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스핌] 성소의 기자 = 전기차 수요가 둔화하면서 구매보조금이 남아돌자 무공해차 보급 관련 내년 예산도 소폭 삭감될 전망이다.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가 40%로 상향된 이후 이 사업 예산이 전년 대비 줄어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는 내년 예산을 소폭 줄이는 것은 맞지만 큰 틀의 정책 목표와 방향에는 변함이 없다는 입장이다.
◆ 구매보조금 남아돌아…전기차 보급사업 속도 조절
21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환경부는 재정당국에 무공해차 보급 사업 예산을 올해보다 소폭 줄이는 안을 제출했고, 이를 바탕으로 재정당국과 내년도 예산안을 협의 중이다.
이 안은 재정당국과 협의를 거쳐 이달 말 확정된다. 정부안이 국회 심의를 거쳐 최종 확정되면 내년 무공해차 보급 사업 예산은 올해보다 소폭 줄어들 전망이다.
테슬라 충전 시설인 수퍼차저에서 테슬라 모델S가 충전 중인 모습. (사진=AFP 연합뉴스) |
올해 무공해차 보급사업에 편성된 확정예산은 2조1746억원으로 감액 규모를 5% 안팎으로 가정하면 내년 예산 규모는 2조원 이내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전기승용차 보급 관련 예산이 대폭 깎일 것으로 관측된다. 무공해차 보급 사업 가운데 전기승용차 보급에 편성된 예산만 1조5412억원(국비)으로 수소차(6334억원)의 약 두배에 달한다.
무공해차 사업 예산이 전년보다 줄어드는 것은 정부가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상향 조정한 2021년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환경부는 NDC 상향에 맞춰 2030년까지 무공해차 보급 목표를 기존 300만대에서 450만대로 올려 잡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관련 예산을 늘려왔다.
최근 4년 간 무공해차 보급사업의 연도별 재정규모를 보면 2020년 1조5810억원, 2021년 1조3897억원, 2022년 2조1828억원, 2023년 2조7402억원 등으로 매년 확대됐다.
전년도 추경안 대비 예산 증가율은 2020년 78.1%, 2021년 31.4%, 2022년 57%, 2023년(예산안 기준) 25.5% 등으로 매년 두자릿수의 높은 증가율을 기록해왔다.
환경부는 올해도 마찬가지로 전기차와 수소차 지원 물량을 작년보다 확대해 예산을 편성했다. 전기차의 경우 전기승용차 21만5200대, 전기승합차 3000대, 전기화물차 5만5100대 지원을 목표로 잡았다.
◆ 집행률 부진에 예산삭감 불가피…'450만대 보급' 목표는 유지
문제는 전기차 수요가 둔화하면서 지방자치단체에 내려 보내는 구매보조금 집행이 지지부진해졌다는 점이다.
환경부 무공해차 통합누리집에 따르면 올해 서울시에서 지원한 구매보조금을 통해 출고된 전기승용차는 현재까지 4213대로, 올해 목표 물량(1만3688대) 대비 30.8%에 불과하다.
그 밖에 대전시(14.5%), 인천시(25.1%), 경기 부천시(25.3%), 경기 안양시(26.4%), 대구시(34.2%) 경기 성남시(42.5%), 경기 의정부시(42.7%) 등 다수의 지자체의 보조금 소진율이 50%를 밑돌았다.
통상 이맘 때쯤 연간 책정된 전기차 보조금이 80% 정도 소진되고, 10~11월쯤 종료되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미진한 속도다.
실제 환경부가 수시로 실시하는 지자체별 전기차 출고 물량에 관한 수요 조사에서도 일부 지자체들의 구매보조금 하향 조정 요청이 잇따랐던 것으로 전해졌다.
환경부 관계자는 "전기승용차 보급 물량은 작년보다 많아졌지만 증가 속도는 예전보다 더뎌졌다"며 "당초 예상했던 보급 속도보다 느린 편"이라고 설명했다.
전기차 수요가 둔화한 데는 전기차 충전료 인상과 충전 인프라 미비, 화재 위험성 부각, 전세계적 수요 부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매년 줄어드는 정부의 구매보조금도 전기차 구매 매력을 떨어뜨리는 요소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환경부 내부적으로도 충전사업자 규제 완화 등 무공해차 보급 속도를 끌어올리기 위한 방안을 다각적으로 고민 중이지만, 부진한 보조금 집행률을 감안해 예산 감액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다만 2030년까지 무공해차 450만대를 보급하겠다는 정책 목표는 그대로 유지한다고 환경부는 설명했다. 예산 삭감폭 역시 5% 안팎으로 미미한 수준에 그쳐 정책적으로 큰 틀의 변화는 없다고 전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큰 폭의 변화는 없을 것"이라며 "2030년까지 450만대 보급 목표는 그대로 유지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전기차 보급 관련 예산이 삭감되면 정부 스스로 전기차 수요 부진을 인정한 꼴이 돼버려, 시장에 혼선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한다.
예컨대 전기차 충전 인프라 사업을 고민하던 주유소 사업자들 입장에선 사업 전환을 더욱 망설일 수 있다. 그동안 의욕적으로 무공해차 보급을 늘려온 환경부가 스스로 탄소중립 정책에 제동을 건 것으로 오인할 수 있는 것이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폭스바겐, 벤츠, BMW 등 유럽 제작사들은 원래 전기차 전환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전기차 물량 확대에 대한) 고민이 많이 생길 것"이라며 "주유소를 충전기로 바꾸는 사업 등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soy2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