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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황숙혜 기자 = 엔화가 브레이크 없는 하락을 연출하고 있다.
10월31일 일본은행(BOJ)의 통화정책 결과를 둘러싼 실망감에 150엔 선 위로 치솟았던 달러/엔 환율이 151엔선까지 뚫고 올랐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뉴욕외환시장에서 달러/엔은 1.7% 급등하며 151.60엔까지 뛰었다. 엔화가 2022년 10월 이후 최저치로 후퇴한 셈이다. 또 이날 낙폭은 4월 이후 최대 규모다.
아시아 거래 시장 달러/엔은 뉴욕외환시장 최고치에서 일보 후퇴하며 151.30엔으로 주춤하는 모습이지만 월가는 추가 상승을 점친다.
심리적 저항선으로 통했던 150엔은 물론이고 151엔 선까지 뚫린 것은 일본은행(BOJ)의 통화정책 회의 결과가 시장의 기대치에 못 미쳤기 때문이다.
일본 엔화 [사진=블룸버그] |
투자자들은 정책자들이 일드커브통제(YCC)를 전면 종료, 미국과 큰 폭으로 벌어진 금리 차이를 좁히는 한편 엔화 가치를 부양하는 행보를 취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일본은행(BOJ)은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의 상단을 1.0%로 유지하되 이를 초과하더라도 용인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지난 2016년 무제한 국채 매입을 동원해 10년물 국채 수익률을 0%에 붙들어 둔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일드커브통제(YCC)를 도입한 일본은행(BOJ)은 2022년 12월 수익률 상한을 0.5%로 높여 잡았고, 2023년 7월에는 0.5%를 목표치로 두되 1.0%까지 요인하는 형태로 정책 완화를 결정했다.
이번 통화정책 회의에서 정책자들은 3개월만에 또 한 차례 일드커브통제(YCC)를 완화한 셈이지만 10년물 수익률의 상승을 어느 선까지 용인할 것인지에 대해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투자은행(IB) 업계에 사실상 정책자들이 시장에 국채 수익률 등락을 내줬다는 해석과 1.1%에서 금리 조작에 나설 것이라는 의견이 엇갈리는 가운데 외환시장 트레이더들은 공격적인 엔화 '팔자'로 대응하는 움직임이다.
2022년 10월 엔화가 속락했을 때 일본은행(BOJ)은 6조3500억엔(430억달러)에 달하는 외환시장 개입을 강행하며 환율 방어에 나섰지만 이번에는 소극적인 모습이다.
달러/엔 환율 150엔과 151엔 선이 연이어 깨졌지만 일본 외환 당국은 브레이크를 걸지 않았다. 11월1일 일본 재무성의 미사토 간다 재무관이 구두 개입에 나섰지만 실제 실탄을 방출하지는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외신에 따르면 10월 엔화가 가파른 하락을 지속했지만 외환시장 개입이 이뤄진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엔화 반등을 기대하며 저가 매수에 뛰어들었던 한국 투자자들로서는 당혹스러운 상황이다. (관련 기사 : 엔화 저가 매수 '잠깐만' ① 달러/엔 170엔까지 뛴다, 왜)
달러화에 대한 엔화 가치가 1990년 이후 33년만에 최저치로 곤두박질 친 가운데 월가는 추가 하락을 경고한다.
미국을 필두로 한 해외 금리 상승으로 인해 무제한적인 국채 매입을 통한 금리 통제를 지속하기 힘든 실정이지만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BOJ) 총재가 국내외 금융시장 충격을 감안해 과격한 정책 수정보다 미세 조정에 무게를 둘 여지가 높고, 이 때문에 엔화 하락 압박이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TS 롬바드는 투자 보고서를 내고 "일본은행(BOJ)은 기존의 정책 틀을 전면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매크로 상황을 반영해가며 유연성을 높이는 형태로 정책 전환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힌 셈"이라며 "매우 제한적이지만 유연성은 변화로 이어진다"고 전했다.
일본은행(BOJ)이 이 같은 정책 노선을 취한다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를 인하하기 전까지 엔화가 바닥을 찾기 어렵다는 의견이 시장 전문가들 사이에 힘을 얻고 있다.
지금부터 일본 10년물 국채 수익률의 상승 속도와 정책자들의 개입이 이뤄지는 지점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지만 정부의 재정 상황과 금리 상승에 따른 가계 부채 부담 등 굵직한 변수를 고려해야 하는 일본은행(BOJ)이 가파른 금리 상승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 같은 상황을 감안할 때 이코노미스트는 달러/엔 환율이 155엔까지 오를 가능성을 열어 둬야 한다는 데 입을 모은다.
일본은행(BOJ)의 주요 정책 결정과 달러/엔 추이 [자료=블룸버그, 일본 재무성] |
ING의 크리스 터너 글로벌 금융시장 헤드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를 갖고 "정책자들은 현 수준의 장기 국채 수익률을 유지하며 엔화가 발작을 일으키면 외환시장 개입으로 진화하는 해법으로 대응할 전망"이라며 "개입은 달러/엔 환율 152~155엔 영역에서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즈호의 달러/엔 전망 [자료=미즈호, 블룸버그] |
삭소은행은 보고서에서 "단기적으로 달러/엔 152엔 선에 대한 테스트가 이뤄지는 한편 155엔까지 상단이 열려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 9월 '미스터 엔'으로 불리는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일본 전 재무관은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외환 당국자들이 달러/엔 환율 155엔에서 강한 경계감을 드러내며 적극적인 개입에 나설 것"이라고 예상했다.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인 1997~1999년 십 여 차례에 걸쳐 외환시장 개입을 진두지휘했던 그는 "일본은행(BOJ)은 궁극적으로 개입 없이 미국 연준의 정책 변경을 기다릴 것"이라며 "환율이 155엔까지 뛰면 정책자들이 크게 우려할 것으로 보이지만 이 때도 개입에 나서지 않으면 환율은 160엔 선에 근접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다만, 연준이 이른바 피벗(pivot, 정책 전환)에 나설 경우 엔화가 급반전을 이루며 1달러 당 130엔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그는 내다봤다.
이 밖에 미즈호가 보고서를 내고 2024년 1분기 달러/엔 환율이 155엔까지 뛰는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미즈호 역시 엔화 가치를 끌어올리는 동력은 일본은행(BOJ)이 아닌 연준의 통화정책 선회와 달러화 하락에서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 사카키바라 전 재무관과 한 목소리를 냈다.
지난 8월 골드만 삭스와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역시 보고서를 내고 엔화의 바닥을 1달러 당 155엔으로 판단했고, 시기는 2024년 1분기로 점쳤다.
한편 2023년 초 이후 엔화는 달러화에 대해 13% 폭락, 10개 선진국 통화 가운데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shhwa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