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보
주요뉴스 문화

[대담]미술시장전문가 김순응 "내딸에겐 조각투자 안 권한다"②

기사등록 : 2023-11-07 06:00

※ 뉴스 공유하기

URL 복사완료

※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더 작게
  • 작게
  • 보통
  • 크게
  • 더 크게
소더비·크리스티가 왜 분할판매 안하는지 살펴야
미술품은 현금화 쉽지않고, 시장부침 무시못해
지속가능한 사업 아닐 경우 투자자들만 피해

[서울 뉴스핌]이영란 편집위원= 지난 1년간 전면 중단되었던 미술품 조각투자(분할구매)가 다시 재개될 전망입니다. 미술품 조각투자 플랫폼을 운영하는 다수의 업체들이 투자계약증권 발행을 위해 (금융감독원에 제출할) 증권신고서 수정·보완 작업에 돌입했습니다. 업계에서는 내년초에는 제도권 진입이 이뤄질 것으로 봅니다.

[서울 뉴스핌]이영란 기자=생존작가 중 가장 작품값이 비싼 작가인 데이비드 호크니(b.1937~)의 유화 '더 게이트'(2000년작). 올 5월 뉴욕 크리스티에서 열린 '비저너리:폴 앨런 컬렉션'경매에서 낮은 추정가의 2.5배에 달하는 1468만달러에 팔렸다. '폴 앨런이 생전에 아꼈던 그림'이란 화제성이 반영되기도 했으나, 호크니의 L.A 풍경화 중에서도 구도,색감이 뛰어나고 최고의 완성도를 지녔다고 평가받는 작품이다. [사진=크리스티] 2023.11.06 art29@newspim.com

이에 대해 미술시장 전문가인 김순응 씨(김순응아트컴퍼니 대표)가 뉴스핌에 긴급대담을 제안했습니다. 하나은행 자금본부장 출신으로 서울옥션과 케이옥션 대표를 역임하고, 현재 아트투자 어드바이저로 활동 중인 김순응 대표는 조각투자의 위험성을 경고합니다. 

김 대표는 미술품 조각투자를 '불가능에의 도전'이라며 강도높게 비판합니다. 플랫폼 운용업체들이 선전하는 것처럼 미술품의 가치산정과 미래예측이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겁니다. 그는 우리 미술시장에 애정이 많고, 건강하게 잘 성장하길 누구보다 원하지만, 조각투자는 '투자할만한 우수한 블루칩 확보'가 최대 관건이나 말처럼 쉽지 않다고 역설합니다. 투자메리트가 있는 최고의 작품들이 조각투자자들에게까지 가기란 하늘의 별따기라는 것입니다.

[서울 뉴스핌]이영란 기자=미술시장 전문가인 김순응 김순응아트컴퍼니 대표. 하나은행 자금본부장 출신으로, 국내 양대 미술품경매회사인 서울옥션과 케이옥션 대표를 역임한 김 대표는 미술품 조각투자(분할구매)가 내포한 여러 위험성을 경고하며, 자칫 무모한 투자가 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사진=김순응 제공] 2023.11.06 art29@newspim.com

또한 정확하고 공정한 작품값 산정과 되팔아 수익을 내는 것 역시 간단치 않다고 주장합니다. 김 대표로부터 미술품 조각투자의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인지, 앞으로의 전망은 어떤지 듣고자 대담을 가졌습니다. 일부 논쟁적 요소도 있곘지만 전문가의 진단은 조각투자를 고려하는 이들이라면 경청해볼만 합니다. 김 대표와 가진 긴급 인터뷰를 지난번 1편에 이어 후속편(2편)을 싣습니다.

Q:국내외를 막론하곤 미술시장은 정말 종잡을 수 없고, 혼란스러워 보입니다. 카오스처럼요. 이런 시장에서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한다는 게 가능할까요.

