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뉴스핌]이영란 편집위원= 홍콩 하면 쇼핑과 미식을 빼놓을 수 없다. 홍콩을 찾는 여행자라면 쇼핑과 미식 체험을 늘 첫 순위에 올려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 자리를 차츰 '아트'가 대체하기 시작했다. 명품쇼핑과 맛집순례는 이미 할만큼 해서 '좀 새로운 게 없을까'하는 이들에게 홍콩 아트투어는 쇼핑보다 흥미롭고, 더 깊은 만족감을 주기 때문이다. 근래들어 홍콩에선 놓쳐선 안될 뮤지엄 전시와 갤러리의 기획전이 봇물 터지듯 이어져 애호가들을 손짓하고 있다.
[홍콩 뉴스핌]이영란 기자= 홍콩 M+미술관의 '쿠사마 야요이;1945 to Now'전 중 전시를 위해 지하에 특별조성된 거울방의 전시 전경. 쿠사마 야요이 회고전은 5월 14일까지 계속된다. [C Yayoi Kusama,M+] 2023.04.25 art29@newspim.com |
▶'서울특별시 홍콩구'라는 별칭을 낳게 한 '아트바젤 홍콩'
코비드가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홍콩은 한국의 내로라하는 아트컬렉터와 미술애호가들이 일제히 운집하는 도시였다. 아시아 최고의 아트페어인 '아트바젤(Art Basel) 홍콩'을 둘러보기 위해 수천명의 한국인이 매년 봄이면 홍콩을 찾았기 때문이다. "00씨, 서울서 못 만났는데 홍콩에서 보네"라는 인사가 아트바젤 홍콩 페어장에서 자주 들렸다. 워낙 많은 한국인이 페어를 찾아 '서울특별시 홍콩구'라는 용어까지 생겼다. 2019년에는 아트바젤 홍콩의 위세가 하늘을 찔렀고, 한국인의 호응도 몹씨 뜨거웠다.
[홍콩 뉴스핌] 아시아의 대표적 현대미술 페어인 '아트바젤 홍콩'을 기점으로 지난 3,4월 홍콩 전역에서 '홍콩 아트위크'가 성대하게 펼쳐졌다. 사진은 2023 아트바젤 홍콩의 페로탕갤러리 부스. 이즈미 카토의 회화와 오토니엘의 유리조각이 출품됐다. [사진=이영란 기자] 2023.04.25 art29@newspim.com |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홍콩 당국이 봉쇄정책을 펼치는 바람에 아트바젤은 온라인 페어 등으로 열려야 했다. 그리곤 올 3월, 홍콩이 코로나 봉쇄정책을 해제하며 아시아는 물론 전세계에서 미술팬들이 다시금 몰려들었다. 홍콩의 예술기관은 '홍콩 아트위크'를 만들고 각종 축제를 개최했다. 이번에 한껏 고양되었던 분위기로 홍콩은 아시아 현대미술의 허브이자, 미술시장 창구로써의 신뢰를 점차 회복 중이다.
[홍콩 뉴스핌] 홍콩 M+미술관의 쿠사마 야요이 회고전에 출품된 붉은색 그물망 회화를 관람객이 촬영하고 있다. [사진=이영란 기자] 2023.04.25 art29@newspim.com |
2023 홍콩 아트위크는 아트도시로서 홍콩의 건재를 전세계에 다시 알린 기폭제였다. 정부 당국의 'Hello Hong Kong' 정책과도 맥을 같이 한다. 정치적 불안이 잦아들자, 인간 삶은 계속되어야 하고 비즈니스 또한 이어져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코비드 기간 중 서울, 싱가포르 등 아시아 도시들이 홍콩의 아성에 도전하며 미술시장을 육성하기 위해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2023아트바젤 홍콩이 성공적으로 안착하며, 아시아 최대의 금융도시, 물류도시, 국제도시로서의 홍콩의 경쟁력이 당분간은 그 기치를 올리게 됐다.
