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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9살 '승아 양 참변' 한달

기사등록 : 2023-05-0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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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조재완 가자 = "술에 취한 사람이 차도로 자꾸 뛰어든다는 112신고가 접수돼 지구대가 출동했어요. 경찰이 가보니 웬 남성이 정말 비틀비틀 '갈 지(之)' 자로 걸으며 차도를 가로지르고 있는거죠. 인도 위로 끌어올려 놓으면 데려오기 무섭게 곧바로 차도로 다시 내려가요. 한참 그렇게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경찰서로 데려왔어요. 이 남성은 보호대상일까요, 잠재적 가해자일까요."

최근 한 경찰관이 기자에게 주취자 관련 업무 고충을 털어놓으며 전한 일화다. 이 남성을 보호대상으로 봐야 할까, 잠재적 가해자로 봐야 할까. 도로 위로 뛰어든 그는 보호대상인 동시에 차량 운전자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시한폭탄'이기도 하다. 이처럼 매일 밤 도심을 활보하는 시한폭탄은 2000개가 넘는다. 

경찰청이 집계한 지난해 주취자 관련 112신고건수 96만6392건을 365일로 단순 나눔하면 하루 평균 약 2647건의 주취자 신고가 접수되는 셈이다. 이는 전년 대비 23% 늘어난 수치이기도 하다. 최근 코로나19 방역 지침이 완화되면서 주취자 관련 신고도 다시 급증하는 모양새다. 같은 기간 전체 신고건수 가운데 주취자 관련건이 차지하는 비중은 5.1%로 이 역시 전년(4.2%) 대비 높아진 수치다.

지난달 대전에서 발생한 스쿨존 음주운전 사고가 음주문화에 또 한 번 경종을 울렸지만 실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다. 지난달 서울 영등포에선 길을 걷던 주취자가 정차 중인 차량을 절취해 한밤 중 '광란의 고속질주' 행각을 벌이는가 하면, 최근 어린이날 연휴 음주 상태로 도심을 20km나 내달린 운전자가 도주 시도까지 벌인 것으로 알려져 사회적 공분을 샀다. 하루가 멀다하고 반복되는 대형 음주사고들을 다 따라잡기도 어려울 지경이다. 

문제는 '폭탄이 터질 때까지' 이들을 내버려 둘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주취자를 제재가 아닌 보호 대상으로 바라보는 게 현행법의 기본 관점이다. 타인을 위협하는 행동을 하기 전까진 응급구호가 필요한 이로 여겨진다. 관련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 대응이 대부분 주취자를 귀가 조치시키는 데 그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들 주취자가 운전대를 잡고 타인의 생명을 위협하는 일은 부지불식간에 벌어진다. 

일선 현장선 주취자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 시선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자신의 행동을 책임지지 못할 만큼 과도한 음주를 하는 주취자들에겐 과태료에 준하는 페널티를 줘야 한다는 주장도 심심찮게 들린다.  

만취 운전자로 인해 고(故) 배승아 양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지 한 달이 지났다. 이 사고를 계기로 음주 사고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진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주취자에 대한 우리 사회 인식이 바뀌지 않는 이상, 매일 밤 활보하는 수천개의 시한폭탄으로 인해 또 다른 소중한 목숨을 잃지 않을까 염려된다. 

chojw@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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