[서울 뉴스핌]이영란 기자= 작년 11월 크리스티의 '폴 앨런 컬렉션' 1차 경매에서 1억3780만달러에 팔린 폴 세잔의 유화 '생 빅투아르 산'. 2001년에 앨런이 3850만달러에 사들였던 작품으로, 21년 만에 가격이 3.5배 오른 셈이다. 세잔의 대표적 연작 중 한 점이기도 하지만 폴 앨런이 소장했던 작품이란 '화제성'이 더해져 낙찰가를 훌쩍 올렸을 것으로 판단된다. [사진=크리스티] 2023.11.06 art29@newspim.com

▶김:미술시장이야말로 불확정성이 지배하는 복잡계입니다. 어떤 것도 어떠하다고, 어떻게 될 거라고 단정하거나 예측할 수 없지요. 사후적으로만 관찰된다는 점에서 양자역학을 연상케 합니다. 작년에 폴 세잔(1839~1906)의 유화 '생 빅투아르 산(La Montagne Sainte-Victoire)'이 경매에서 1억3780만달러에 팔렸습니다. 이 작품은 2001년도에 3850만달러에 거래됐던 겁니다. 21년 만에 약 3.5배 상승한 겁니다.

[서울 뉴스핌]이영란 기자= 폴 세잔의 '퐁투아즈에 있는 메종 오 슈'. 폴 앨런이 소장했던 세잔의 '생 빅투아르 산' 풍경이 열띤 경합 끝에 높은 금액에 낙찰된 것과는 달리, 비슷한 시기에 경매에 나온 이 작품은 추정가(400만~600만달러)에 못 미치는 366만달러에 팔렸다. 2023.11.06 art29@newspim.com

이 사례로만 보면 우리는 세잔 작품값이 21년간 상승했으므로 이 기간에 그의 작품을 산 사람은 모두 돈을 벌었을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며칠 후에 세잔의 '퐁투아즈에 있는 메종 오 슈(Maison au Chou,a Pontoise)'라는 작품은 다른 경매에서 370만달러에 팔렸습니다. 이 작품은 2007년에 680만달러에 샀던 것입니다. 15년을 기다렸는데 절반 가까이 떨어졌습니다.

결국 '세잔 작품값이 지난 15-21년 간 올랐나요, 떨어졌나요?'라고 묻는다면 '그건 팔아봐야 안다'고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양자의 움직임을 고전물리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면서 끝내 양자역학을 받아들이지 않았죠. 그는 미술품 가격도 인정하지 않았을 겁니다.

세잔은 그의 작품 '카드놀이는 하는 사람들(The Card Players)'이 2011년에 2억5000만달러(세계 경매 기록 3위)에 팔린 슈퍼 블루칩 작가입니다. 그의 작품가격은 견고하게 우상향 추세를 보인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모든 개별 작품을 앞에 두고도 이렇게 단언할 수 있을까요. 오랜 세월 검증을 거친 세잔 조차 이럴진대 누가 '어떤 작가 또는 그의 개별적인 작품의 가치'에 대해 어떻다고, 앞으로 어떨 거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습니까. 삼성전자가 발행한 주식은 모두 똑같지만 세잔이 그린 작품에는 같은 게 한 점도 없습니다.

폴 앨런이 소장했다는 이유만으로 세잔의 작품가격이 몇 배 더 비싸게 팔린다면 그건 과학이 아닙니다(그런데 미술시장에선 그런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홍라희 전 리움 관장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이라고 프리미엄이 붙진 않지만 말이죠. 조각투자회사에서 보유한 작품을 판다면 아마도 디스카운트(마이너스 프리미엄)가 따를지도 모릅니다. 미술품의 가치를 결정하는 가장 큰 요소 중에 소장이력(provenance), 희소성(rarity), 신선함(freshness)이 있는데, 조각투자의 매물에 호의적으로 작용하지는 않을 겁니다. 굳이, 만인이 다 아는 '조각투자 매물'이라는 이력이 붙어다니는 작품을 사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서울 뉴스핌]이영란 편집위원=조지아 오키프의 1936년작 '블랙 아이리스'. 91.4x 60.9cm. 빌 게이츠와 함께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한 폴 앨런(1953~2018)이 2001년 수집했던 유화. 올 5월 크리스티의 '비저너리:폴 앨런 컬렉션' 2차 경매에서 치열한 경합 끝에 낮은 추정가(500만달러)의 4배가 넘는 2111만달러에 팔렸다. 미국인이 사랑하는 천재 기업가의 소장품이란 이력이 더해져 구매열기가 뜨거웠다. 오키프의 전성기 시절 대표작이다. [사진=크리스티]. 2023.11.06 art29@newspim.com

Q:참 난해한 문제네요. 이런 시장에서 조각투자건 펀드건 투자자에게 돈을 벌게 해주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어떤 비책을 가지고 있을까요.