[홍콩 뉴스핌]이영란 기자=일본의 유명 작가 쿠사마 야요이 회고전 포스터가 걸린 홍콩 M+미술관 입구.쿠사마 야요이 회고전은 오는 5월14일까지 계속된다. [사진= 이영란 기자] 2023.04.25 art29@newspim.com |
아트바젤 홍콩 기간에 맞춰 M+ 뮤지엄을 비롯해 페어에 참가한 세계 톱 갤러리들은 디너파티와 만찬 등을 열었다. 또 호주의 뉴사우스웨일스미술관,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미술관(LACMA) 등도 특별파티를 개최됐다. 32개국에서 온 177개 갤러리가 참가한 아트바젤 홍콩은 2019년 판매액(1조원대로 추정)에는 못 미쳤으나 주요 작품들이 프리뷰 때 대거 팔려나가는 등 호조를 보였다. 같은 장소(완차이 컨벤션센터)에서 70개 화랑의 참여 아래 열렸던 위성페어 '아트 센트럴'(Art Central)도 관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뤘고, 판매성과도 기대 이상이었다.
[홍콩 뉴스핌] 이영란 기자= M+ 뮤지엄이 수년간의 준비 끝에 내놓은 쿠사마 야요이 회고전은 관람객들로부터 열띤 호응을 얻고 있다. 2023.04.25 art29@newspim.com |
▶아시아 최대의 미술관 M+, 전세계에 입소문
홍콩 서구룡문화지구(West Kowloon Cultural District)에 초현대식 뮤지엄인 M+가 들어선 것은 대단한 의미를 지닌다. 이렇다 할 현대미술관이 없었던 홍콩에 새롭고 진취적이며, 글로벌 스탠다드에 걸맞는 본격적인 현대미술관이 생기면서 홍콩은 비로소 균형있느 아트시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홍콩의 아트씬은 M+가 생기기 전과 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 매머드한 뮤지엄의 등장은 홍콩의 현대미술 경쟁력을 일거에 업그레이드시켰다.
[홍콩 뉴스핌] 바다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홍콩 M+미술관의 야외데크. 일본계 미국 조각거장 이사무 노구치의 붉은색 작품 10여점이 너른 데크에 설치돼 있다. [사진=이영란 기자] 2023.04.25 art29@newspim.com |
미술관 건축은 최근 문화예술계에서 가장 각광받는 건축가인 스위스의 헤르조그 앤 드뫼롱이 디자인했는데 간결하면서도 유기적인 공간배치가 뛰어나다는 평이 제기되고 있다. 홍콩섬에서도 한눈에 보이는 초대형 미디어캔버스를 우뚝 세우고, 전시관과 미디어전시실 등은 가로로 길고, 넓게 배치한 것이 특징이다.
[홍콩 뉴스핌] 홍콩 M+미술관의 매머드 기획전 'Hong Kong:Here & Beyond'의 전시 전경. 이 전시는 6월 11일까지 계속된다. [사진=이영란 기자] 2023.04.25 art29@newspim.com |
미술관 로비와 각 전시실이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관람편의도 나무랄 데 없어 모두 5개에 이르는 대형 전시가 효과적으로 연결된다. 전시 관람을 모두 마친 이들은 미술관 앞의, 바다가 보이는 정원으로 나가 홍콩 풍경을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다. 또 미술관 옥상의 야외데크도 가족및 어린이를 동반한 이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야외데크에는 일본계 미국 조각가 이사무 노구치의 붉은색 조형물이 곳곳에 설치돼 건축과 멋진 하모니를 보여준다.
[홍콩 뉴스핌] 홍콩 M+ 미술관의 '율리 지그 컬렉션 중국 아방가르드 40년 특별전'에 출품된 쩡판츠의 대표작 '마스크'. [사진=이영란 기자] 2023.04.25 art29@newspim.com |
미술에 관심과 애정이 있는 현대인이라면 M+는 꼭 가봐야 할 미술관으로 꼽힌다. 특히 M+가 작년말 야심차게 개막한 '쿠사마 야요이:1945 to Now'(5월14일까지)는 전시의 규모와 짜임새, 그리고 미술사적 연구와 의의 등에서 호평을 받으며 관람객을 빨아들이는 중이다. 쿠사마 야요이 회고전은 이미 미국, 유럽, 도쿄 등 세계 각국에서 여러 방식으로 무수히 개최되었으나 이번 전시는 여간해선 접하기 어려운 1940~50년대 초기 작품에서부터 미국 시기 퍼포먼스 작업과 설치미술,영상, 자료 등이 일제히 나와 주목된다.
