면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강화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김원식 건국대 명예교수는 "기본적으로 국민연금은 정부기관이기 때문에 주주권을 행사하는 것은 야압이 될 수 있다"면서 "KT에서 포스코로 국민연금 개입이 이어지면 다른 공기업도 똑같은 문제가 생겨 정부가 민간기업 지배구조에 간섭하게 되고, 결국 우리나라 기업 환경은 나빠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안정상 위원은 "KT에 대한 국민연금의 과도한 개입은 우려스러운 부분"이라며 "과거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비서관 등 수많은 정치권 인사가 KT 낙하산으로 내려왔는데, 윤석열 정부 역시 국민연금을 통해 KT 인사에 개입하고 민간기업을 조종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할 수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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