▶김:우리(미술계 인사들, 투자자들, 관계기관들)는 그들에게 물어야 합니다. 어떤 방법으로 미술품의 가치를 평가하고 미래 흐름을 예측할 것인지. 그리고 최근 몇 년 동안 구입하고 판 작품들은 어떤 근거로 한 것인지. 그래서 얼마나 성공했는지.

미술작품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설득력있게 평가하고 미래의 등락을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나 기관은 아직 어디에도 없습니다. 수백 년의 미술시장 역사와 소더비(1744년 설립), 크리스티(1766년)를 가진 서양에서도 미술품 지수(Mei Moses Fine Art Index)를 만든 것은 2002년에 이르러서입니다. 광업에 비유하자면 겨우 곡괭이 한 자루를 만든 것입니다. 우리나라 화랑 역사는 100년도 채 안되는 67년(반도화랑, 1956)입니다. 경매는 25년(서울옥션, 1998)에 불과하고요.

미술품의 가치는 선험적으로 추정할 수 없습니다. 거래에 의해서 사후적으로 정해질 뿐입니다. 확률적으로는 가능하겠지요. 양자역학에서처럼.

선진국에서도(우리나라에서도) 보험, 세금, 혹은 기증 등과 관련해서 작품에 대한 가치를 평가해주는 감정사나 감정기관은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최근에 거래된 유사작품과 비교해서 추정할 뿐입니다. 미국의 경우는 AAA(Appraisers Association of America)라는 단체에서 감정사를 양성하지만 감정 목적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투자를 위한 목적은 없습니다. 상기의 목적을 위한 감정과 투자를 위한 평가는 전혀 다른 문제지요. 이건희 컬렉션에 대해서도 국내 기관 세 곳이 감정을 한 것으로 압니다.

Q:얘기를 듣고 보니 '합리적·과학적인 미술품 투자'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데요. 선진국에서는 성공한 펀드도 있는 걸로 들었는데, 그들의 성공방식, 비결은 무엇인가요.

▶김:금융시장의 예를 먼저 들어보겠습니다. 거기에는 세상이나 인간 혹은 시장을 인식하는 자기만의 독특한 철학과 그에 기반을 둔 투자방식을 개발해서 억만장자가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누구나 아는 버크셔 헤서웨이의 CEO 워렌 버핏입니다. 그는 기업(주식)에 고유의 가치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 가치를 찾아내고 가치에 비해 저평가된 주식을 사서 장기적으로 보유함으로써 높은 수익을 올렸습니다.

칼 포퍼의 제자로 철학자가 되고 싶어 했던 조지 소로스는 학업을 지속하기 위해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그는 스승의 영향으로 '인간은 누구나 오류를 범한다. 인간의 오류가 집단화되면 경제가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 여기에 큰 돈을 벌 기회가 생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이런 인식에 근거해 영국·일본·태국 등의 화폐를 공략해서 억만장자가 되었습니다. 소로스는 칼 포퍼의 과학철학, 비판적 합리주의적 인식론의 신봉자입니다. '자신과 타인의 실수로부터 배운다'는 철학으로 소로스 펀드를 운용했습니다. 철학자가 못된 그는 스승의 뜻을 받들기 위해 '열린사회 연구소(Open Society Institute)'를 만들었습니다.

