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강명연 기자 = 전세사기 피해 구제 방안으로 거론되는 보증금반환채권 매입이 재정 투입과는 거리가 멀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특별법에 포함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보증금이 선순위라 경매를 통해 임차인들이 보증금을 회수할 수 있지만 경매 절차를 진행할 수 없는 서울 화곡동 '김대성 사건' 사례에 대해 집단적으로 절차를 해소해주자는 것이다. 선순위 채권이 있어 사실상 보증금을 돌려받기 어려운 인천 미추홀구 사례까지 보증금을 구제한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게 시민단체의 주장이다.
아울러 의도적인 전세사기와 집값 하락에 따른 역전세 피해를 구분해 지원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증금 일부를 회수할 수 있음에도 제도적 문제로 막혀 있거나 당장 거리로 내몰릴 위기에 처한 피해자의 주거 문제를 해소하되 역전세 우려가 커지는 문제에 대해서는 민간임대사업자 제도 강화 등 별도의 보완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다만 사회적 재난으로 규정해 보증금 일부를 재정으로 지원하는 방안 등은 추가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24일 오전 인천 부평구 인천 전세피해지원센터에서 열린 전세피해 대책 관련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정일구 기자] |
◆ 63억 세금채권으로 묶인 '김대성 사건' 등 구제 목적…"미추홀구 대상 아냐"
26일 정부와 국회 등에 따르면 야당과 시민단체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보증금반환채권을 매입하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사기 피해를 국가가 떠안을 수 없다는 여당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는 지적이다. 캠코가 채권의 가치보다 비싸게 사서 재정으로 보증금을 보전해주는 게 아니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앞서 원 장관은 "사기 피해금액을 국가가 먼저 대납하고 회수가 되든 말든 떠안으라고 하면 결국 국가가 메꿔주라는 것"이라며 이런 선례를 남길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캠코의 보증금채권 매입은 경매를 진행하지 못해 보증금을 못받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라는 설명이다. 1139채의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채 사망한 강서구 '김대성 사건' 사례가 대표적이다.
해당 사건의 경우 집주인의 종합부동산세 체납 세금 63억원이 선순위로 잡혀 있어 경매 절차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세금 추징 절차상 경매가 진행되는 순서대로 낙찰액 전부를 과세당국이 회수하고 체납 세금이 모두 해소되는 경매 건부터 채권자들이 순서대로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는 구조다. 강서구 사건의 경우 은행 등 선순위 채권이 없음에도 경매가 우선 진행되는 상당수 세입자들이 보증금을 회수할 수 없게 된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는 방안으로 보증금채권 매입 필요성이 거론됐다는 주장이다. 캠코가 부실채권을 매입하는 가격 수준에서 보증금채권을 매입하고 경매를 진행해 체납 세금을 해소한 뒤 채권을 회수하는 방식이다. 체납세금 63억원을 세입자 보증금 비율에 맞춰 안분(按分)해달라고 피해자들이 요구해왔지만 실행이 안되고 있어 캠코의 채권 매입까지 대안으로 나왔다.
문제는 캠코가 보증금채권을 얼마에 매수하는지다. 채권 매입을 요구하는 측은 캠코가 부실채권을 매입하는 방식을 그대로 적용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경매를 통해 회수할 수 있는 만큼만 가격을 책정하라는 의미다. 캠코가 손해를 볼 우려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사후 정산 방식을 적용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사후 정산방식은 캠코가 채권을 양도받아 조세채권을 상환한 뒤 남은 금액을 세입자에게 나눠주는 것이다. 대부분의 세입자가 선순위 채권자인 강서구 사건의 경우 개인이 경매를 통해 보증금 일부를 돌려받으면 되지만 조세채권으로 진행이 불가능한 문제가 있어 집단적으로 구제해주자는 취지다. 국회는 최근 지방세(재산세)보다 임차인의 보증금을 우선변제해주는 내용의 법안 개정안을 여야합의로 심의한 바 있다. 개정안은 27일 국회 본회의 의결을 기다리고 있지만 우선변제권 부여 기준이 낮아 대부분의 세입자들이 적용받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미추홀구 사건은 채권 매입의 구제 대상이 아니다. 경매에 들어가도 선순위 채권으로 인해 보증금을 거의 돌려받을 수 없어 보증금채권의 가치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논의 테이블에서 거론되는 대책으로는 해당 피해자들의 보증금을 구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신 정부안 대로 우선매수청구권을 부여해 적은 금액으로 피해 주택을 소유하도록 하거나 한국토지주택공사(LH) 공공매입을 통해 주거권을 보장하는 수준이 최선이다.
이런 내용의 법안은 더불어민주당 조오섭 의원과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발의한 상태다. 심 의원안은 채권 가격을 보증금의 절반 이상으로 책정하도록 했지만 세금으로 피해금 지원 등의 지적 우려가 있어 실현 가능성이 낮다. 현재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과 별도로 당정은 우선매수권 부여, LH 공공매입 등을 포함한 특별법을 발의할 예정이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임대인에 대한 조세채권을 임대인이 보유한 모든 부동산에 고르게 배분하는 방안이 추진돼 화곡동 사건이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임차인 보증금 비율에 맞춰 조세채권이 배분되지만 1139채 평균을 기준으로 600만원이 안되는 규모여서 보증금의 상당부분을 돌려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 사후정산 도입 필요성도…"민간임대제도 악용 용인, 규제 강화해야"
다만 일각에서는 전세사기 문제를 사회적 재난으로 규정해 피해 보증금 일부를 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택임대차법상 우선변제권을 확대하는 방식이다. 임대차법 시행령에 따르면 서울은 5500만원, 과밀억제권역 4800만원, 기타 광역시 2800만원 수준이다. 현재 소액 임차인에 한해 우선변제권을 통해 낙찰액을 우선 보장받도록 한 것을 확대하자는 취지다. 범죄수익이나 사기범의 은닉 재산을 몰수해 사후 지원하는 방안 등도 거론된다.
이런 피해를 보상하라는 요구는 전세사기와 역전세 확산이 부실한 정부 정책의 결과라는 주장에 따른 것이다. 임대사업을 수행할 여력이 없는 이들이 수천채의 주택을 소유하는 것을 방치하고 전세대출과 보증보험을 통해 이런 사기를 오히려 지원하는 꼴이 됐다는 이유에서다. 보증보험 기준을 강화하고 전세가격이 매매가격을 넘지 않는 수준으로 관리하는 동시에 민간임대사업자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보증보험을 강화하면 임차인은 손해보지 않을 수 있지만 정부가 무자본 갭투자 위험을 책임지도록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며 "집값의 70% 이상을 보증하지 않도록 하고 전세 과잉대출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민간임대제도는 정부가 집값이 오르는 데 배팅한 사람을 사업하도록 용인한 것"이라며 "문제가 생기면 집을 팔아 돌려주면 된다고 생각했겠지만 집값이 떨어지는 순간 집을 팔 수 없고 보증금 사고가 발생하는 만큼 월세를 통해 자기자본을 일부 투입하고 최소한 세금 등 비용을 감당하는 수준의 현금흐름이 확보되도록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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