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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한여름 오면 어떨지 캄캄"...때이른 폭염에 신음하는 쪽방촌

기사등록 : 2023-06-19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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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신정인 기자 = "뭘 해먹기가 겁나죠. 부탄가스로 라면이라도 끓이려고 하면 열기가 확 오르니까 땀이 쏟아지고..."

60대 이상이 대부분인 쪽방촌 주민들은 삼삼오오 무더위쉼터나 평상에 모여 막걸리와 얼음물로 목을 축이며 이같이 말했다.

[서울=뉴스핌] 신정인 기자 = 폭염특보가 내린 19일 오전 서울 중구 남대문쪽방촌. 더위에 지친 한 주민이 상의를 탈의한 채 평상에 누워있다. 2023.06.19 allpass@newspim.com

올해 첫 폭염특보가 발효 중인 19일 오전부터 서울 중구 남대문로5가 쪽방촌에는 언덕 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이번 폭염주의보는 지난보다 일주일 앞서 발령됐으며 낮 기온도 평년보다 5도 가량 높았다.

이날 오전 10시30분쯤 실외 온도는 32도. 소방대원들은 골목마다 살수차로 도로에 물을 뿌리며 지열을 낮췄다.

집 앞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강홍열(68) 씨는 "방에 창문이 없어서 선풍기를 틀어놓고 방문을 열어둔다"며 "그런데 계속 바람을 쐬다보면 목이랑 허리가 아파서 차라리 이렇게 나와서 앉아있는다"고 말했다.

무더운 날씨에 기운을 내야하지만 고물가에 쪽방촌 주민들은 끼니조차 챙겨먹기 힘든 실정이라고 하소연했다. 강씨는 "요즘은 분식도 한 끼에 만 원은 넘지 않냐. 요리를 자주 해먹는데 음식이 금방 쉬니까 하루 밖에 못 먹는다"며 "지금도 이렇게 더운데 6월 말이 되면 어떨지 벌써 걱정"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강씨의 방처럼 쪽방촌은 대개 1.5평 남짓한 좁은 방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형태다. 이에 창문이 없는 경우가 많아 환기조차 힘들었다. 어둡고 습한 탓에 건물 곳곳엔 곰팡이가 피었고 입구 주변까지 퀴퀴한 냄새가 코 끝을 찔렀다.

[서울=뉴스핌] 신정인 기자 = 쪽방촌 주민이 방 안에서 선풍기 바람을 쐬며 교회 봉사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23.06.19 allpass@newspim.com

층마다 한 대씩 설치된 에어컨과 선풍기 몇 대만이 유일한 냉방시설이었다. 하지만 십여 가구에 이르는 한층의 주민들의 더위를 식히기엔 부족하다는 반응도 나왔다. 특히 한 층에 한 개뿐인 화장실로 주민들은 등목과 샤워 등으로 더위를 참기도 여의치 않았다.

주민 표영배(71) 씨는 "화장실이 층마다 한 개 밖에 없고 비좁아 땀을 흘려도 자주 씻진 못한다"며 "불편한 게 한 두개가 아니지만 살다보니 어느정도 적응도 되는 것 같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장기 거주한 고령자나 기저질환자들은 폭염에 더욱 취약해보였다. 남대문쪽방상담소(상담소)에 따르면 이곳에 거주 중인 210여명 중 80% 이상이 우울증·당뇨·고지혈증·고혈압 등 기저질환자로, 암환자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해 폐암 수술을 받았다는 표씨는 "기초수급비를 80만원 정도 받는데 그 중 절반은 비급여 약 값으로 나간다"며 "정부 혜택도 우리같은 늙은이들은 절차가 복잡해서 신청도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서울=뉴스핌] 신정인 기자 = 소방대원들이 쪽방촌 골목 바닥에 물을 뿌려 지열을 낮추고 있다. 2023.06.19 allpass@newspim.com

한편 때이른 폭염에 대비해 상담소에선 에어컨 필터 청소와 현장 점검에 한창이었다. 상담소 직원들은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에어컨과 쿨링포그 가동 상황을 확인하고 주민들의 몸상태를 묻기도 했다.

이대영 남대문쪽방상담소 과장은 "폭염 경보가 내리면 응급진료소가 차려져 주민들을 직각 대응할 수 있게 조치 중"이라며 "특히 고령기저질환자들은 병원 진료 날짜, 약 복용 시간 등 주기적으로 확인하고 상담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18일 발령된 폭염특보는 이날 오후 절정에 치달을 것으로 예보됐다. 기상청은 올해 폭염 일수가 10~14일로 평년과 비슷하거나 많은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서울시에선 올해 무더위 취약가구에 냉방비를 5만원씩 긴급 지원하고, 목욕과 잠자리로 이용할 수 있는 쪽방촌 '밤더위 대피소'도 운영할 예정이다.

allpass@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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