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스핌] 김명은 기자 = 정부가 연초마다 논란이 되고 있는 맥주와 탁주(막걸리) 종량세 물가연동제를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최근 고물가 상황이 지속되면서 매년 4월 주류 가격 인상을 둘러싸고 업계와의 신경전이 계속될 것을 우려해 근본적인 제도 개선에 나선 것이다.
27일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현재 맥주와 탁주에 적용되는 종량세 물가연동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재부는 현재 종량세 물가상승률 연동 비율을 조정하는 것에서부터 연동제 자체를 폐지하는 방안까지 폭넓게 검토 중이다. 세부적인 내용은 내달 발표하는 내년도 세법개정안에 담길 예정이다.
◆ 수입맥주와의 역차별 문제로 52년만에 바뀐 주세
종량세(從量稅)는 주류의 양에 비례해 세금을 매기는 방식이다. 맥주와 탁주의 과세 체계는 원래 가격에 기반한 종가세(從價稅)였으나 2020년부터 종량세로 전환됐다. 1968년 이후 줄곧 종가세를 유지해왔으나 52년만에 주세 부과 기준이 출고량 기반의 종량세로 바뀌었다. 국내 맥주업계가 꾸준히 제기해온 수입맥주와의 역차별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였다.
종가세는 제조업체가 제품을 출고하는 시점의 주류 가격, 또는 수입업자가 수입 신고하는 시점의 주류 가격에 술 종류별 세율을 곱해 세금을 매긴다.
이 방식에 따르면 국내 제조맥주의 경우 제품 출고 시점에 제조원가, 판매관리비, 매출이익 등을 모두 포함한 가격이 과세표준이 되지만, 수입맥주는 수입가격과 관세만 포함된 가격이 과세표준으로 잡힌다. 이 때문에 국산맥주가 수입맥주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4캔에 만원 편의점 수입맥주'의 등장 배경이기도 했다.
정부는 맥주와 탁주 종량세 시행 첫해에는 최근 2년간의 출고량과 주세액을 고려해 맥주에는 리터당 830.3원, 탁주에는 리터당 41.7원의 세금을 매겼다.
그 다음해부터는 매월 3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 직전연도 소비자물가상승률을 반영하는 물가연동제를 적용하기로 했다. 원재료 가격 상승분이 세금에 반영되는 소주 등 종가세 적용의 다른 주종과의 과세형평을 고려한 조치다.
이에 따라 2021년에는 2020년 연간 소비자물가상승률 0.5%가 반영돼 맥주에는 리터당 4.1원 오른 834.4원, 탁주에는 리터당 0.2원 오른 41.9원의 세금이 붙었다. 종량세는 금액이 세율이 되는 구조다.
논란은 고물가 상황이 벌어지면서 시작됐다. 지난 2021년 소비자물가상승률이 10년 만에 가장 높은 2.5%를 기록하면서 지난해부터 세율이 큰 폭으로 뛴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부터는 세율 적용 기간을 과세표준 신고시점(매 분기 말)에 맞춰 매년 4월부터 다음해 3월까지 적용하기로 했다.
◆ 업계 "매년 초, 주류가격 상승 여부 국민 관심 부담"
현재 맥주와 탁주 종량세율은 직전연도 소비자물가상승률의 70~130%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고 있다.
지난해 연간 소비자물가상승률이 5.1%를 기록하자 정부는 가장 낮은 70%를 적용했다.
이에 따라 올해 맥주에 대한 세율은 리터당 30.5원 오른 885.7원, 탁주는 1.5원 오른 44.4원으로 결정됐다.
맥주를 예로 들면 지난해 소비자물가상승률(5.1%)의 70%인 3.57%를 지난해 세율인 855.2원에 곱한 값인 30.5원만큼 세율이 올라간 것이다.
[서울=뉴스핌] 김학선 기자 =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 겸 수출투자대책회의를 주재하며 발언하고 있다. 2023.06.21 yooksa@newspim.com |
이처럼 높은 물가상승률로 인해 물가연동제를 적용하는 종량세 인상폭이 커지자 정부는 매년 4월이 되기 전에 주류 가격 인상을 우려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추경호 부총리가 지난 2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주류 업계의 가격 인상 자제 발언을 한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추 부총리는 한 발 더 나아가 지난 3월 기재부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맥주·탁주에 종량세를 도입하면서 물가 연동으로 과세하는 부분에 관해서는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경기 사이클에 따라 물가상승률도 언젠가 변화하는데 현재의 고물가 상황만 보고 제도에 손을 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주류 업계는 정부의 구체적인 안을 봐야 판단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한 주류 업체 관계자는 "세율을 언제까지고 그대로 둘 수는 없으므로 종량제 물가연동제 폐지 후 대안이 무엇이냐가 중요하다"면서 "조삼모사로 보일 수 있지만 어느 정도 기간을 두고 세율을 올리는 방식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연초마다 주류 가격 인상 여부가 전국민적 관심사가 되는 것은 정부와 업계 모두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면서 "적절한 대안을 찾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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