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성화 기자 = 고(故) 천경자 화백이 위작이라고 주장한 '미인도'를 진품이라고 결론 낸 검찰 수사가 위법하거나 부당하지 않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14단독 최형준 판사는 21일 천 화백의 자녀 김정희 미국 몽고메리대 교수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미인도.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제공] |
천 화백은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이 기획전시를 통해 공개한 미인도가 자신의 작품이 아닌 위작(僞作)이라고 주장했다. 미인도는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소유하다가 1979년 10·26 사태 이후 정부에 압류돼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었고 미술관 측이 진품이라고 맞서면서 논란은 계속됐다.
김 교수는 천 화백이 별세한 다음해인 2016년 4월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를 사자명예훼손 및 허위공문서 작성 등 혐의로 고소했다.
서울중앙지검은 5개월 간 소장이력 확인과 과학감정, 전문가 조사 등을 거쳐 같은 해 12월 미인도가 진품이라는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들을 무혐의 처분했다. 당시 정준모 전 학예실장만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으나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김 교수는 검찰이 불법적인 수사로 미인도가 진품이라는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천 화백과 유족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2019년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 1억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미인도가 위작이라는 의견을 낸 감정위원을 회유해 진품으로 입장으로 바꾸도록 하고 감정에 편향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허위사실을 고지했다는 것이다.
해당 감정위원은 지난해 6월 법정에 증인으로 나와 당시 검사가 '이 작품 그냥 진품으로 보면 어때요'라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김 교수 측은 검찰 수사관이 또 다른 감정위원에게 '(천 화백의) 둘째 딸이 미인도를 진품으로 인정하고 돌아갔다'고 말한 녹취록도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했다.
그러나 최 판사는 "감정위원의 증언은 이 사건 수사로부터 약 6년이 지난 후에 이뤄져 명확한 진술의 내용을 기억해 내기는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고 다른 감정위원에게 통화한 수사관도 특정되지 않는다"며 "검사가 감정절차에 부당하게 개입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김 교수 측은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천 화백의 생전 진술, 미인도의 진품 가능성이 0.00002%라고 회신한 프랑스 감정팀의 감정결과 등을 왜곡하거나 배제했다고도 주장했다.
최 판사는 검찰이 감정의뢰 뿐만 아니라 대검찰청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대한 디지털·컴퓨터 영상분석, DNA분석, 필적감정 및 전문가 안목감정 등을 함께 진행했고 그 결과 미인도가 진품이라는 점에 부합하는 감정 결과도 다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서로 배치되는 자료가 있을 경우 수사기관이 어떤 자료를 취신할지 여부는 각 자료의 근거와 배경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결정하게 된다"며 "수사기관은 프랑스 감정팀이 사용한 계산식을 진품에 이견이 없는 망인의 다른 작품에 대입한 결과 진품 가능성이 약 4%로 계산된 점 등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수사기관이 수사 과정에서 불법행위를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김 교수 측의 청구를 기각했다.
김 교수 측을 대리한 이호영 지음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선고 결과에 대해 "검찰의 불법행위를 입증할 직접 증거 확보가 어려워 쉽지 않은 소송이었다"라며 "판결문을 검토해 유족과 상의 후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미국에 거주 중인 김 교수도 입장문을 통해 "비록 법적인 구원은 받지 못했지만 어머니의 타협 없는 예술 정신과 그의 억울함에 대해 대다수 국민들이 공감하고 계신다"며 "저는 자식으로서 할 일을 했을 뿐이므로 후회는 없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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