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똑똑하게 직장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많은 근로자가 직장생활의 기본적인 부분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채용내정, 인사명령과 징계, 근로계약 종료에 있어 꼭 알아야 할 내용을 소개한다.
올해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시장에 첫발을 디딘 조카가 오랜만에 내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변호사 삼촌, 좋은 소식! 나 취업했어. 면접관님이 다른 회사 지원하지 말고 기다리래." '면접관님이라...' 내 눈썹이 위로 곧추섰다. 이것은 뭔가 일이 잘못되어 감을 느낄 때 내가 곧잘 짓는 표정이었다. 특히 베테랑 변호사의 촉이 발동될 때. 즉시 나는 조카에게 놀러 오라고 답신을 보냈다. 창밖을 보니 당장이라도 비가 올 것처럼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었다.
다음날 늦은 저녁 조카가 내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왔다. 좋은 회사에 지원해서 꽤 들떠 보였다. 아직 합격통지서를 받지 않았지만, 면접관이었던 회사 부장님이 미리 축하한다면서 다른 회사에 지원하지 말고 기다리라고 했단다. '이렇게 들뜬 조카에게 찬물을 확 끼얹고 싶지는 않았지만, 나는 화가 난 척 언성을 높여 조카를 다그쳤다.
"야! 너 바보야? 그 말을 믿어? 얘, 얘 이거 큰일 나겠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조카에게 나는 틈도 주지 않고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야, 너 아직 합격한 것 아니야. 정신 차려! 그 부장이라는 사람이 그 회사 대표냐? 최종 인사권자냐고? 대표이사 직인 찍힌 합격통지서 받았어? 얘가, 얘가 헛똑똑이네. 이렇게 순진해서 어떡하니. 그러다가 너 당할 수 있어!"
조카의 표정은 억울함을 숨길 수 없었다.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닌데 내가 자기를 완전히 무시했다나 어쨌다나. 조카는 마음이 상해 내게 눈을 흘겼다. 나는 그런 조카를 아랑곳하지 않고 차분한 어조로 채용절차에 관한 설명을 시작했다.
"지금 너는 '채용내정'이라는 법률관계를 경험하고 있어. 채용내정이란 정식 채용(본채용)의 상당 기간 전에 채용할 자를 미리 결정해 두는 것을 말해. 예를 들어 회사가 학교 졸업예정자에 대해 졸업 후 채용하기로 미리 결정하는 것이 채용내정이야. 법적으로는 채용내정으로써 근로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보고 있어. 즉 채용내정이 되면 채용한 회사의 근로자 신분을 취득하게 돼. 이해 가니? 법률용어가 좀 낯설지?
좀 더 쉽게 설명해 줄게. 너 어떻게 그 회사에 지원했어? 회사 홈페이지 채용공고를 봤지? 법적으로 그 채용공고는 이런 뜻이야. '우리 회사 직원이 되지 않겠어요? 우리 회사와 근로계약을 한번 체결해 보지 않을래요? 그러고 싶다고 우리 회사에 당신의 마음을 전달해 보세요.' 즉 너를 꾀는 거야. 유인하는 거지. 그래서 '청약의 유인'이라고 불러. 법률용어로.
너, 좀 고민하다가 회사 홈페이지에서 입사지원서를 작성하고 '제출' 배너를 클릭했지? 이것은 법적으로 '나 당신과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싶습니다. 당신에게 이러한 나의 뜻을 전합니다'라는 뜻이야. 네가 계약하자고 '청약'을 한 것이지. '결혼해 줄래?'라고 '청혼'하는 것처럼 말이야.
그런데 지원자(청약자)가 너 하나뿐이겠어? 회사는 여러 지원자를 검토해서 자신의 근로자로 선발한 지원자(청약자)에게 '최종 합격통지서'를 보내. 이것은 법적으로 '우리 회사의 근로자가 되겠다는 당신의 청약에 승낙합니다.'라는 뜻이야. 이것으로써 너와 회사 간에 근로계약이 성립돼."
가만히 듣고 있던 조카가 말했다.
"삼촌, 그러면 나는 아직 합격통지서를 받지 못했으니까 그 회사의 근로자가 아닌 거네. 그럼, 면접관님의 말씀은 뭐야?"
나는 웃으며 말했다.
"뭐긴 뭐냐, 공수표지! 부도난 어음! 아무 효력도 없는 립서비스! 그러니까 빨리 다른 회사 면접도 봐. 합격통지서 받으면 어디 갈지 그때 결정하고."
그리고 나는 조카에게 어느 법무법인 노동팀에서 만든 소책자의 한 면을 펼쳐 보여주었다.
"이 봐요, 헛똑똑이 씨. 너처럼 면접관의 말만 믿고 마냥 기다리다가 다른 회사에 채용될 기회를 놓친 사례가 종종 있어. 말을 믿지 말고 회사의 공식 문서를 믿어요. 제발!"
조카는 환히 웃으며 말했다.
"삼촌 정말 고마워. 이래서 집안에 변호사가 하나쯤 있어야 해!"
※ 회사의 공식적인 최종 합격통지서를 받지 않았다면 아직 정식으로 채용된 것이 아닙니다. 회사의 대표가 아닌 전무, 상무, 부장 등의 다른 관리자의 채용에 관한 구두 약속은 아주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효력이 없으니 주의하세요.
글 김민표 부산지방노동위원회 상임위원(변호사)
※ [슬기로은 직장생활]은 <뉴스핌>이 중앙노동위원회와 제휴를 맺고 위원회가 분기별로 발간하는 계간지 <조정과 심판>에 담긴 직장생활 노하우 주요내용을 연재하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