'르네상스 테크놀로지' 헤지펀드의 창시자, 제임스 시먼스는 MIT 출신으로, 25세에 하버드 교수가 된 천재 수학자입니다. 그는 일찍부터 돈을 벌고 싶어 해서 투자를 공부하면서 부업으로 선물거래 등에 손을 댔습니다. 그러나 그는 남들처럼 해서는 돈을 벌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시장은 금융·경제가 아니라 과학으로 읽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월스트리트 경험이 전혀 없는 수학·컴퓨터·데이터·알고리즘·기상학 분야의 천재적인 전공자들을 모아 독자적인 투자방법을 개발했습니다. '르네상스 테크놀로지'는 세계 최고의 수익률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들 뿐만 아니라 헤지펀드 매니저로 성공한 이들은 모두 자기만의 철학과 투자방식이 있습니다. 그들은 '남들 따라해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 투자에 관한 유일한 진리라고 믿습니다. 유행 따라 다수에 휩쓸려 다니는 개미투자자들이 성공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주식, 부동산, 미술품 등 대부분의 투자시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자고 덤빌 때는 대개 꼭짓점입니다. 미술시장에서도 지난 2-3년간 유행하는 작가들 작품을 뒤쫓아 사서 후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미술시장 붐을 타고 급등한 경매회사들 주식을 사서 고생하는 사람들도 드물지 않을 겁니다.

Q:그럼 미술투자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크게 성공한 사람들이 있나요.

▶김: 아직 제가 그런 얘기를 듣거나 읽은 적이 없는 것을 보면 미술투자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어딘가에 숨은 고수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슈퍼스타 작가들을 만들어내는(?) 가고시안 같은 메가 갤러리들이 조각투자나, 펀드를 하면 크게 성공하겠지만 그들이 남 좋은 일을 할 이유가 없지요.

미술품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금융·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매혹적인 수익률을 제공하는 '투자 상품'이지만, 감성적인 측면에서 보면 인문학, 역사학, 철학, 심리학을 아우르는, 과학적·계량적 접근을 불허하는 '예술'입니다. 금융·경제나 IT를 공부한 사람들이 보기에 미술시장은 터무니없는, 주먹구구식 메카니즘으로 돌아가는 재래시장처럼 만만해 보일지 모르지만 들여다보면 볼수록 오리무중이고 불가사의한 곳입니다.

금융·경제에 대한 얄팍한 지식이나마 가진 제 생각에는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s,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에 의해 돌아가는 시장은 합리적인 분석이 가능하지만 미술시장은 '보이는 손'이 좌지우지하기 때문에 이것이 오히려 불가능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인간은 합리적으로 의사결정을 한다'는 가정에 입각한 전통 경제학은 현실의 진단과 예측에 많은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심리학자인 대니엘 캐너먼(Daniel Kahneman)은 '인간은 늘 합리적으로 행동하지는 않는다'는 가정에 입각한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을 만들어 2002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습니다.

왜 미술투자에 관해서는 선진국에서도 누구도 천재적인 헤지펀드 CEO들처럼 성공적인 계량적·과학적 투자모델을 만들어내지 못했을까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언젠가는 이런 모든 변수를 계량화해서 미술투자에 성공하는 공식을 만들어낸 천재가 나올 수도 있겠지만요.

Q:결론적으로 아직은 없다는 말씀이네요.

▶김:제가 케이옥션에 있을 때 개최한 'Art Fund Conference'에 연사로도 초청했던, 영국 The Fine Art Fund의 CEO인 필립 호프만이 얘기한 성공비결은 매우 재래적이었습니다. 다음과 같습니다.

미술시장에 급매물이 출현할 때가 있습니다. 주로 컬렉터의 3D(Death, Divorce, Default)로 급전이 필요할 때입니다. 이런 정보를 취득하면 촌각을 다투어 의사결정을 하고 자금을 마련해야겠지요. 우선은 그 작품(들)에 대한 평가를 해야 할 겁니다.

[서울 뉴스핌]이영란 기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살바토르 문디(구세주)'. 크리스티 경매에서 무려 4억5000만달러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에 낙찰돼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이 작품은 그러나 진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우디 왕실이 소장 중이란 말이 나오나 정확치 않다. [사진=크리스티] 2023.11.07 art29@newspim.com

첫째는 진위 여부입니다. 위작 문제는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합니다. 예를들면 4억5000만달러라는 경매 사상 최고가에 팔린, 다빈치의 진품이라고 믿었던 '구세주(Salvator Mundi)'라는 작품은 거래 후에 본격적인 가짜시비에 휘말려 지금은 행방조차 알 수 없습니다.

