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지용 기자 = 그동안 ASML과의 관계 구축에 노력해왔던 삼성전자 및 SK하이닉스가 이번 네덜란드 방문을 통해 ASML과의 공동사업 추진 등 굵직한 성과를 이끌어냈다. 삼성 및 SK가 ASML과 반도체 동맹을 꾸리게 되면서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한 4차 산업까지 선도할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1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 회장은 현지시간 12일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글로벌 장비 기업 ASML의 네덜란드 본사를 시찰하고 피터 베닝크 ASML 회장 등과 간담회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삼성전자는 ASML과 함께 1조원을 투자해 차세대 극자외선(EUV) 기반의 초미세 공정을 공동 개발하는 '차세대 반도체 제조기술 연구개발(R&D) 센터'를 한국에 짓기로 했다. ASML이 해외에 R&D 센터를 설립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UV 장비는 초미세 공정에 필수적인 만큼 국내에서 관련 기술이 개발되면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첨단 반도체 개발에 속도를 낼 수 있을 전망이다.

또 SK하이닉스는 ASML과 EUV용 수소가스 재활용 기술개발을 함께 하기로 했다. EUV 장비의 수소를 태우지 않고 재활용하면 전력 사용량은 20% 줄고 연간 165억원의 비용이 감축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밖에도 한국과 네덜란드 정부는 최첨단 반도체 생산 장비를 활용, 양국 대학원생에게 현장 학습 기회를 주는 '한-네덜란드 첨단 반도체 아카데미'를 신설하기로 했다.

ASML과의 관계 구축에 노력해왔던 삼성전자 및 SK하이닉스가 이번 네덜란드 방문을 통해 ASML과의 공동사업 추진 등 굵직한 성과를 이끌어냈다. 사진은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이 지난 12일(현지시간) ASML 본사에서 열린 한-네덜란드 첨단반도체 협력 협약식을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대통령실]

이번 네덜란드 방문에서 이례적인 반도체 협력 성과를 달성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과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ASML과 협력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해왔던 노력이 이번 성과에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재용 회장과 최태원 회장은 지난해 11월 마크 루터 네덜란드 총리가 방한 당시에도 베닝크 회장과 차담회를 통해 파트너십을 다졌다.

특히 이재용 회장은 지난해 6월 유럽 출장 당시, ASML 본사를 찾아 베닝크 회장과 EUV 장비의 원활한 수급 및 반도체 협력 방안 등에 대해 논의하기도 했다. 베닝크 회장은 지난해 방한 당시 "이재용 회장과 사업과 사업 환경 등에 대해 광범위한 대화를 한다. 수년 간 인연을 쌓아와 개인적인 대화도 한다"고 말하는 등 두터운 관계가 구축됐다는 점을 시사했다.

업계 관계자는 "그 동안 삼성과 SK의 수장들이 다른 어떤 경쟁사보다도 ASML과의 관계 구축에 큰 노력을 들였던 만큼 이번 반도체 협력을 통해 그 간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셈"이라며 "앞으로 공동사업 등을 원활히 유지하기 위해 이들 기업 간의 스킨십은 더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EUV 장비의 안정적인 확보를 비롯해 대규모 투자에 힘입어 EUV 관련 기술까지 국내에서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삼성과 SK가 글로벌 경쟁사에 앞서 AI 등 4차 산업 시장을 주도할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AI 반도체를 생산하려면 초미세 공정이 이뤄져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EUV 장비 공급이 안정적으로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거대언어모델(LLM) 기반의 생성형 AI 서버 구축을 확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내년부터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온디바이스 AI를 탑재한 AI폰 출시를 할 예정인 만큼 삼성과 SK가 이들 분야에 탑재할 고성능 반도체를 생산할 여력이 커질 수 있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반도체 전 분야에서 고도의 기술력이 중요해지고 있어 ASML의 안정적인 EUV 장비 확보가 국내 기업들이 AI와 관련된 첨단 반도체 시장 선점할 수 있을 지를 좌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앞으로 AI를 중심으로 한 추가적인 파생 산업이 생길 조짐을 보이고 있어 양사가 기존의 반도체 분야를 넘어 미래 먹거리 선점에서 우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크다. 양사는 최근 조직개편을 통해 이와 관련된 조직을 새로 마련해놓고 있어 ASML과의 반도체 협력 사업과 시너지를 낼 여지도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미래사업기획단'을 꾸려 반도체와 스마트폰 등 기존 주력 사업의 연장선상에 있지 않은 신사업을 발굴한다. AI와 로봇 등을 중심으로 신사업을 찾을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SK하이닉스도 AI 기술 발전에 따라 파생되는 새로운 시장을 발굴·개척하는 조직인 'AI&NEXT(넥스트)'를 신설했다.

업계 관계자는 "AI 관련 산업이 현재의 범위보다 크게 확대될 전망인 만큼 삼성과 SK가 당장의 첨단 반도체 경쟁에서 초격차를 이뤄내고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신사업에도 도전해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leeiy522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