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신수용 기자 = 국내 배터리 기업들이 조(兆) 단위 설비투자(CAPEX)를 쏟아내고 있다. 프리미엄 제품 생산이라는 질적 성장 기조를 유지하면서, 생산 설비 확충을 통해 양적 확장을 노리는 전략이다.
LG에너지솔루션 충북 청주시 오창공장 전경. [사진=LG에너지솔루션] |
8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배터리 3사의 CAPEX는 지난해 20조원 이상을 넘어섰다. LG에너지솔루션이 10조원, SK온이 7조원, 삼성SDI 역시 3조원 이상이다. 지난해 배터리 3사의 영업이익 합계가 3조217억원 수준인 것을 고려할 때, 설비투자에 투입한 비용이 이익의 5배를 넘겼다.
전기차 수요 감소와 글로벌 경기침체 등 여파로 단기 업황 전망은 밝지 않지만, 전기차용 이차전지 시장이 장기적으론 성장을 이어갈 것이란 판단이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전기차용 이차전지 수요는 지난해 687기가와트시(GWh)에서 2035년 5.3테라와트시(TWh)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6160억 달러(약 815조원) 수준이다. 지난해(1210억 달러·약159조원)보다 5배 커진다는 얘기다. 향후 더욱 커질 시장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서는 생산능력 확대가 필수적이다.
실제로 배터리 3사의 수주잔고는 1000조원을 넘겼다. LG에너지솔루션의 지난해 상반기 누적 수주액(2분기 기준)은 440조원이다. 같은 기간 삼성SDI의 누적 수주액은 약 260조원으로 추정되며 SK온은 300조원 규모의 수주를 달성했다. 여기에 지난해 하반기 LG에너지솔루션이 도요타와 20GWh 규모의 배터리 장기 공급 계약을 맺었다. 단일 수주로는 최대 수준으로, LG에너지솔루션의 하반기 누적 수주액은 500조원 규모로 추정된다.
배터리 3사 중 삼성SDI의 투자 규모가 가장 크게 늘 것으로 보인다. 삼성SDI의 올해 CAPEX는 상장 후 역대 최고 수준인 5조원 대로 예측되고 있다. 그간 삼성SDI는 국내 배터리 3사 중 CAPEX에 가장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프리미엄 제품에 집중한 대신, 설비 투자에 소홀한 탓에 경쟁사에 비해 미국 시장 진출이 늦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로 인해 배터리 3사 중 유일하게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첨단제조 생산세액공제(AMPC) 수혜를 입지 못했다. AMPC는 미국 내에서 생산 및 판매한 배터리 셀과 모듈에 일정액의 보조금(셀 35달러/kWh·모듈 10달러/kWh)을 받을 수 있는 법 조항이다.
삼성SDI 6세대 각형 배터리 P6. [사진=삼성SDI] |
이에 삼성SDI는 북미 CAPEX 확장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SDI는 스텔란티스와 합작한 미국 배터리 공장의 가동 시점을 당초 계획한 2025년 1분기보다 앞당기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LG에너지솔루션도 북미 시장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 LG에너지솔루션은 7조2000억원을 투입해 애리조나주에 단독 공장을 건설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완성차와 협력도 빠르게 구축해나가고 있다. 현재 LG에너지솔루션은 제너럴모터스(GM)와 함께 미국 오하이오, 테네시, 미시간 등 총 3곳에 배터리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이 밖에 미국 완성차 기업 스텔란티스와 캐나다 온타리오에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건설 중이다. 일본 혼다자동차는 2026년까지 전기차 배터리 생산을 목표로 LG에너지솔루션과 미국 오하이오주에 전기차 허브를 구축할 계획이다.
SK온은 '마더 팩토리' 인 충남 서산공장 증설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SK온은 충남도·서산시와 투자협약을 맺고 서산 오토밸리산업단지에 1조5000억원을 투자해 2025년까지 3공장 증설을 완료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어 SK온의 모회사 SK이노베이션은 최근 SK온이 생산시설 확충에 1조7500억원을 투자한다는 이사회 의결사항을 공시했다. 이는 종전에 알려진 서산 3공장 증설 투자액보다 높은 금액으로, 기존 2공장 생산라인 개조와 장비 업그레이드 투자분까지 포함됐다. 투자 목적은 "신규 수주 대응을 위한 시설 투자"다. 비슷한 시기 SK온은 이보다 많은 2조3960억원의 배터리 생산시설에 투자한다는 내용의 비유동자산 취득 결정 공시를 냈다.
배터리 3사는 최근 전기차 시장 성장 속도 둔화 영향으로 일부 투자계획을 수정하기도 했지만 올해 설비투자 비용도 지난해를 웃돌 정도로 클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배터리 업계의 재무 부담은 커지고 있다. 설비투자에 따른 순차입금 규모도 늘어나고 있어서다. 한국기업평가의 보고서에 따르면 배터리 셀 업체(LG화학·SK이노베이션 배터리 부문과 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 에너지솔루션부문)의 순차입금 규모는 2021년 11조원, 2022년 12조원 규모에서 2023년 23조원으로 2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분석됐다.
박종일 NICE신용평가 선임연구원은 "대규모 수주잔고 대응을 위해 과중한 CAPEX가 요구되고 있고, 글로벌 가치 사슬 확대 요구에 따라 투자비가 증가하고 비용구조 악화나 경쟁 심화 등으로 투자비 회수가 지연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외에도 ▲수익성 제고를 통한 영업현금 창출 확대 ▲운전자금 관리 강화 ▲ CAPEX 속도조절과 효율화 ▲추가적인 유상증자 등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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