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동훈 기자 =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감이 부동산 시장을 넘어 사회 전반에 확산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PF 사업에 85조원 규모의 유동성을 투입해 경착륙을 막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자금 지원으로 안 되는 사업장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사들이는 '2중 안전장치'까지 들고 나섰다.
금융권을 중심으로 PF 부실화 우려 신호가 나타나면 정부가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모양새가 반복되고 있다. 시공능력평가 순위 16위 태영건설이 지난해 12월 말 유동성 문제로 워크아웃을 신청하면서 정부의 발걸음이 더 빨라진 듯하다. 이렇다 보니 시장에서는 오는 4월 실시하는 국회의원 선거 전까지는 PF 문제가 발생해도 정부가 해결해 줄 것이란 얘기가 심심치 않게 흘러나온다.
[사진=이동훈 부동산부 차장] |
물론 단기적인 유동성 문제로 기업이 위기에 빠졌다면 대출상환 유예, 유동성 공급 등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 특히 건설업 종사자 수는 작년 말 기준 174만명에 달해 국민 생계 및 가계 소득에 미치는 파급력이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지원책만이 '답'은 아니다. PF 사업성이 부족하면 땅 주인은 순리대로 매각, 계약 해지 등으로 정리되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를 지원책을 통해 살려놓으면 차후 더 큰 후폭풍을 맞을 게 자명하다. 도미노 부도가 벌어지면 돈이 시중에 돌지 않는 '자금경색'이 나타나 멀쩡한 기업까지 흔드는 현상까지 초래한다.
지난해 금융당국과 금융권은 14년 만에 PF 대주단 협약을 부활하고, PF 사업장 3600곳에 대한 만기 연장, 상환유예 등 채권 재조정을 추진했다. 작년 8월 말 기준으로 총 187개 사업장에 대해 PF 대주단 협약이 적용됐다. PF 사업자가 대출 상환에 문제가 없거나 유동자금이 충분했다면 대주단 지원을 받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결국 정리될 수 있었던 200곳에 가까운 부실 PF 사업장에 정부가 '산소 호흡기'를 달아준 것이다.
건설사뿐 아니라 돈을 빌려준 제2금융권, 증권사, 보험사가 동시에 부도 위험에 노출되면 결국 국민혈세인 공적자금이 지원될 수밖에 없다. 수십조원의 국가 재정이 낭비될 뿐 아니라 개인(오너)과 기업의 잘못된 경영 판단에서 불거진 경영난을 국민이 지원해 주는 셈이다.
국내 부동산 PF 시장이 기형적으로 성장한 측면도 부실을 키우는 이유다. 부동산을 개발, 기획하는 사업 운영자인 시행사는 땅(부지) 매입자금의 10~20%를 손에 쥔 채 사업에 이끌어가는 게 가장 흔한 PF 구조다. 브릿지론을 통해 토지 매입자금을 마련하고 이 과정에서 시공사(건설사)는 자금보충약정, 채무인수 등 신용을 담보로 제공한다. 이후 본PF 대출을 받아 브릿지론 상환 및 공사비로 활용한다. 수백억, 수척억원이 들어가는 개발사업에 시행사가 땅 매입가의 계약금 10% 정도만 들고 사업을 꾸려간다는 것 자체가 무리한 측면이 있다. 사업이 부실화할 경우 수분양자, 공사 하청업체 등을 구제할 마땅한 안전장치가 없다.
파산 위기에 놓인 기업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도 감지된다. 최근 태영건설이 PF대출을 상환하지 못하며 유동성 위기에 몰리자 채권단을 대상으로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이 과정에서 핵심 계열사인 SBS는 매각이나 담보로 제공할 수 없다고 밝힌 데 이어 오너 일가의 사재출연에 대한 의지도 턱 없이 부족했다. 이를 두고 부도 위기를 맞은 절박한 기업의 모습이 아니라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정부가 PF 지원에 열을 올리는 상황에서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 설마 워크아웃 개시를 거부할 수 있겠느냐는 듯한 태도다. 이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자기 뼈가 아니라 남의 뼈를 깎는 태영건설의 자구안'이라며 오너 일가에 작심 비판하기도 했다.
부동산 PF는 태생 자체가 미래 사업성을 담보로 이뤄지는 금융기법으로 부동산 개발의 '꽃'으로 불린다. 하지만 주택경기가 냉각되면 사업성 또한 급격히 하락한다. 주택시장 호황기 때 꼭지에 매입한 개발 부지는 사업성이 더 낮아진다. 결국 시장 상황에 따라 '황금알을 낳는 거위' 또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사업이 될 수도 있다. 현재 PF대출 금리, 연체율, 경기둔화 등을 감안할 때 후자에 더 가까운 환경이다. 향후 줄도산에 따른 사회적 후폭풍을 막기 위해서라도 옥석가리기에 나서 한계기업을 정리해나가는 정책 방향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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