이 작품은 2005년에 미국의 저명한 딜러, 로버트 사이먼과 알렉스 페리쉬가 뉴올리언스의 영세한 경매회사에서 매우 싼 값에 사들였습니다. 전문가들이 벼룩시장같은 곳에서 이런 보석을 발견하는 일(Treasure hunting)이 간혹 있습니다. 이후 여러 검증과정을 거쳐 2011년에 영국의 내셔널갤러리에서 전시되고, 2017년 뉴욕의 크리스티에서 팔렸습니다.

이 작품에 대해서는 다빈치가 직접 그렸다는 설부터 그의 공방에서 제자가 그리고 다빈치가 마지막 터치를 했다는 설까지 다양한 주장이 있습니다. 다빈치의 터치가 0%에서 100% 사이의 어느 지점에 있느냐에 따라 그 작품의 가치는 달라질 것입니다. 제로에 수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요. 다빈치의 '구세주'를 카피한 작품은 30점쯤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서울 뉴스핌]이영란 기자= 지난 2021년 서울옥션 경매에서 54억5000만원에 낙찰되며 국내 미술경매 최고가를 기록했던 쿠사마 야요이의 유화 '호박'. 미술품 조각투자플랫폼을 운영하는 열매컴퍼니는 최근 투자계약증권 발행을 위해 금융감독원에 쿠사마 야요이의 또다른 '호박' 페인팅을 기초자산으로 제시했다. 국내 '1호 투자계약증권 발행'을 추진했던 열매컴퍼니는 주요사항의 기재불충분 등의 이유로 금감원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고, 조각투자 사업은 내년초로 미뤄지게 됐다. [사진= 서울옥션] 2023.11.06 art29@newspim.com

작품에는 보여지는 그대로의 가치(본질적인 혹은 내재적인 등 뭐라 부르건)가 있다면 그 가치는 다빈치의 터치 정도에 따라 달라져서는 안 됩니다. 그의 제자가 더 잘 그린 그림이 있다면 그게 더 비싸야 합니다. 그게 과학입니다. 다빈치의 붓칠정도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면 그건 작품에 가치가 있는 게 아니라 다빈치라는 이름에 있는 겁니다. 작품에는 본질적인 가치라는 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생존해있는 작가가 자기 작품이 분명한데도 가짜라고 우기거나 수사기관에서 가짜임을 명백하게 증명한 작품들을 자기가 그렸다고 주장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고미술의 경우는 더욱 진위를 가리기가 힘듭니다. 이런 사건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비일비재하고 영원히 미궁에 빠지는 일도 많습니다.

둘째는 가격 산정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것 역시 난제지요. 두 가지 문제를 시간을 다퉈 해결하기 위해서는 방대한 전문 인력을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셋째는 자금 동원입니다. 수천만달러에서 수십억달러를 시간을 다투어 조달해야 합니다. 펀드 자체적으로 이만한 자금을 보유하고 있거나, 자금줄(투자자, 개인이건 기관이건)을 확보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런 조건을 모두 갖추어 싸게 작품을 사게 되면, 여유있게 미술관이나 컬렉터 등에게 은밀하게 혹은 경매를 통해서 비싸게 팔아서 수익을 냅니다.

[서울 뉴스핌]이영란 기자=한국을 대표하는 미술가로 최근 독일 함부르크 반호프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개막한 이우환은 MZ세대들이 주류를 이루는 공동구매 투자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작가다. 사진은 서울옥션블루가 지난해 조각투자를 위해 매입했던 이우환의 '다이알로그'. 작품이 플랫폼에 나오자 불과 1분18초 만에 소액투자자들이 분할구매를 완료하며 기록을 세웠다. [사진=서울옥션블루] 2023.11.06 art29@newspim.com

이런 과정이 말처럼 쉽지도 않거니와 엄청난 리스크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런 급매물을 노리는 세력들이 많기 때문에 그들 사이의 경쟁은 첩보전과도 흡사합니다. 작품을 손에 넣기 위해서 서로 경쟁적으로 판매자에게 좋은 조건을 제시하다가 오히려 손해를 보는 수도 있습니다. 미술시장에서 흔히 말하는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지요.

