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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김현영 기자 = 600억달러 규모로 예상되는 엑슨모빌(XOM)의 파이어니어 내추럴 리소시스(PXD) 인수 거래가 성사된다면 2010년 엑슨모빌이 XTO 에너지를 300억달러 넘게 주고 인수한 것을 뛰어넘는 블록버스터 거래가 될 전망이다.
대런 우즈 엑슨모빌 최고경영자(CEO)에 앞서 리 레이먼드 전 CEO는 1999년 모빌과의 합병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며 저유가 속에서 비용 절감형 슈퍼 메이저 석유기업의 시대를 열었다.
덕분에 2000년대 원자재 슈퍼사이클에 성공적으로 대비할 입지를 구축했다는 공도 인정받고 있다. 레이먼드 전 CEO의 공격적인 비용 절감과 효율성 향상 노력 속에 엑슨은 모빌 인수 후 10년이 채 지나지 않은 2008년, 당시 모든 미국 기업 중 역대 최대 이익을 달성했다.
대런 우즈 엑슨모빌 최고경영자(CEO) [사진=블룸버그] |
반면 렉스 틸러스 전 CEO의 2010년 XTO 에너지 인수는 시기가 부적절했던 사례로 꼽힌다. 미국 셰일가스 혁명이 정점을 찍으면서 이후 10년간 업계 수익률이 저조한 시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틸러스 전 CEO는 엑슨을 셰일가스 혁명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하려 XTO 에너지를 인수했지만, 가스 생산량 변화의 규모와 속도를 과소평가한 탓에 국내 시장 공급 과잉으로 가격 폭락의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이번 파이오니어 인수 거래는 XTO 때와 같은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적다고 S&P 글로벌의 라울 르블랑 수석 애널리스트는 전망한다. 파이어니어의 석유 및 가스 생산은 글로벌 시장과 잘 연계돼 있으며, 엑슨모빌은 이미 퍼미안 분지에 상당한 전문성을 보유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는 XTO를 인수할 당시에는 셰일가스 경험이 거의 없었던 것과 비교된다.
전기자동차, 배터리, 재생 에너지 부문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세계 석유 수요는 사상 최고치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현재 하루 약 1억배럴인 수요가 2028년에는 1억570만배럴로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애널리스트들은 이르면 2030년대 초에 수요가 정점에 달할 것으로 보기도 하지만, 이후 수요가 평형상태를 이룰지 아니면 급격히 감소할지는 미지수다.
당분간 화석 연료에 대한 수요가 꾸준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엑슨모빌은 석유·가스 투자를 이어갈 방침이다. 엑슨모빌은 이번 인수를 통해 미국 셰일 생산에서 확고한 입지를 다지고 2027년까지 퍼미안 분지에서 셰일오일 생산량을 하루 100만배럴까지 확장한다는 계획에 한 걸음 다가갈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전쟁 전까지 기후 변화의 주범으로 손가락질받았던 엑슨모빌을 포함한 메이저 석유 기업들은 지난해 에너지난 이후 새로운 유전 탐사와 생산 시설 확충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일이 수월해졌다.
앞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석유 업계가 터무니없이 막대한 이익을 거두고 있다"면서 "증산에 투자하지 않는 기업들은 초과 이익에 대해 더 많은 세금을 내야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유가 인상을 저지하기 위해 석유 생산을 늘리라는 주문이다.
이를 두고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정책에 밀려 수년간 석유·가스에 대한 투자를 줄이고 새로운 유전 탐사도 중단해야 했던 석유 기업들에게 생산을 늘릴 구실이 생겼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기후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각국 정부가 정책을 쏟아내는 사이 석유 기업들은 주머니가 두둑해도 생산 투자를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난해 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원유 가격이 급등하기 시작했고 뒤이은 에너지난 덕분에 이들 기업은 일부 '면죄부'를 얻게 됐다.
엑슨모빌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지정학적 위험에 대비해 아시아와 아프리카 자산을 대거 처분하는 대신 자국 내 셰일가스 지역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지난해 역대급 실적 이후 기존 유정의 생산성 하락 등으로 최근 실적이 악화되면서 새로운 자산 취득을 고려하게 됐다.
서드 브릿지에서 산업 재료 및 에너지 부문 글로벌 책임자를 맡고 있는 피터 맥널리는 "지난 4개 분기 동안 엑슨모빌의 미국 생산량은 실제로 마이너스 성장세를 기록했고, 이는 2018년 이후 볼 수 없었던 현상"이라고 지적하며 "더 많은 시추 장비와 인력을 추가해 유기적으로 생산량을 늘리는 것보다 다른 기업 인수를 통해 생산을 확대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킴머리지 에너지 인게이지먼트 파트너스의 마크 비비아노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엑슨모빌은 힘을 과시하고 있으며 누가 봐도 분명히 퍼미안 분지에서 800파운드(362kg)짜리 고릴라가 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어 "파이어니어는 지난 10년간 이날을 위해 포지셔닝해왔으며 스콧 셰필드 CEO는 회사의 마지막 챕터가 이렇게 쓰여지도록 경영권을 다시 잡았다"고 덧붙였다.
1997년 설립된 파이어니어 내추럴 리소시스는 퍼미안 분지에 기반해 성장한 셰일오일 생산기업으로, 창업자인 셰필드 회장은 올해 말 은퇴할 예정이다.
kimhyun01@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