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현구 기자 = 정년이 도달한 근로자를 계약직으로 재고용한다는 내용의 규정이 없고, 그러한 관행도 확립돼 있지 않은 경우 근로자의 재고용 기대권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A씨가 낸 부당해고구제재심판정취소 소송에서 청구를 기각한 원심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0일 밝혔다.
대법원 [사진=뉴스핌 DB] |
A씨는 노인의료복지시설을 개설·운영하고 있으며, B씨는 해당 시설에서 2018년 3월부터 요양보호사로 근무했다. A씨는 2020년 7월31일 B씨의 정년이 도래함에 따라 약 한 달 전 계약종료를 통지했고, B씨는 같은 해 9월 해당 근로계약 종료는 부당해고라고 주장하며 부산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했다.
부산노동위는 같은 해 11월 B씨의 촉탁직 재고용 기대권은 인정하면서도 A씨의 촉탁직 재고용 거부에 합리적 이유가 있다며 구제신청을 기각했다. 이에 B씨는 같은 해 12월 중앙노동위원회에 해당 판정에 대한 재심을 신청했다.
2021년 2월 중앙노동위도 B씨의 정년 이후 촉탁직 재고용에 대한 기대권을 인정했다. 하지만 중앙노동위는 부산노동위와 달리 A씨의 재고용 거부에 합리적 이유가 없다며 B씨의 구제신청을 인용했고, 이에 A씨는 중앙노동위의 재심 판정을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A씨는 B씨의 정년 이후 촉탁직 근로계약 체결에 대한 기대권이 인정되는 예외적인 사정이 존재하지 않으며, 그가 직장 내 성희롱으로 정직 1개월의 징계 처분을 받고 입소자 낙상 사고로 시말서를 제출한 이력 등을 근거로 촉탁직 근로계약 체결 거절에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주장했다.
1심은 "근로계약 당사자 사이에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면 근로계약이 갱신된다는 신뢰 관계가 형성돼 있어 근로자에게 근로계약이 갱신될 수 있으리라는 정당한 기대권이 인정되는 경우 사용자가 이를 위반해 부당하게 근로계약의 갱신을 거절하는 것은 부당해고와 마찬가지"라며 A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또 재판부는 "정년 후 촉탁직 근로계약 체결에 대한 신뢰 관계를 형성한 근로자에 대해서 그에 대한 정당한 기대권을 인정해 사용자의 자의적인 촉탁직 근로계약 체결 거부로 인한 고용불안과 근로조건 악화 등을 방지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B씨의 징계 처분 등에 따른 근로계약 체결 거절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A씨는 B씨와 마찬가지로 정직 1개월의 징계처분을 받거나 업무상 사유로 시말서를 작성한 이력이 있는 근로자들과도 반복해 촉탁직 근로계약을 체결했다"며 "해당 근로자들과 B씨를 달리 취급할 만한 객관적이고 명확한 근거에 관해서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또 재판부는 "B씨에게 정년 이후 촉탁직 근로계약 체결에 대한 정당한 기대권이 인정되고, A씨가 B씨의 촉탁직 근로계약 체결을 거부한 데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없다"며 "따라서 해당 근로계약 종료는 부당해고와 마찬가지로 그 효력이 없어 해당 재심 판정에 대한 A씨의 주장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2심도 1심 판단을 유지했으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취업규칙과 요양시설 운영 규정은 정년퇴직자를 촉탁직 근로자로 재고용할지 여부에 관해 A씨에게 재량을 부여하고 있고, 일정한 요건을 충족할 경우 재고용이 보장된다는 취지의 규정을 전혀 두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해당 요양시설은 정년 무렵까지 근무한 근로자 5명 중 A씨를 제외하고도 2명이 촉탁직 근로자로 재고용하지 않았다"며 "B씨와 마찬가지로 정년 도달을 이유로 근로계약이 종료된 1명은 재고용을 원했는데 재고용되지 못한 것인지, 그러하다면 재고용 거절 사유가 무엇이었는지도 기록상 분명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근로계약이나 취업규칙 등에 정년 도달 근로자를 촉탁직 근로자로 재고용해야 한다는 규정이 존재하거나 A씨의 사업장에 그에 준하는 정도의 재고용 관행이 확립돼 있었다고 보이지 않으므로, B씨가 정년 도달 후 촉탁직 근로계약을 체결해 기간제 근로자로 재고용되리라는 기대권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부연했다.
끝으로 재판부는 "그런데도 원심은 참가인에게 촉탁직 근로계약 체결에 대한 정당한 기대권이 인정된다고 보고 해당 근로계약 종료가 부당해고와 마찬가지로 효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정년 후 재고용 기대권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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