소더비나 크리스티도 여기 합류합니다. 그들은 정보력, 전문인력, 돈을 대주거나 작품을 사줄 고객들은 물론, 경매라는 판매수단을 확보하고 있는, 최고의 경쟁력을 지닌 곳입니다. 이런 작품 거래를 두고 그들이 금융기관과 합작하여, 수익을 최대화하고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고안해내는 파생상품은 여타 금융상품 못지 않게 복잡하고 다양합니다. 이런 거래는 경매회사들의 주요 수입원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만약 이건희 회장의 유족들이 '이건희 컬렉션'을 팔 생각이었다면 이런 경로를 거쳤을 수도 있습니다.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이 미술품에 투자해서 3~5년의 단기간에 돈을 벌겠는다는 것은 감나무 아래 입 벌리고 누워있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 나무는 감나무가 아니라 밤나무일지도 모릅니다.

Q:이런 시장에서 투자자들에게 수익을 내주겠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그들이 팔거나 보유하고 있는 작품 중에는 외국 작가의 것도 있는데, 어떤 경로로 구입한 것인지, 가격은 타당했는지, 진위문제는 없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작품의 조각을 산 사람들은 그간 얼만큼의 수익을 실현했는지, 수익 실현에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지, 손해를 보지는 않았는지도 궁금합니다. 또 아직 팔지 않은 재고는 현재 가치로 평가할 수 있는지, 평가한다면 플러스인지 마이너스인지, 앞으로의 전망은 어떤지 등도 알고 싶군요. 미술품의 현금화가 쉽지도 않고, 미술시장이라는 곳에 부침도 있을 텐데 미술품 조각판매(투자)라는 것이 과연 지속가능한 사업모델이 될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김:바로 그겁니다. 고가 미술품을 만원 단위로 조각내서 파는 기술과 돈이 될 작품을 구하는 능력은 별개입니다. 금을 쪼개 팔 건, 뭉텅이로 팔건, 반지로 가공해서 팔 건 모두 금광을 발견해서 금을 캐낸 연후의 일입니다. 그들이 광부의 곡괭이나 청바지를 팔겠다고 나선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들 대부분이 미술시장과는 관련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간 그들이 구입해서 조각투자용으로 판 작품들을 보면 유행하는 작품들이 많습니다. 일부는 경매에서 산 작품이고, 일부는 오래 팔리지 않아 시장에 돌던 작품입니다. 미술계 사람들은 이런 작품들을 대부분 기억합니다. 경매에는 경쟁이 따르고 낙찰자에게는 높은 수수료가 부과됩니다. 이 작품을 경매에서 되팔 때도 물론 수수료가 붙지요. 이런 모든 비용을 부담하고도 구매자에게 이익이 되는 가격에 되팔 수 있을까요? 미술시장에서 내돌리던 작품을 이익을 내고 팔 확률이 얼마나 될런지 우려됩니다.

관계당국이나 투자자들뿐 아니라 미술품 조각판매업을 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은 모든 상상 가능한 질문들에 대해 엄중하게 묻고 답해야 합니다. 어설프게 시작하면 그들이 아무리 선의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소액투자자들의 희생을 가져올 수 있고, 자신들에게도 재앙이 될 수 있습니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길은 자주 선의로 포장됩니다. 악의가 스며들게 되면 피해는 더욱 커질 수도 있겠지요. 잘못 되면 세계로 도약하려는 우리 미술계에 찬물을 끼얹을 뿐만 아니라 세계 미술시장의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들 중 어느 누군가가 '양자역학을 응용해서 획기적인 미술투자 성공 방식을 개발했다.'라는 소식이라도 전해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art29@newspim.com

<저작권자© 글로벌리더의 지름길 종합뉴스통신사 뉴스핌(Newspim),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