이에따라 오늘의 쿠사마 작업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충분히 가늠해볼 수 있어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쿠사마 야요이의 예술세계를 명료하고 깊이있게 이해하게 한다. 학예팀은 일본 내 여러 재단, 미술관, 개인소장자에서부터 유럽과 미국의 기관과 갤러리 등에서 주요 작품을 대여해 전시를 풍성하면서도 알차게 꾸몄다. 따라서 이미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전을 여러 번 관람했던 이들도 이번 M+의 회고전은 그 규모와 치밀성, 세련된 구성 및 디스플레이 등에 매료될 것으로 보인다.
[홍콩 뉴스핌] 미국의 미디어 아티스트 비플(Beeple)의 4채널 영상 작품 'Human One'. 홍콩 M+가 기획한 이 특별전은 오는 6월 11일까지 계속된다. [사진=M+] 2023.04.26 art29@newspim.com |
관람객은 비단 아시아의 쿠사마 팬 뿐만이 아니라 전세계에서 몰려들고 있다. 영국 런던에서 일부러 이 전시를 보기 위해 친구들과 M+를 찾았다는 앤 스콧은 "홍콩까지 전시를 보러 가느냐고 고개를 갸웃했던 친구들이 M+의 수준과 규모에 모두 놀라며 환호했다. 쿠사마 야요이 전시가 특히 좋았고, 율리 시그가 기증한 차이나 아방가르드 작품으로 이뤄진 컬렉션 전시도 좋았다. 또한 미술관 건축이 압도적이고 미술관 안팎으로 쉼터 등도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앞으로도 홍콩 M+를 기회 닿는대로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M+에서는 아시아 현대미술가들의 다양한 작업을 한데 모은 기획전 '홍콩:Here & Beyond'(6월11일까지)와 미국의 미디어 아티스트 비플(Beeple)의 4채널 영상작품 'Human One'을 선보이는 특별전(6월11일까지)도 열고 있다. 첨단 테크놀로지와 예술이 절묘하게 결합된 'Human One'은 비플의 앞서가는 작가적 역량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비플은 지난 2021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디지털 작품 'Everydays:The First 5000 Days'가 NFT(대체불가토큰) 아트로는 최고가인 6934만달러(약 777억원)에 낙찰돼 단박에 스타작가 반열에 오른바 있다.
[홍콩 뉴스핌] 세계 3대 경매사 중 하나인 필립스는 홍콩 서구룡문화지구에 새 홍콩 사옥을 건립했다. M+미술관과 바로 붙어 있어 함께 둘러보기 좋은 코스다. 필립스 사옥 또한 스위스 건축듀오 헤르조그 앤 드뫼롱이 설계했다. [사진=이영란 기자] 2023.04.25 art29@newspim.com |
한편 세계 3위의 미술품경매사인 Phillips(필립스)는 새로운 아시아 본사를 M+ 미술관 바로 옆에 신축했다. 필립스 홍콩은 이에따라 M+를 찾았던 관람객들을 자연스럽게 빨아들이며 서구룡문화지구의 또다른 아트 스팟으로 부상 중이다. 서구룡지구(WKCD)에는 M+미술관 외에도 홍콩 고궁박물관 등 다수의 아트센터와 뮤지엄이 자리잡고 있어 하루 코스로 즐기기에 적당하다.
[홍콩 뉴스핌] 서구룡지구의 홍콩 고궁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까르띠에와 여성 전에 출품된 작품, [ ©까르띠에, 홍콩 고궁박물관] 2023.04.28 art29@newspim.com |
이중 홍콩 고궁박물관 (Hong Kong Palace Museum)에서는 럭셔리 브랜드 까르띠에와 협업해 기획한 '까르띠에와 여성(Cartier and Women)'전이 열리고 있다. 고궁박물관 8전시실에서 개최되고 있는 이 특별전은 까르띠에 역사 중 여성 고유의 역할과 영향력에 촛점을 맞췄다. 까르띠에가 제작한 300여 점의 작품으로 구성됐으며, 19세기부터 오늘에 이르는 희귀한 주얼리와 타임피스, 오브제, 액세서리를 만날 수 있다. 전시는 8월 14일까지.
[홍콩 뉴스핌] 홍콩 도심에 새로 들어선 H퀸즈 빌딩. 페이스갤러리 등 글로벌 미술계 정상급 화랑 6곳이 들어선 아트빌딩이다. [사진=이영란 기자] 2023.04.25 art29@newspim.com |
▶럭셔리 '아트빌딩' H퀸즈, 힙한 스폿으로 부상
홍콩 도심의 퀸즈로드 80번가에 새로 들어선 럭셔리 빌딩 H Queens(퀸즈)에는 세계적인 화랑들이 앞다퉈 입점했다. 이름만 들어도 고개가 절로 끄떡여지는 톱 갤러리들이 센트럴에서도 가장 금싸라기 빌딩에 일제히 둥지를 틀자, 이 건물은 홍콩을 찾은 글로벌 유명 아트컬렉터와 미술애호가들의 필수 방문코스가 됐다.
건축가 윌리암 림이 디자인한 이 건물은 지하 2층, 지상 17층으로 모두 6개의 글로벌 톱 갤러리가 입점했다. 17층에는 건축가 윌리암 림의 쇼룸과 오피스가 들어섰다. 5,6층에는 미국의 떠오르는 슈퍼 갤러리인 데이비드 즈워너가 입점했고, 12층에는 세계 정상의 갤러리인 미국의 페이스 갤러리가 자리잡았다. 15,16층에는 세계 미술계에서 영향력 1위 화랑으로 꼽히는 스위스의 하우저앤워스가 복층형으로 화랑을 꾸몄다. H퀸즈에 전시장을 조성한 글로벌 메가 갤러리들은 명문화랑답게 수준 높은 기획전을 이어가고 있다.
[홍콩 뉴스핌] 홍콩 센트럴 지역에 새로 지어진 H퀸즈 빌딩 15,16층에는 스위스의 다국적 화랑 히우저앤워스의 홍콩 지점이 조성됐다. 사진은 하우저앤워스가 기획한 라시드 존슨(미국) 개인전 전경. [사진=이영란 기자] 2023.04.25 art29@newspim.com |
H퀸즈의 10층에는 중국을 대표하는 화랑인 탕 컨템포라리 아트가, 7,8층에는 홍콩과 일본을 본거지로 하는 화이트스톤 갤러리가 입점했다. 9층에는 HART갤러리가 입점했다. 이 건물이 처음 오픈했을 당시 한국의 서울옥션도 홍콩 전시장을 꾸민바 있다. 서울옥션은 코로나19 봉쇄정책이 시행되자 홍콩 사무소를 폐쇄했다.
이밖에 홍콩 센트럴역 바로 인근의 '최고의 아트빌딩'이었던 페더빌딩은 그 유명세를 H퀸즈에 내주고 현재는 미국의 메가화랑인 가고시안갤러리와 홍콩의 펄램갤러리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두 화랑은 수준 높은 기획전을 꾸준히 개최 중이다. 페더빌딩 인근에는 미국의 LGDR갤러리의 홍콩 지점도 있어 함께 둘러보기 좋다.
[홍콩 뉴스핌] 홍콩 도심에는 세계적 아티스트들의 조형물이 곳곳에 설치돼 거리에서도 얼마든지 예술 감상을 할 수 있다. 사진은 타이완의 스타 조각가 주밍의 작품 아래서 한 홍콩 시민이 커피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는 모습. [사진=이영란 기자] 2023.04.26 art29@newspim.com |
홍콩의 정세 불안과 통제 등으로 한동안 암울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던 홍콩의 아트마켓은 회복세로 돌아섰다. 글로벌 리딩 갤러리 뿐 아니라, 홍콩에는 신설 갤러리가 계속 생겨나고 있다. 홍콩 아트갤러리협회에 따르면 회원 갤러리수가 2021년 49개에서 지난해 62개로 증가했다. 비회원 화랑까지 포함할 경우 80개가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여기에 세계 정상의 예술품경매사인 크리스티와 소더비가 홍콩에 새로운 사무소를 조성하거나 신사옥 건립을 추진 중이어서 홍콩은 아시아 예술시장의 메카로서 그 입지가 여전히 튼실함을 입증하고 있다.
이같은 홍콩 아트마켓의 견조함의 요인으로는 새로운 MZ세대 컬렉터와 신흥 부호 컬렉터의 등장이 꼽힌다. 여기에 부동산 재벌이자 슈퍼컬렉터인 애드리안 청의 K11 Musea같은 아트센터를 비롯해 새로운 컨셉의 예술기관과 재단이 속속 생겨나면서 더 많은 수요가 창출되는 것도 홍콩 예술계를 활기차게 만들고 있다. 그 활기와 에너지를 즐기며 뮤지엄투어, 갤러리투어에 나서려는 각국 여행자들이 다시 홍콩을 찾고 있다. 그 중심에 바로 M+ 미술관과 아트빌딩 H Queens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